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최고의 투수' 출신→손성빈-소형준 은사→'韓 최초' 현지 코치 도전, 김덕칠은 누구인가? [인터뷰]

박연준 2023. 9. 1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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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리그 선수 시절 김덕칠과 현재 김덕칠의 모습. 사진=MHN스포츠 박연준 기자

(MHN스포츠 박연준 기자) "대만에는 제 추억과 꿈 그리고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역대 대만 리그 최고의 투수 선정, 그리고 소형준의 스승을 거쳐 한국인 최초 대만 리그 코치 도전에 나선 김덕칠. 과연 그는 누구인가?

김덕칠은 1993년 OB 베어스(현 두산)에 지명을 받았으나, 프로야구 선수가 아닌 한국전력 실업 야구팀 선수로 활약한 선수다. 이어 일본과 미국이 아닌 대만 리그를 선택하여 대만 현지에서 큰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대만 현지 언론매체인 싼리신문(三立新聞)에 따르면 대만프로야구 리그(CPBL)의 웨이취안 드래곤즈(味全龍)가 구단 역대 최고의 투수로 한국인 언더핸드 투수 김덕칠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매체에 따르면 김덕칠은 지난 1999년 대만 리그에 입성하여 당시 웨이취안에서 16경기에 등판해 46이닝 동안 4승 1패 2세이브 3.13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구단의 3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웨이취안 구단 관계자는 김덕칠에 대해 "월급 5천 달러(한화 약 600만원)를 받고 통역 없이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했던 선수"라며 "김덕칠은 대만 리그 챔피언 결정전인 '타이완 시리즈'에 등판하여 승리투수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선수이기 때문에 그를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김덕칠은 이에 대해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나를 기억해 준 대만 현지 팬분들과 웨이취안 구단에 감동 받았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김덕칠이 회상하는 대만 리그

김덕칠은 CPBL리그 웨이취안 드래곤즈와 대만 직업야구 대연맹(台灣職業棒球大聯盟) 리그 FALA 구단(현 라쿠텐 몽키스 전신)에서 총 2년간 활약했다. 대만에서의 통산 기록은 46경기(22선발) 출전 184이닝 13승 7패 평균자책점 3.91의 성적을 남겼다.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그가 여태껏 대만 현지에서 기억되는 이유는 승부처 등 중요한 순간마다 팀을 구해내는 수호신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지난주 MHN스포츠와 만나 인터뷰를 가진 김덕칠은 "대만 리그엔 여전히 내 추억과 꿈, 그리고 삶이 담겨 있다"고 회상했다. 그는 "대만 리그에서 내 전성기를 보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해외 생활을 했기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나를언제나 반겨준 대만 선수들 덕분에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 홍이중 감독과 배터리를 맞춘 김덕칠. (제공ㅣ김덕칠 본인)
예쥔장 감독과 배터리 호흡을 맞추는 모습. 제공ㅣ김덕칠 본인

특히 김덕칠은 대만에서 뛰면서 현재 대만 리그 명장으로 불리는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다. 대만 야구 대표팀은 물론, 라미고 몽키스(현 라쿠텐), 푸방 가디언스, 올 시즌 새롭게 창단한 TSG 호크스의 사령탑을 맡은 홍이중(洪一中) 감독과 배터리를 맞췄다.

김덕칠은 "홍이중 감독이 선수 시절 같이 배터리를 맞추면서 나를 많이 이끌어줬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명장이 될 수 있는 리더십을 보였다. 또 내가 언제나 편하게 던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줬다"고 기억했다.

이어 현재 웨이취안 드래곤즈 사령탑을 맡고 있는 예쥔장(葉君璋) 감독과도 웨이취안 소속 당시 호흡을 맞췄다. 특히 예쥔장 감독에 대한 김덕칠의 각별한 마음이 돋보였다. 김덕칠은 "항상 나에게 따듯한 모습을 보여준 선수였다"라며 "마운드에 올라서 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거나 심판 판정에 불만을 표현하면, 나와 한 몸이 된 것처럼 같이 화를 내주고 화이팅을 외쳐준 고마운 영혼의 배터리"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예쥔장 감독을 한국식 발음으로 '군종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자신이 후원받던 글러브를 나에게 선물해 주기도 하고 항상 나를 챙겨주던 고마운 친구다"라고 말했다.

또 자신을 이끌었던 사령탑이자 야구 은사인 대만 최고의 감독 서생명(徐生明)에게도 "서 감독님이 있어 내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다"고 감사함을 표현했다.

선수 시절 자신의 투구 영상을 보고 있는 김덕칠. 사진=MHN스포츠 박연준 기자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김덕칠은 본 기자에게 대만 리그에서 투구했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연내 "그립네요"라고 말했다. 그만큼 김덕칠 개인에게 대만 리그는 너무나도 소중했다.

야구선수 은퇴 후 김덕칠→김도현 개명,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을 키워냈다

은퇴 후 김덕칠은 본격적으로 지도자 길에 올랐다. 그사이 이름을 김도현으로 개명하기도 했다. 그는 서울 잠신중학교 코치를 시작으로 야탑고등학교, 의정부 리틀야구단 감독과 동두천 리틀야구단 감독, 그리고 수원 장안고등학교 코치 등 여러 아마추어 명문 야구단에서 선수들을 키워냈다.

김덕칠이 키워낸 선수로는 KT위즈 소형준, 키움 히어로즈 주승우, 두산 베어스 박신지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 손성빈 등 현재 KBO리그를 빛내는 여러 선수들이 있다.

그는 "선수들이 즐겁게 야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지도 철학이다"라며 "지금 프로에서 뛰고 있는 제자들이 더욱 좋은 선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제2의 인생을 넘어 제3의 인생을 준비하는 김덕칠

김덕칠은 "한국인 최초 대만 리그 지도자의 길을 걷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고교야구 감독을 하고 있는이 순간에도 그의 꿈은 오로지 "대만 진출"이다.

고교 감독이라는 괜찮은 직업을 두고도 대만 진출을 희망하는 이유로는 "돈보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내 인생이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지내고 싶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지만, 아내에게도 벌써부터 양해를 구했고 허락을 맡았다. 대만 구단에서 연락이 온다면 꼭 현지에서 코치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

대만리그 감투상 수상 받을 당시의 김덕칠. 제공ㅣ김덕칠 본인

이후 김덕칠에게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본 기자와 연락이 닿은 웨이취안 드래곤즈의 예쥔장 감독은 김덕칠에 대해 "사나워 보였지만 이와 별개로 사람이 정말 좋았다. 언더핸드 투수로서 변화구 구사와 제구력 등 모든 부분이 훌륭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김덕칠이 아직 야구계에 머물고 있다면, 우리 웨이취안 구단에서 코치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 그가 우리와 함께하는 것은 매우 좋은 생각"이라고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다.

대만 리그를 경험한 한국인 투수 타이틀을 넘어 어쩌면 대만 리그 최초 한국인 코치가 탄생할지 모른다. 과연 그의 행선지가 어디로 향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순간이다. 

김덕칠 역시 "성사된다면 너무나도 감동이다.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다. 대만에서 내 꿈과 추억을 재회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이름을 김도현으로 개명했으나, 만약 대만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김덕칠(金德七)로 다시 바꾸도록 하겠다. 덕칠이라는 이름이 대만 팬들에게 더 친숙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전하며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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