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영화는 '1947 보스톤'...기억해야할 감동의 레이스[이 영화]
[파이낸셜뉴스]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나요?” 제2의 손기정을 꿈꾸는 ‘서윤복’ 역 임시완이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 중계방송 해설자의 무심한 말투를 딛고 힘차게 땅을 내딛을 때마다 마음이 웅장해진다.
경기 결과를 아는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역사적 순간을 스크린을 통해 목도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흥분되고, 특별하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서 “내 이름은 몰라도 BTS와 블랙핑크는 알 것”이라고 발언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76년전 조선은 미군정 치하 '난민국'으로서 선수들의 가슴에 태극기조차 마음대로 달지 못했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한국영화 4파전이 예고된 가운데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이 베일을 벗었다. 추석연휴를 맞아 온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감동의 드라마로 손색없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가 아니라 그의 제자 서윤복이 1947년 제51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신기록을 세운 이야기다.
호주 멜버른을 중심으로 구현된 보스턴마라톤대회 코스는 1947년 그날의 영광을 사실감 있게 재현하며 손기정과 서윤복, 남승룡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다.
선후배 사이인 손기정과 남승룡이 티격태격하고 서윤복이 불우한 가정사를 딛고 마라토너가 되기까지 여정을 그린 전반부보다 이들이 덜컥거리는 비행기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미국에 도착해 예상치 못한 난관을 극복하고 대회를 치르며 극적 드라마를 써내려가는 후반부가 더 흥미롭다.
■손기정,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그 순간
외교통상부 인물한국사에 따르면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히틀러는 아리아 인종이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통해 자신의 인종주의적 주장의 정당성을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해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 운집한 12만명의 관중은 조선에서 온 과묵한 마라토너 손기정이 맨 처음으로 결승점을 통과하는 순간을 목도했다.
당시 마라톤 경기를 중계한 독일 방송은 “한국 대학생(koreanischer Student)이 세계의 건각들을 가볍게 물리쳤다”고 보도했다.
결승선에 도착하기 전 그의 마지막 100m 기록은 11초였다. 마지막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한 그의 기록은 2시간 29분 19초 2. 신기록이었다.
히틀러는 깡마르고 우울한 표정의 우승자 손기정과 기꺼이 악수했고, 히틀러를 도와 인종주의적인 다큐멘터리 ‘올림피아’를 제작하던 독일의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은 3시간짜리 다큐멘터리 중에 10분 이상을 손기정의 뛰는 모습으로 채웠다고 한다.
손기정은 1등을 했지만, 만세도 하지 않고 환호도 부르지 않았다. 3위를 한 남승룡과 함께 스타디움에 일장기가 오르고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흘러나올 때 손기정은 더욱 고개를 숙였다. 그는 월계수 나무로 입고 있던 옷에 새겨진 일장기를 가렸다.
■제2의 손기정, 서윤복이 태극마크를 달다
1775년 4월 19일 영국군이 보스턴을 공격한다는 급보가 있자 주민들이 무기를 들고 이에 맞서서 싸움으로써 미국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2013년 폭탄 테러로 더 익숙해진 보스턴마라톤대회는 이처럼 미국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애국자의 날’을 기념하며 1897년에 제1회 대회가 개최됐고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올림픽 다음으로 오래된 마라톤대회다.
‘1947 보스톤’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한 조선 마라토너들의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다.
해방 직후 모든 것이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시기, 한국 마라톤의 전설 ‘손기정’(하정우)과 남승룡 그리고 또 다른 영웅 ‘서윤복’(임시완)이 보스턴에 가기까지 험난한 여정이 펼쳐지고, 대한의 독립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마라톤대회에 참여한 역사적 순간이 재현된다.
‘서윤복’ 역 임시완은 실제 마라톤 선수 훈련량의 60~70%까지 소화해 냈다고 하는데, 마라토너의 체형으로 변모한 그의 몸에서 그동안 흘린 피땀눈물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제작진에 따르면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를 비롯해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자 故함기용 선수, 한국 여자 마라톤 신기록을 세웠던 권은주 선수의 자문을 받아 경기 장면의 리얼리티를 한층 높였다.
강제규 감독은 앞서 “리얼리티에 가장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덕분에 1947년의 서울과 보스턴을 고스란히 재현한 미술팀과 CG팀의 고군분투가 눈길을 끈다. 9월 2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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