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인턴’ 라미란 “2년의 경력단절, ‘고해라’가 저였죠”[스경X인터뷰]

하경헌 기자 2023. 9. 1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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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드라마 ‘잔혹한 인턴’에서 고해라 역을 연기한 배우 라미란. 사진 티빙



배우 라미란은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로 인상적인 엄마로 등장했다. 지난 6월 막을 내린 JTBC 드라마 ‘나쁜엄마’에서는 사고로 8살 아이가 돼버린 청년의 아들을 위해 스스로 ‘나쁜엄마’의 길을 택하는 영순을 연기했다.

그리고 지난달 11일 공개된 티빙의 오리지널 드라마 ‘잔혹한 인턴’에서는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때문에 7년 만에 MD(상품기획자) 업무에 인턴으로 복귀하는 고해라 역을 맡았다.

같은 엄마지만 ‘나쁜엄마’와 ‘잔혹한 인턴’에서의 라미란은 약간 다르다. 전작이 엄마의 역할에 좀 더 충실했다면, 고해라는 엄마를 넘어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의미가 더 크다. 극의 모든 갈등은 그가 짊어진 책임에서 비롯된다.

티빙 드라마 ‘잔혹한 인턴’에서 고해라 역을 연기한 배우 라미란. 사진 티빙



“경력단절의 경험요? 분명히 있죠. 배우 직업은 작품이 없으면 백수니까요. 실제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2년 공백기가 있었는데 정말 작품에 공감했던 부분이었죠. 다시 무대로 돌아가고 싶은데 아기만 봤던 시절이 있었어요. ‘누가 날 불러줄까’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따라왔어요.”

극 중 해라는 과거 회사 동기였던 지원(엄지원)에게 입사를 시켜주는 대신, 출산이나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등 육아휴직의 사유가 있는 사원들 퇴직을 유도하라는 비밀지령을 받는다. 초반 어쩔 수 없이 지시를 따르지만, 여기서 오는 죄책감과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한다.

“예전에 일했을 때와 지금의 해라는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로 나오지만, 지금은 주변의 아픔에 공감합니다. 그 당시 해라에게는 육아휴직을 혜택이라 여기고 적대시했던 부분이 정의였던 거죠. 지금의 해라는 인생의 풍파를 겪고 삶의 가치관도 바뀌어요. 부드러워지고 죄책감을 느끼게 되죠.”

티빙 드라마 ‘잔혹한 인턴’에서 고해라 역을 연기한 배우 라미란. 사진 티빙



지원 역 엄지원과는 2013년작 영화 ‘소원’ 이후 다시 만났다. 심지어 같은 회사기도 하다. ‘소원’ 이후 같은 작품을 한 적은 없었지만, 서로의 안부는 늘 챙겼고 함께 하지 않았지만 내적 친밀감은 유지하고 있었다. 남편 공수표 역 이종혁은 서울예대 동기다.

“처음 부부 호흡을 맞춘다고 했을 때, 애정 장면이 있는지 찾아봤을 정도였어요. 동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메신저 방이 있는데 ‘동기끼리 못 할 짓이지…’하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죠.(웃음) (이)종혁이가 자상하고 이런 타입은 아니라 투덜대긴 했지만, 같이 연기를 처음 해보니까 재미는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라미란의 역사는, 물론 그가 무대연기를 계속해오긴 했지만. 영화와 드라마 등에 출연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아이를 낳고 집에서 육아에 몰두하고 있을 때, 어린 시절 돌렸던 프로필로 인해 오디션 연락이 갑작스럽게 왔다. 그렇게 박찬욱 감독의 2005년작 ‘친절한 금자씨’에 출연할 수 있었다. 그는 인턴으로 직급이 떨어져 사회생활을 하는 고해라를 “100% 이해할 수 있다”며 “연기도 한 1, 2년 안 하면 감을 잃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티빙 드라마 ‘잔혹한 인턴’에서 고해라 역을 연기한 배우 라미란. 사진 티빙



“그래도 가정이 생기고 아이를 만나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어요. 우선 주변에서 ‘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많이 말해줬어요. 예전에는 눈꼬리가 마치 구형 아반떼 승용차의 후미등처럼 치켜 올라가 있었는데, 결혼하고 부드러워졌다고들 하더라고요. 성격 역시 외향적이었다가 조금 내향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예전에는 시간이 헛되지 않으려 노력을 했다면, 지금은 어떤 평가가 오든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나쁜엄마’에서 라미란의 모습은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재미있는’ 라미란의 모습이 아니라 낯섦과 함께 놀라움을 안겼다. 촬영은 조금 먼저 끝났었지만 ‘잔혹한 인턴’ 역시 비슷하다. 이 드라마의 사전 홍보를 접하고 작품을 본 사람들은 마냥 라미란이 웃겼을 것 같았지만 실제는 안 그랬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장기인 코미디를 안 해도 되느냐’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코미디는 너무 힘들어요. 재미라는 게, 저는 결국 이걸 어디서 찾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공감의 포인트에서 찾는 것이냐,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하냐의 문제인 거죠. 지금까지 하던 코미디와는 결이 다르지만 저는 코믹한 작품에서도 진지한 적이 많았었어요.”

전작의 영순이 엄마의 역할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잔혹한 인턴’의 해라는 가정에서뿐 아니라 직장에서 또한 여성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모두가 어떤 시선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여지를 남겼다. 그의 표현대로 조금은 ‘확장’된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의 모습은 제작이 진행 중인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 ‘정년이’ 등에서 또 볼 수 있다. 라미란이 나름 만들어내는 ‘엄마의 유니버스’. 그 모습이 시청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듯하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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