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도 3연투 지양하는데 "규정 맞췄다"…'5연투→9일 247구' 김택연 '혹사' 논란, 유망주 갈아넣은 銅 의미있나?
[마이데일리 = 박승환 기자] "글쎄요. 대회 규정이었고, 작년과 비슷하게 던졌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세계 청소년 대표팀은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2023 WBSC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U-18)에서 '동메달' 획득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고 1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청소년 대표팀은 조별리그 대만과 맞대결에서 1-6으로 패하며 아쉬운 스타트를 끊었지만, 체코와 호주, 멕시코, 푸에르토리코를 모조리 꺽으며 슈퍼라운드 무대를 밟았다. U-18 대표팀은 슈퍼라운드 1차전에서 '숙적' 일본, 2차전에서 미국에게 연달아 무릎을 꿇었지만 3차전 네덜란드를 격파했고, 3~4위 결정전에서 다시 만난 미국을 무너드리면서 동메달을 품에 안았다.
U-18 대표팀의 동메달은 박수를 받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메달 획득이라는 성과보다는 '혹사 논란'으로 얼룩이 졌다. 바로 황준서(장충고)와 함께 오는 14일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를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는 김택연(인천고)의 투구 때문이었다. U-18 대표팀의 동메달 획득의 '선봉장'에 선 김택연. 그는 이번 대회에서 9일 동안 무려 247구를 던졌다.
'프로' 무대에서 사령탑들이 팀을 운영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마운드다. 선발 투수의 경우 아무리 팀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도 충분한 휴식을 준 뒤 마운드에 올린다. 그렇기 때문에 '선발 로테이션'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5명의 선수가 순서대로 등판 기회를 갖는다. 불펜 투수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KBO리그 사령탑들은 144경기의 시즌을 운영할 때 불펜 투수들의 '가중 피로도'에 신경을 가장 많이 쓴다. 특히 '3연투'의 경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특정 팀과의 3연전에서 근소한 격차로 경기의 흐름을 주도하더라도 세 경기 연속으로 같은 셋업맨과 마무리 투수를 내보내지 않는다. 경기가 뒤집히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시즌 초반에는 되도록 3연투를 지양한다.
선발 투수들의 4일 휴식 등판과 3연투 등은 구단과 코칭스태프에서 결단을 내린 후 선수에게 '통보'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의 무대에서 선수의 '동의'가 없다면 결코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없는 대목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시즌 막바지 한두 경기로 포스트시즌의 진출 여부가 달려있을 때는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4일 휴식 로테이션과 3연투를 감행하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예외적 상황. 그만큼 투수들의 어깨와 팔꿈치는 '소모품'이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물론 144경기를 치르는 기나 긴 '페넌트레이스'와 달리 '단기전'의 경우 투수 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같은 불펜 투수가 세 경기 연속 마운드에 오를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피로도를 감안해 4연투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프로에 입성하지 않은, 구단으로부터 철저한 관리를 받지 않는 선수가 9일 동안 247구, 게다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5일 연속 투구를 펼쳤다는 것은 전세계 어떤 나라와 구단을 보더라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U-18 대표팀에서 일어났다. 바로 김택연이었다.
# 김택연의 등판 일지
2일 대만전 3이닝 54구
3일 휴식
4일 호주전 ⅔이닝 15구
5일 휴식
6~7일 푸에르토리코전(서스펜디드 포함) 3이닝 40구
7일 휴식(일본전)
8일 미국전 1⅔이닝 16구
9일 네덜란드전 1이닝 24구
10일 미국전(선발) 7이닝 98구
김택연은 올해 고교무대에서 13경기에 등판해 7승 1패 평균자책점 1.13의 엄청난 서적을 남겼다. 김택연은 64⅓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사사구는 10개에 불과했고, 삼진은 97에 달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선수로 황준서가 전체 1순위로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게 된다면, 2순위로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한화가 황준서가 아닌 김택연을 지명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특급유망주'라고 볼 수 있다.
고교 시절에도 결코 적지 않은 이닝을 던졌던 김택연은 우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U-18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대회 첫 경기 대만과 맞대결에서 황준서에 이어 마운드를 남겨받은 후 3이닝 동안 54구를 던졌다. 그리고 이튿날 휴식을 부여받은 뒤 4일 호주를 상대로 등판해 ⅔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15구를 투구, 5일 휴식을 가졌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김택연의 '혹사'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6일 푸에르토리코전부터 시작됐다.
김택연은 선발 박기호가 ⅓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간 뒤 곧바로 바통을 넘겨받았다. 서스펜디드로 인해 경기가 하루 연기됐지만, 김택연은 이틀에 걸쳐 40구를 던졌다. 이때문에 7일 열린 일본전에는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지만, '연투'는 이어졌다. 김택연은 8일 미국전에 등판하더니 9일 다시 마운드에 오르면서 조금씩 '혹사' 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10일 미국과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선발 투수로 나서 7이닝 동안 무려 98구를 던지면서 '정점'을 찍었다.
대회 시작 나흘 동안에는 '관리'를 받으면서 마운드에 올랐던 김택연. 그러나 등판 일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푸에르토리코와 맞대결을 시작으로는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5일 연속 마운드에 올랐다. 대회기간 9일 동안 총 247구, 5일 연투를 펼치는 상황에서는 무려 178구를 던졌다. 사실 '혹사'라는 단어는 사용하는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단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김택연에게는 혹사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국내 언론에서 김택연의 혹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자 이영복 U-18 대표팀 감독(충암고)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영복 감독은 1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김택연이 너무 많이 던지지 않았나라는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글쎄요. 대회 규정이 있고, 공 갯수나 휴식일을 규정에 맞춰서 (투수) 운용을 했다"는 답을 내놓았다.
'프로' 무대에서 3연투, 4연투, 5연투 등에 대한 규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령탑들은 선수들의 '미래'를 생각해 선수들을 최대한 무리시키지 않는 편이다. 평생 한 팀에서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도 선수들과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 앞장서서 선수들을 보호하는 편. 하지만 이영복 감독은 '규정'을 언급했다.
대회 규정에 맞게 투수를 운용했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영복 감독은 "동메달 결정전에 가기 전까지는 정상적인 것이었다. 지금까지 투수가 던진 것은 작년과 비례해서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공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혹사)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아진다"며 "혹사나 무리를 시키지 않기 위해서 규정을 만든 것이다. 그에 맞춰서 경기를 한 것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없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영복 감독은 가장 칭찬하고 싶은 선수로 김택연을 꼽았다.
이영복 감독이 '규정'을 지켜나가며 김택연을 기용한 것은 맞다. 그렇기 때문에 김택연이 계속해서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규정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혹사 논란'이 나오는 것은 지켜보는 이들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U-18 대표팀의 동메달은 축하할 만한 일. 하지만 한 선수의 어깨와 팔을 갈아넣으면서 얻은 성과가 과연 뜻깊은 것인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U-18 대회에서 '혹사' 논란에 휩싸였던 곽빈(두산 베어스)은 입단 직후 곧바로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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