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시간 속으로', 엇비슷한 K-청춘물에 머문 아쉬움

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2023. 9. 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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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사진=넷플릭스

원작의 명성이 워낙 강력한 탓일까. 레전드 대만 청춘 드라마 '상견니'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너의 시간 속으로'는 새로움을 주는 리메이크라기보다는 한국판 리메이크 정도에 머문다. 레트로 청춘 드라마와 타임슬립 미스터리 로맨스가 보편적 장르로 자리 잡은 시대인 만큼 특별한 필살기가 절실하다. '너의 시간 속으로'는 '한국판' 각색에 치중한 나머지 리메이크만의 개성도, 청춘 드라마의 매력도 어중간하다. 

2019년 11월 대만 CTV에서 방영한 드라마 '상견니'는 대만,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등 중화권뿐 아니라 한국, 일본까지 아시아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선 2020년 4월 케이블채널과 OTT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어 '상친자'('상견니'에 미친 자의 줄임말) 신드롬을 일으키며 팬덤을 형성했다. 올해 1월에는 드라마 외전 격인 영화 '상견니'가 국내 개봉해 주연배우 허광한, 가가연, 시백우가 내한 행사에 참석하는 등 '상견니' 열풍이 이어지는 중이다. 

원작 드라마의 인기에 발맞춰 2021년에 '상견니' 한국판 리메이크 확정 소식이 들려왔다. '상견니'가 '너를 보고 싶다'는 의미의 제목이라면, 한국판 리메이크 '너의 시간 속으로'는 타임슬립 로맨스 장르의 특징을 살린 제목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안정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전여빈, 최근 드라마에서 맹활약하며 인기를 모은 안효섭, 강훈의 캐스팅도 시의적절해 보였다. 1998년으로 타임슬립하는 설정이어서 원작 드라마처럼 음악으로 시대 감성만 제대로 살려도 '응답하라 1997'(2012),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와 더불어 199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 대표 청춘 드라마가 될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사진=넷플릭스

음악은 원작 '상견니'에서 주인공이 타임슬립을 하는 매개체 역할 뿐 아니라 드라마 인기를 견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작에선 대만 록 가수 우바이가 1996년 발표한 '라스트 댄스'가 타임슬립 곡으로 쓰여 중독성 강한 효과를 일으켰다. '너의 시간 속으로'에서 과연 어떤 한국 노래가 타임슬립 곡으로 흘러나와 감흥을 일으킬지도 관건이었다.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는 1996년 서지원의 사후에 발표된 발라드 명곡이다. 유망한 젊은 가수의 유작이 된 이 노래는 당시 방송국 음악프로그램 1위에 오르며 센세이션한 인기를 일으켰다. 1996년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서지원의 안타까운 사연과 그의 노래가 흘러나오던 시간을 추억할 것이다. 한 시대를 대표하면서 청춘의 애절한 감성이 담긴 '내 눈물 모아'를 선곡한 건 적절한 선택이다.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너의 시간 속으로'로 빠져들게 하는 일등 요소다. 안효섭과 전여빈은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다른 성격의 두 인물을 소화하며 넓은 연기폭을 보여 준다. 안효섭은 원작 드라마에서 같은 역할을 맡은 대만배우 허광한과 또 다른 매력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허광한이 맑고 청량한 쿨톤에 가깝다면, 안효섭은 따뜻하고 친근한 웜톤 매력으로 캐릭터를 돋보이게 한다. 

사진=넷플릭스

고등학생과 30대 후반의 직장인을 오가는 전여빈은 후반부로 갈수록 폭발적인 연기력으로 압도한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두 인물의 상반된 성격이 후반부에서 두드러지는 설정인데, 전여빈의 뛰어난 캐릭터 해석 능력과 빈틈없는 연기가 드라마의 든든한 뒷심 역할을 한다. '옷소매 붉은 끝동'(2021), '작은 아씨들'(2022), '꽃선비 열애사'(2023)에 출연해 대세 배우로 떠오른 강훈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며 짝사랑하는 순애보적인 역할을 맡았다. 원작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캐스팅에 강훈의 차분한 연기가 더해져 원작 팬과 신규 팬 모두를 만족시킨다. 

원작의 복잡한 타임라인을 비교적 따라가기 쉽게 바꾼 점은 '너의 시간 속으로'의 장점으로 꼽을 만하다. '상견니'의 무한루프 설정은 단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원작보다 빠르고 친절한 전개로 진입 장벽을 낮췄다. '아름다운 구속' '네버엔딩스토리' '벌써 일년' '사랑과 우정 사이' '사랑한다는 흔한 말' 등 1990년대 인기 가요를 원곡이 아닌 리메이크곡으로 채워 익숙함과 신선함의 조화를 주고자 한 노력도 엿보인다. 

사진=넷플릭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너의 시간 속으로'는 장점이 단점을 감싸주지 못한다. 원작을 보았다면 원작의 장점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하는 형국이다. 원작 없는 오리지널 드라마라면 괜찮은 타임슬립 청춘 드라마로 평가했을 것이다. 원작과 비슷하면서 어느 정도는 다른, 각색의 절충을 시도했으나 정교한 설정이 단순해지면서 특별한 재미는 줄고 설명적 대사가 늘었다. 오리지널 음악이 주는 감정의 파급 효과가 리메이크로 인해 반감되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주연배우들의 개별 역량은 두드러지지만, 원작 드라마의 세 배우만큼 막강한 조합을 이루기엔 시너지가 부족하다. 시대 재현도 드라마를 위한 아름다운 장소와 풍경, 소품과 뉴스 등으로 간편하게 처리해 현실감을 떨어뜨린다. 

'너의 시간 속으로' 넷플릭스 공개로 드라마 '상견니'가 '지금 뜨는 콘텐츠' 항목에 오르며 재주목받고 있다. '너의 시간 속으로'가 극적인 차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리메이크작이었다면 본보기가 될 만한 선순환을 일으켰을 테다. 원작의 고유한 장점을 살리면서 원작과 다른 새로운 매력을 더하는 리메이크 작업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엇비슷한 K-청춘 드라마에 머문 '너의 시간 속으로'는 큰 아쉬움을 남긴다. 한국 드라마의 수준과 위상은 높아졌어도 아직까지 한국판 리메이크에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리메이크 시험대에 오를 다음 타자가 누구든, 드라마 홍보를 위한 물량 공세보다 롱런하는 '상견니'의 흥행 비결을 먼저 꼼꼼히 살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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