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아픈가’ 저명한 사회학자가 들려주는 답변
사랑은 무엇일까.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학장, 에바 일루즈가 파헤치는 모든 인류의 관심사.
일루즈의 '사랑은 왜 아픈가’(2011)는 직설적인 제목을 갖고 있다. 연애 지침서나 실연을 달래주려는 책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책장을 펼쳐 보면 본격적인 연구서라 당황스럽다. '사랑의 사회학’이란 부제가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경고처럼 붙어 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노라면 왜 사랑의 아픔과 기쁨을 진지하게 다뤄야 하는지에 천천히 설득된다. 그래서 한 번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이슈를 연구하는 게 사회학이라지만, 사랑의 인문학이라면 모를까 사랑의 사회학이란 말은 낯설다. 그런데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사랑의 사회학이란 말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사랑은 개인적 체험이지만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사랑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 사회적 배경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랑의 사회학은 일단 말이 된다.
사랑의 사회학에서 사랑과 떼어낼 수 없는 것이 결혼이다. 결혼은 가족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사회적 계약이다. 최근 비혼이 크게 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는 결혼했다. 결혼을 위해서 사랑이 필요하고 이 사랑을 위해 연애 또는 중매 과정을 거쳤다. 중매가 젊은 친구들에게는 낯설겠지만 요즘 자유로운 소개팅은 21세기형 중매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어느 시대건 결코 사랑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체험은 누구에게나 대단히 극적이고 깊은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 삶을 뒤흔들어 놓는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볼 수 있듯 사랑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걸기도 했다. 이런 사랑의 모습은 21세기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1세기 사랑의 특징
일루즈에 따르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의미다. 서양 근대에서 결혼이란 많은 사람이 뒤얽히는 중대한 경제적 변화였다. 구애와 결혼 풍습은 근대라는 시대의 사회적 특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사회적 신분, 종교적 성향, 경제적 지위가 배우자의 선택 기준이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사회에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오면서 배우자를 선택하는 조건이 바뀌었다. 일루즈는 이를 선택의 "거대한 전환"이라고 말한다. 사랑에 앞서 거대한 전환을 보여준 것은 경제적 시장이다. 현대자본주의 시장은 전통적인 규범을 벗어나 독자적인 자기규제라는 특성을 드러냈고, 이 자기규제 시장에서는 상품 자체의 경쟁력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됐다.
현대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의 사랑 선택은 도덕적인 전통적 공동체에서 떨어져나와 자율적 규제 기능을 갖는 '결혼 시장’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결혼 시장에서는 전통적인 규범이나 도덕이 힘을 잃고 특히 대중매체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배우자를 고르는 데 우선하는 것은 감정과 성적 매력이고, 특히 섹시함이라는 경쟁력이 가장 중요해진다고 일루즈는 말한다.
근대 19세기 초반 '오만과 편견’ 등을 발표한 제인 오스틴의 세계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사회계급에 결부된 도덕을 바탕으로 '낭만적 선택 결정’을 했다. 그런데 현대 결혼 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이제 어떤 사람을 만날지는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됐고, 외모나 섹시함을 수단으로 사회경제적 권력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이쯤에서 보면 일루즈의 주장은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외모 지상주의를 심도 있게 분석한다는 데 있다. 물론 일루즈가 주목하는 유럽과 미국의 사랑 방식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사랑 방식 사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염두에 둬야 하지만 말이다.
일루즈의 날카로움은 현대 사랑에서 남성과 여성이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을 내놓는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남성의 경우 두드러지는 점은 감정적 교류를 가능한 한 피하고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는 여성의 유혹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결혼으로 여자보다 남자가 얻는 이익이 많고, 결혼하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대답이 남자보다 여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현대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놓인 자리는 적잖이 다르다. 현대 문화가 남성에게 심리적 자율성과 경제적 성공을 거두라고 압박을 가하는 동안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역할은 여성의 몫으로 남겨졌다. 여기서 주목할 건 여성에게 가해진 시간의 압박이다. 교육과 직업 선택으로 인해 오늘날 여성들은 과거보다 더 늦게 결혼 시장에 진입한다. 사랑의 선택에서 젊음과 섹시함을 일차적으로 중시하는 기준은 이런 제한된 여성의 시간을 더욱 압박한다. 게다가 가임기의 시한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여성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일루즈가 강조하려는 것은 이러한 상황 변화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나이 든 남성에게는 여전히 기회가 많고, 나이 들어가는 여성에게는 그 기회가 줄어든다. 이 일련의 과정 결과, 여성의 감정 세계는 남성의 감정 세계에 지배당한다. 사랑의 자율성이 크게 높아진 현대사회의 이면에는 이러한 '감정의 불평등’과 이로 인한 '사랑의 불평등’이 존재한다.
현대사회에서 사랑하기가 이렇게 복잡해졌는데도 일루즈는 사랑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지적한다. 그 까닭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열등감을 떨쳐내고 자신이 유일하며 소중한 존재라고 느끼게 해준다는 데 있다. 사랑이 만들어주는 자존감은 현대사회에서 특히 중요하다. 과거에는 사랑이 주는 자신감이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없었던 데 비해 이제 사랑을 통한 자기 존재의 인정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일루즈에 따르면 현대에서 개인의 사회적 가치는 경제·사회적 지위에 있다기보다는 자아로부터 길어 올려지는 그 무엇에 있다. 사랑이 제공하는 에로틱하거나 로맨틱한 관계는 이 자아의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사회적 가치는 타고난 신분이나 획득된 지위 같은 게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으로서의 '인정’을 통해 주어진다. 로맨틱한 사랑은 이러한 인정에서 핵심을 이루고, 이 '인정으로서의 사랑’을 통해 개인의 사회적 가치는 성장하고 성숙한다.
문제는 이러한 인정을 경험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 애매한 주관적 기준이 중요해지고, 이러한 기준의 변화에 따라 개인은 자연 불안해지게 된다. 자부심에 집착하는 자아의 강박관념은 이러한 불안감을 더욱 부추긴다. 사랑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을 경험하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오늘날 사랑은 더욱 불안해지고 불확실해지는 셈이다.
사랑의 힘
일루즈가 주목하려는 것은 이러한 협상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권력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랑의 진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그 게임 규칙을 정하는 존재가 대부분 남자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자율성이 더 오래 보장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나이가 들어도 상품 가치가 유지되기 때문에 사랑받고 싶다는 여자의 욕구를 감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일루즈는 비로소 '사랑은 왜 아픈가’라는 제목으로 다시 돌아온다. 여기서 아픔의 주체는 많은 경우 여성이다. 오늘날 사랑은 자기 자신을 인정받게 하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이 사랑의 과정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여성은 남성보다 더 적은 기회를 가질 수밖에 없다. 사랑이 이미 자율적 영역이 된 만큼 사랑의 좌절은 오롯이 자신에게 귀속된다. 아프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루즈는 에필로그에서 이 책이 이러한 사랑의 아픔을 줄여주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한다. 사랑이 여전히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며 사랑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아를 온전히 실현할 수 있고, 상호인정이라는 소중한 체험을 가능하게 하며,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사랑 말고는 없다.
일루즈에 따르면 오늘날 개인의 삶은 아주 은밀한 구석까지 거대 사회구조와 변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사랑받지 못하거나, 버림받거나, 거리를 두는 상대의 태도로 인해 아파하는 것 같은 감정적 고통의 경험은 현대의 주요 제도와 가치가 빚어놓은 결과라는 거다. 앞서 말했듯 현대사회에서 사랑은 자율적 영역이 됐고 결혼 시장은 남성과 여성 각각의 상품성을 극대화해놓았다.
이러한 현실에도 일루즈는 사랑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늘날 사랑의 중심을 이루는 육체적 사랑도 상대방의 존재와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떼어낼 수 없다. 윤리가 부재한 섹스로 인해 수많은 남성과 여성이 환멸을 곱씹으며 지쳐 신음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맞서 일루즈는 사랑이 갖는 힘과 희망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자신의 분석을 마감한다.
"사랑은 자아를 떠받드는 중요한 사회적 토대의 하나다. 그러나 사랑을 자아의 토대로 만들어주던 문화자원들은 소진되고 말았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섹스와 감정의 관계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히 윤리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런 관계야말로 자아의 자존감과 가치를 키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사랑의 새로운 윤리가 어떠해야 하는지 일루즈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새로운 형식의 열정적 사랑’을 찾아내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일루즈의 희망에는 동의할 수 있다. 까닭은 간단하다. 사랑 없는 삶보다는 사랑 있는 삶이 여전히 더 낫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덮으며 떠오른 생각은 두 가지다. 육체적 사랑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서구 사랑의 문법이 동아시아에 사는 내게는 여전히 낯선 것이 그중 하나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육체적 사랑 못지않게 정신적 사랑을 여전히 중시하는 동아시아적 전통 때문일까. 쉰 살을 넘어 사랑 타령하는 게 좀 그렇지만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다른 하나는 사랑의 힘이다. 일루즈 사랑론의 핵심은 개인의 자존감과 가치를 키우는 데 사랑만 한 게 없다는 거다. 사랑 지상주의는 21세기 오늘날의 현실을 지켜볼 때 철 지난 생각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 모든 건 아니더라도 삶을 정서적으로 풍부하게 해주는 것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사랑의 아름다운 힘은 존중하되 사랑의 지나친 구속을 벗어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내 생각은 그렇다.
성지연의 다시 만난 그녀들
1970년 출생.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어른의 인생 수업’이 있다.
#사랑은왜아픈가 #에바일루즈 #사랑 #다시만난그녀들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돌베개
사진출처 EBS캡처
성지연 에세이스트, 국문학 박사
Copyright © 여성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