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 ‘싸움닭’ 된 미래에셋.... 여의도 ‘IFC서울’ 매각 결렬 다툼 장기화 조짐
보증금 2000억 돌려달라 SIAC에 중재 신청했으나 쉽게 결론 안나
미래에셋이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서울) 인수 무산 후 매각자인 캐나다 브룩필드자산운용에 이행 보증금 2000억 원 반환을 요구하면서 벌어진 국제 분쟁이 1년째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해 IFC 서울을 4조1000억 원에 매입하려던 계약이 파기된 후 브룩필드 측에 이행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브룩필드는 매매가 결렬된 것은 미래에셋의 역량 부족 때문이라며 보증금 반환을 거부했다. 이에 미래에셋은 지난해 9월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에 중재를 신청했고, 이후로도 양측은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SIAC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는 알 수 없지만, 주목할 만한 점은 미래에셋이 최근 몇 년간 매수자로 참여한 국내외 대형 부동산 거래가 잇따라 깨졌다는 점이다. 2020년 미국 호텔 매입 계약 무효를 놓고 중국 안방보험을 상대로 이긴 경험이 있긴 하지만, 잦은 법정 다툼으로 미래에셋 스스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신뢰도를 깎아 먹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IFC 서울은 연면적 50만6205㎡ 규모에 오피스 3개 동(각 32·29·56층), 콘래드호텔, IFC몰로 구성된 대형 복합상업 시설이다. 브룩필드는 2014년 서울 사무소 개소 후 2016년 AIG로부터 IFC 서울을 2조5500억 원에 매입했다.
브룩필드는 2021년 11월 IFC 서울을 매물로 내놨다. 이듬해 5월 미래에셋이 매입 가격 4조1000억 원을 써내 신세계프라퍼티·이지스자산운용 컨소시엄을 제치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매매가 완료될 경우 브룩필드는 1조5500억 원가량 차익을 챙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미래에셋은 브룩필드와 IFC 서울 매입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이행 보증금 2000억 원을 지급했다. 보증금은 미래에셋증권이 약 1500억 원, 미래에셋캐피탈이 약 350억 원,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약 150억 원을 출자해 마련됐다.
미래에셋은 인수 자금 4조1000억 원 중 2조 원을 리츠(부동산 투자 신탁) 설립을 통해 조달하려고 했다.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에 ‘세이지리츠’ 영업 허가를 신청했으나, 국토부는 대출 비중과 부채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리츠 영업 인가를 내주지 않았다. 브룩필드는 미래에셋이 MOU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해지를 통보했다.
당시 금리 인상으로 미래에셋은 나머지 인수 자금 2조1000억 원을 대출로 조달하려던 계획도 차질을 빚었다. 양측 MOU 체결 후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2022년 6월, 7월, 9월 각각 0.7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올렸다. 금리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대출을 통한 자금 조달 비용은 비싸지고 리츠 투자자 모집은 더 어려워졌다.
미래에셋도 MOU 해지를 통보하며 브룩필드에 이행 보증금으로 낸 2000억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MOU에 국토부로부터 리츠 인가를 받지 못할 경우 보증금을 반환한다는 예외 조항이 있기 때문에 브룩필드가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게 미래에셋 측 입장이다. 미래에셋 측은 “국토교통부로부터 리츠 구조에 대한 인가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최종적으로 인가를 받지 못했다”며 “브룩필드 측이 먼저 MOU 해지 통지를 하는 등 거래 종결을 위한 의무 이행을 거절했기 때문에 이는 다른 매수인(미래에셋 측)의 계약 해지권 발생 및 매도인(브룩필드 측)의 이행 보증금 반환 사유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래에셋은 보증금 반환 갈등을 싱가포르 SIAC로 끌고 갔다. 지난해 9월 26일 SIAC에 보증금 반환을 위한 중재를 신청했다. 금융 투자업계에선 워낙 이례적인 일이라 결과가 언제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근 수십여 년간 지난해 같은 가파른 금리 인상 국면이 없었기 때문에 해당 딜이 무산된 것이 미래에셋의 역량 부족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래에셋 측은 “중재 절차 결과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크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브룩필드는 미래에셋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계약이 해지됐기 때문에 보증금을 돌려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미래에셋이 설계한 리츠에 문제가 있어 영업 허가가 나지 않았고, 그 때문에 IFC 서울 매각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냐를 둘러싼 입장차가 쟁점이다.
양측은 브룩필드의 납세 회피용 역외 거래 시도를 두고도 날 선 공방을 벌였다. 브룩필드가 리츠 인가 불발 후 IFC 서울 매각 세금을 한국 과세 당국에 내지 않기 위해 역외 거래를 요구했다는 게 미래에셋 측 주장이다. 브룩필드는 싱가포르에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IFC 서울을 보유하고 있다. 브룩필드가 역외 SPC 지분을 매각하면 역외 거래에 해당하기 때문에 한국에 매각 차익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브룩필드는 세금 회피 목적의 역외 거래 요구 주장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미래에셋 내부적으로는 보증금을 되받아 내는 데 대해 자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11월 미래에셋이 미국 호텔 인수 무산과 관련한 중국 안방보험과의 법적 다툼에서 이긴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래에셋은 2019년 9월 중국 안방보험으로부터 뉴욕 JW메리어트 에섹스하우스를 포함해 미국 호텔 15곳을 58억 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당시 안방보험은 자금난 악화로 2018년 국유화된 후 해외 자산 일부를 매각 중이었다. 미래에셋은 안방보험에 계약금으로 매매액의 10%인 5억8000만 달러를 지급했다. 그러나 계약 체결 직후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미래에셋은 2020년 5월 안방보험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미래에셋은 안방보험이 제3자와 일부 호텔 소유권을 놓고 소송 중이란 사실을 밝히지 않았고, 매수자인 미래에셋의 동의 없이 호텔 직원 해고, 영업 중단과 같은 극적인 변화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안방보험은 미래에셋을 상대로 약속한 매매 대금을 지급하라고 계약 이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델라웨어주 형평법원은 2020년 11월 30일 안방보험이 선행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다며 안방보험 청구를 기각했다. 안방보험이 미래에셋에 계약금을 반환하고 거래 비용과 소송 비용 368만 달러를 별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안방보험은 2021년 3월 항소에 나섰으나, 델라웨어주 대법원은 그해 12월 계약 해지를 인정한 1심 판결을 확정하며 미래에셋 손을 들어줬다.
안방보험과의 소송에서 미래에셋이 승소한 배경엔 당시 미·중 정부 간 격렬한 갈등 상황에서 미국 측의 정치적 판단이 일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1심 판결이 나올 당시는 재선 도전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때리기 수위를 한창 높였을 때다. 대선에서 이긴 조 바이든 현 대통령도 중국 견제 기조를 이어갔다. 브룩필드와의 분쟁엔 미·중 대립과 같은 외부 변수가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래에셋이 국제적 신뢰도나 평판 타격을 감안해 보증금을 일부 돌려받는 선에서 합의를 볼 가능성을 거론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1년이 다 되도록 중재안이 도출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양측이 물러섬 없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어떤 이유에서든 미래에셋이 본국인 한국에서 리츠 허가를 받지 못하고 투자자를 모으지 못했다는 점은 미래에셋의 딜 성사 능력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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