서울 한복판에서 제로웨이스트를 만나다
얼마 전 대학 동기가 개강하는 날에 만나 학교 근처의 ‘힐링 공간’을 가자고 했다. 서울 한복판에 힐링 공간이라니, 어딜 말하는 걸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서울로 7017’이었다.
서울로 7017은 1970년도에 세워진 고가도로였다. 노후화 문제로 철거 위기에 놓였다가 2017년에 수많은 꽃과 나무들이 함께 자라는 정원이자 시민들의 산책로로 재탄생한, 도심 속의 지속 가능한 공간이다. 찾아보니 학교에서도 20분이면 갈 수 있었다. 공강 시간을 이용해 가보았더니,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산책로를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발밑으로는 서울역을 나가고 들어오는 열차가 지나가고, 고개를 들면 나무 사이로 서울의 빌딩들이 한눈에 보여 도심 속의 힐링 공간이라는 표현이 바로 이해가 됐다. 그러나 이곳이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서울로 7017을 나와 서울역 옥상정원으로 걸어가면, 서울에서도 몇 개 볼 수 없는 제로웨이스트숍 알맹상점 리스테이션을 만날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란, 환경 보호를 위해 불필요한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친환경적인 운동을 의미한다. 물건을 살 때는 불필요한 포장지를 없애는 방식의 ‘프리사이클링’ 방법과, 버려지는 쓰레기들을 모아서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의 방법이 있다. 알맹상점의 입구에는 재활용 되지 않는 병뚜껑을 활용해서 만든 간판, 콜라 캔을 활용해 만든 화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되어 쓸모를 찾은 물건들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제로웨이스트숍이라고 하면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재활용된 물건들을 판매하는 공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방문했던 알맹상점은 리사이클링 공간까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시민들은 가방에 우유팩, 플라스틱 병뚜껑, 공병, 프린터 카트리지, 양파망 등 다양한 재활용품을 가져와 재활용 코너에서 직접 분리배출했다. 누군가 옆에서 배출 요령을 일일이 안내하거나, 직원이 분리하는 게 아니었다. 시민들이 무척 익숙하다는 듯 재활용품의 무게를 달고 분리하는 것을 보니 무척 인상적이었다.
금요일 정오라 사람들이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들락거렸다. 상점 벽에는 조금씩 자주 가져와서 배출하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한 시민은 “오늘만 벌써 네 번째 분리배출하러 왔다. 내 손으로 환경을 보호하는 실천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예 분리배출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을 만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가지고 환경 보호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놀랍기도 했다.
제로웨이스트숍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친환경적인 재료나 재활용된 재료로 만든 물건들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고 적절하게 분리배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분리배출된 물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나가는데 의의가 있다.
재활용 코너 맞은편에 핸드크림과 보디로션, 샴푸 등을 리필해 갈 수 있는 커다란 통이 있었다. 또 다른 시민은 일상에서 쓰는 대부분의 화장품을 이곳에서 구매한다며, 공병에 담아가거나 따로 구매한다고 이야기했다.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친환경 재료로 만든 화장품을 깨끗한 공병 하나만 준비해오면 얼마든지 리필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무게를 달아 직접 측정하고, 무게만큼 계산해서 지불하는 방식이 낯설었는데, 오히려 이런 방식으로 화장품이나 샴푸를 구매하니 필요한 만큼만 구입하게 되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게 되었다”라고 말해주었다.
그 외에도 환경을 생각한 소품들이 여럿 진열되어 있었다. 친구와 나는 평소에도 소품숍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제로웨이스트숍의 여러 소품들을 신기하게 구경했다.
바다에 버려져 깨지고 풍화된 유리병으로 만든 귀걸이와 반지, 양말목을 이용해 만든 냄비 받침대, 스테인리스 빨대와 몽당연필 꼭지 등 우리 주변에서 버려지는 물건들을 새롭게 재탄생시켜 만든 소품도 있었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품들도 많았다.
한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다가, 새 학기가 시작된 만큼 문구류를 구매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나무를 베지 않은 사탕수수 종이’로 만들어진 노트 한 권씩을 구매했다.
해당 제로웨이스트숍 사장님은 “제로웨이스트숍을 꾸준히 찾아주는 분들과 호기심으로 찾아오는 분들의 비율이 균형 있게 유지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로웨이스트 운동이 친근해지도록 알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내가 방문한 제로웨이스트숍은 비건 카페도 함께 운영 중이었다. 내가 채식주의자가 아니라서일까? 채식주의가 어떻게 환경 보호에 도움을 준다는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아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소고기 1kg을 얻기 위해 들어가는 물의 양은 무려 1만4400L나 되지만, 토마토 1kg을 얻기 위해 들어가는 물은 322L로 육식을 할 때보다 채식을 할 때 자연스럽게 물 절약을 하고 환경 보호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소고기 1kg을 생산하는데 60kg의 탄소가 발생하고, 이에 비해 토마토 1kg을 생산할 때는 고작 1.4kg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하니 육식보다 채식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환경 보호를 실천할 수 있다고 한다. 단순히 분리배출하고 쓰레기를 많이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식습관에서도 환경 보호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나 역시 작은 실천을 해보고 싶어서 우유 대신 두유가 들어간 홍차 밀크티와 두유가 들어간 초콜릿 라떼를 주문해보았다. 개인 텀블러를 이용하면 할인을 해준다기에 챙겨갔던 물병을 내밀었다. 처음 도전해보는 비건 음료는 낯설었지만, 지구 환경을 위해 자그마한 실천을 해봤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음료수를 마시면서 잔디가 아름다운 옥상정원과 서울로 7017을 거닐었다. 우리 외에도 아름다운 계절과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9월이 시작되었다고 정말 가을도 성큼 찾아온 건지 하늘이 유난히 높고 푸르러 보였다. 나날이 아름다워지는 하늘을 오랫동안 푸르게 푸르게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 하나만의 노력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꾸준히 환경을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 하루였다. 지속 가능한 미래는 우리의 노력과 행동으로 만들 수 있는 존재니까.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한지민 hanrosa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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