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성실하게…‘가장 바쁜 뮤지컬 배우’ 최재림, “꿈의 역할 만났다”[인터뷰]
올해 말 ‘레미제라블’까지 캐스팅
데뷔 14년 만에 ‘커리어의 최정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하고 싶은 뮤지컬 ‘톱5’를 꼽으라고 물으면, 누구라도 똑같이 말했을 거예요.”
20~30대 남자 배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배역’은 모두 섭렵했다. 마침내 ‘오페라의 유령’과 ‘레미제라블’까지 다다랐다. 뮤지컬계 ‘열일’의 아이콘이자, ‘가장 바쁜 배우’로 꼽히는 최재림이다. 데뷔 14년차를 맞은 그에게 올해는 단연 ‘최고의 해’다.
한창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11월 17일까지, 샤롯데씨어터) 무대에 서고 있는 최재림은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꿈의 역할인 만큼 책임도 크다”며 무거운 사명감을 전했다.
마침내 ‘유령’ 최재림이 왔다. 19세기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지하에 숨어사는 천재 음악가. 지난달 ‘오페라의 유령’ 서울 공연을 통해 그는 14년 만에 ‘꿈의 무대’에 섰다.
첫 만남은 2009년 봄이었다. 뮤지컬 ‘렌트’로 이제 막 데뷔한 신인 배우 최재림. 주인공 유령과 라울 역에 모두 지원했지만, 기다리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땐 때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언젠가는 도전하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이 때 쯤이면 색깔이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기다렸어요.”
기대 이상이었다. 10년 이상을 기다린 보람이 있을 정도다. 우선 외모부터 유령의 역할에 ‘어울리는 비주얼’이라고 평가 받았다. 외로움과 증오로 가득 채워진 삶을 살면서도 위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역할의 특성 상 신체적 조건은 필수. 188㎝의 큰 키와 폭발적인 성량이 증명된 최재림은 캐스팅 당시부터 이견이 없었다.
그의 무대 장악력 역시 이미 예측됐다. 그간 보여준 연기 내공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세간의 기대가 부담이었을지 몰라도 막은 올랐다. 흉측한 얼굴을 마스크로 반쯤 가린 그는 겨울 바람처럼 음산하고, 여름 폭풍처럼 강력한 목소리로 관객을 설득했다.
최재림의 유령은 뒤틀린 내면을 안고 살아간다. 유령 캐릭터의 해석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그는 “유령은 주어진 운명의 장난이 너무나 가혹한 인물”이라며 “모두에게 찬사를 받는 동시에 혐오와 외면을 받는 외모를 가지고 있어 불행과 외로움, 상처로 가득 차있다”고 봤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처를 내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기 위해 숨어 살아온 존재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노래와 손짓, 걸음걸이, 행동마다 촘촘히 연기를 넣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극단적인 심리 묘사는 폭넓은 음역대의 목소리로 살려냈다. 최재림은 “그간 팝이나 록 뮤지컬 장르를 주로 했는데 뮤지컬 데뷔 후 클래식에 가까운 발성을 쓴 첫 작품”이라고 말했다. 강압적이고 위협적인 저음, 소름끼치지만 유약한 내면을 담은 고음에 이르기까지 오랜만에 전공을 살렸다. 그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음악만 들으면 편안한 속도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선 반대예요. 감정의 크기, 인물 관계의 변화가 빠르거든요. 어떻게 하면 관객의 심장을 빨리 뛰게 할지 고민하면서 소리의 세기와 울림, 셈여림을 조절했어요”
사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유령’은 거대한 주인공이지만, 등장 분량은 고작 25분 밖에 되지 않는다. 최재림은 “그 짧은 시간동안 유령의 인생과 주요 대소사를 표현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누구나 공감할 원초적인 감정들을 보여주기 위해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최재림은 느리지만, 성실하다. 2009년 데뷔 이후, 지난 10여년간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성악을 시작한 그는 대학 성악과에 입학해 바리톤에서 테너로 음역대를 확장했다. ‘렌트’의 콜린 역으로 데뷔 신고식을 가진 이후 타고난 성량과 가창력을 무기 삼아 ‘헤어 스프레이’ ‘스프링 어웨이크닝’, ‘넥스트 투 노멀’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러다 돌연 활동을 멈췄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뮤지컬 ‘남한산성’(2010)을 하면서 스스로 연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성악 전공자이니 노래는 ‘기본값’이었지만, 무대에서 다양한 색깔을 보여줄 연기 내공은 모자라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채 무대에 오른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그는 2013년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캐릭터와 장르를 초월하는 활동의 원천은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왔다. ‘마틸다’의 기괴한 교장 선생님 ‘미스 트런치볼’, ‘킹키부츠’의 드래그퀸 ‘롤라’, ‘시카고’의 복화술 트렌드를 만든 ‘빌리 플린’, ‘썸씽 로튼’의 최고 인기 작가 셰익스피어…. 그 어떤 무대에서도 교집합은 찾을 수 없다.
TV나 영화 속 배우들에겐 ‘연기 변신’이 숙제처럼 따라다니지만, 국내 뮤지컬계에선 그렇지 않다. 대극장, 대형 제작사, 빅스타가 적기에 천편일률적인 작품과 캐릭터가 나오고, 엇비슷한 캐스팅이 이어지는 게 이 곳의 룰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재림의 행보는 확실히 다르다. 스타성에 연연하기 보다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도전이 먼저다. 드라마 연기 역시 그에겐 시도이자 도전이었다.
“지난 10여년 간 뮤지컬 생태계는 제작사, 배우, 스태프 등 구성원은 그대로인데, 시장은 굉장히 커졌어요. 수요가 많아졌는데, 공급은 그대로이니 다양성이나 특별함이 조금은 희석되지 않나 하는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편한 연기, 편한 노래, 비슷한 작품이 아닌 새로운 것에 도전해 안주하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그의 지난 노력들은 이제 탐스러운 열매를 맺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에 이어 ‘레미제라블’(10월 부산·11월 서울 개막)에도 캐스팅되며 올 한 해 굵직한 대작을 모두 꿰찼다. ‘커리어의 최정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기업 부장급으로 스카우트된 기분이었어요. (웃음) 환갑이 넘어 배우를 계속 하면서, 저의 날들을 돌아보면 인생의 사건으로 남는 한 해였다고 기억할 것 같아요.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과 자부심, 설렘과 벅참이 진하게 남는 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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