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박사 조언 ‘부동산 심리 게임에서 이기는 법’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파트는 재테크의 첫 번째 수단이자 욕망의 대상이다. 집을 사고팔 때 경제적 지표들과 함께 인간의 심리라는 변수를 이해하고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부동산 심리 게임에서 이기는 노하우를 알아봤다.
전현진 경남대학교 경제금융학과 박사팀이 쓴 '유동성과 주택가격의 기대심리가 실질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2020)라는 논문을 보면 심리가 부동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연구팀은 실질 M2(광의통화), 실질 가계대출, 과거 주택가격, (미래)기대 주택가격 변수가 각각 1% 상승 혹은 증가했을 때 집값이 어느 정도 오르는지를 분석했다. 모형 분석 결과 4가지 변수 중 집값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기대 주택가격 변수다. 이 변수가 1% 늘었을 때 집값은 0.38%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으로 과거 주택가격(0.36%), 실질 가계대출(0.27%), 실질 M2(0.26%) 순이었다. 주택시장 참여자들이 미래의 주택가격에 대한 기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주택가격이 많이 변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부동산 시장 분석가로 유명한 박원갑 KB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아파트의 투자 상품화’에서 찾는다. 아파트는 다른 부동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래량이 많고 환금성이 좋다. 누구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면 쉽게 가격을 확인할 수 있다. 남들이 시세차익을 거둔 시장에 함께 숟가락을 얹지 못하면 불안, 초조, 질투에 휩싸이고 하락장엔 두려움이 앞서 급매를 던진다. 이렇게 비이성적인 쏠림이 시장을 지배할 땐 정부 정책도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박 위원은 최근 펴낸 '박원갑 박사의 부동산 심리 수업’에서 무수한 벼락거지와 영끌푸어를 양산해낸 부동산 심리전을 진단하며 "시대 전체가 겪고 있는 아파트 통(痛)을 이겨내려면 부동산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수시로 출렁이는 가격에 휘둘리지 않고 시장을 균형 있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아파트를 사고파는 대상(house)이 아닌 집(home)의 가치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이 책은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다양하고 밀도 있게 정리해놓아 부동산 시장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박원갑 위원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스피드뱅크 부사장, 부동산1번지 대표이사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KB부동산 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건국대에서 부동산 석사, 강원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집의 참다운 가치 회복 위한 반성적 사유 필요한 시점"
부동산 시장의 여러 변수 중 특히 심리에 주목하는 이유는.심리는 부동산에서 단기 변수일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바뀌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심리보다 펀더멘털이나 시장 기본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도 심리적 쏠림으로 인한 부동산 급등락으로 너무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 특히 뒤늦게 상승장에 뛰어들었던 MZ세대는 가격 폭락으로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사회에 진출한 뒤 처음으로 급락 사태를 겪으니 멘털 붕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베이비붐세대와 X세대의 하우스푸어도 집테크로 수난을 겪었지만 MZ세대의 영끌푸어는 더 고통이 심할 수밖에 없다. 10년 전보다 집값이 많이 오른 만큼 빌린 돈도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이러지, 뭐가 잘못됐지…, 삶에서 부동산과 집의 참다운 가치를 되짚어보는 반성적 사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심리적 쏠림이 나타나는 이유는 결국 부러움 때문 아닐까.
아파트는 특별한 투자 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투자 가능한 범용 상품이다. 로또 청약에 당첨된 이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청약통장을 만들어 꼬박꼬박 납입한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다. 원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법이다. 질투의 대상은 나와 차원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고 먼바다의 고기보다 눈앞에서 놓친 고기가 더 아까운 법이다. 아파트를 살까 말까 하다가 나는 안 사고 동료는 샀다. 그런데 집값이 급등했다. 그러면 과감하게 결단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게 된다. 미완성 과제에 집착하며 미련을 갖는 이른바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 때문이다. 배 아픈 사람이 많으면 사회통합이 저해되고 근로 의욕이 상실돼 사회적으로 좋은 현상은 아니다.
책에 "초심자의 행운을 경계하라"고 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부동산으로 한두 번 수익을 내본 사람들은 '부동산 불패 신화’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정확히 예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투자에 성공하는 사람들 대부분 때를 잘 만났기 때문이다. 시장 분석을 잘했다고 해도,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미국발 고금리 쇼크 같은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지면 전망이 무의미해진다. 자신의 투자 실력을 맹신하고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투자에 계속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영웅이 탄생하면 그 시장은 버블이다. 영웅 탄생은 살 때가 아니라 팔 때라는 것을 알려주는 인간 지표다. 그때가 비이성적인 과열의 정점일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 발을 빼야 할 시점이라는 이야기다.
아파트를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는.
홈과 하우스의 균형을 맞추는 거다. 모든 것, 심지어 미술품까지 조각으로 나눠 투자하는 자본화 시대에 홈의 가치만 추구하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건 갓 쓰고 오토바이 타는 것과 마찬가지다. 몸테크가 싫어서 내 마음에 드는 100가구 집에 들어갔는데 옆에 2000가구 아파트가 재건축한다고 들썩거리고 가격이 오르면 속상하지 않겠나. 집을 살 때도 살기 좋은 집(홈) 비중을 50%, 팔기 좋은 집(하우스)을 50%로 맞춰 함께 고려해서 결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아파트는 먹거리로 따지면 가시 속의 알밤 같은 것이다. 가시는 곧 가격이다. 알밤을 꺼내 먹을 때처럼 아파트에 거주할 때도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아파트 시세는 너무 자주 보지 않는 것이 좋다. '초품아’라든지, 해가 잘 들어 식물 키우기 좋다든지, '숲세권’이라 산책하기 좋다는 등등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공간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 공간을 사랑하면 아파트 가격이 출렁거려도 마음이 덜 불안하다.
고점을 잡아 고통받고 있는 영끌푸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너무 '내 탓이오!’라고 자책하지 않길 바란다. 2021년 집값 고점 당시 무려 103만 명의 무주택자가 고점을 잡았다. 지금 집을 안 사면 영영 못 살 것 같은 '상황의 압력’ 때문에 다들 상투를 잡은 것이다. 나만의 아픔이 아닌 시대와 세대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가격을 잊어버리고 곱씹지 않기, 제3자 시각에서 나를 바라보기도 힐링에 도움이 된다. 한번 투자에 실패했다고 인생의 낙오자는 아니다. 투자 실패라는 사건과 내 인생을 연결 짓는 것은 곤란하다. 인생의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다만 자신의 과오를 용서하되 자기 연민에 빠지지는 말기를 바란다. 더 우울하고 불행해질 수 있다. 갭투자자는 자기 용서보다 책임이 먼저다. 세입자로부터 빌린 돈(보증금)을 돌려주는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자기를 용서해도 늦지 않다.
"욜로 세대인 MZ세대 아파트 선호 계속될 것, 재건축·상가는 글쎄?"
앞으로 어떤 아파트가 전망이 있다고 보는지.영화 '기생충’을 보면 지하, 반지하, 지상으로 주거에 따른 계급을 설정한다.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을 주거 생태계의 끝판왕으로 보는데, 그건 1969년생 봉준호 감독 세대의 로망일 뿐 요즘 MZ세대는 고급 아파트를 최고로 친다. 회장님들은 성북동, 한남동 단독주택에 살아도 그 자녀들은 강남, 성수동 고급 아파트 펜트하우스에 산다. 앞으로 어떤 부동산이 오를지 궁금하다면 MZ세대의 공간 욕망을 보면 된다. 그들은 흙을 밟지 않고 자란 콘크리트 세대다. 단지 안에서 운동부터 자녀 교육까지 모든 걸 안전하고 편안하게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재건축 아파트에서 몸테크, 상가 투자도 욜로 세대인 그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입지 좋은 곳의 재건축 아파트는 몸테크할 가치가 있지 않나.
한남뉴타운이 지정된 지 20년 됐는데, 올해 이주를 시작한다 해도 입주까지 10년은 더 걸린다. 압구정 재건축도 완공되려면 15년은 걸릴 텐데, 삶은 결과(재테크 성공)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개인적으론 삶의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MZ세대의 욜로 추구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만난 부자들은 부동산 투자를 잘해서 부자가 된 경우는 거의 없다.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았거나, 재능이 있다거나, 사업을 통해서 부자가 된 사람이 훨씬 많다. 부자들에게 배울 건 그들의 부동산 투자법이 아니라 공부하는 법, 사람을 대하는 법,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법 같은 거다.
상가 투자도 앞으로 비전이 없다는 건가.
개인적으로 상가 투자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인데, 첫 번째는 소비의 디지털화다. 구세대에겐 상가에 투자해서 따박따박 월세 받는 게 꿈일지 몰라도 요즘 같은 모바일 시대에 맞는 일은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와 늘어난 가계 부채로 소비 여력도 높지 않다. 또 최저임금이 올라 자영업자들의 창업과 가게 운영이 어렵다.
올해 들어 집값이 반등하고 있다. 앞으로 시장의 흐름을 어떻게 보나.
전반적으로 보면 불안한 반등세다. 지방은 여전히 바닥을 다지고 있고, 서울과 수도권은 바닥을 통과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반등세는 조금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실거래가 중심으로는 소강 국면이 될 가능성이 있다. 급매물이 소진됐고, 역전세난 우려가 있고, 금리 변수도 존재해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심리에 휘둘리지 않고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전략은.
시황과 전망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집을 꼭 사려는 사람은 가격 메리트를 보고 판단하면 좋겠다. 투자에는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시장을 분석해 매수 타이밍 잡는 건 뒷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많은 사람이 주택시장 회복 시기를 내 집 마련 시기로 착각하는데, 내 집 마련 시기는 시장 회복 시기보다 선행돼야 한다. 서울도 이미 급매 중심의 핫 세일 기간이 끝나지 않았나.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건 게으른 사람이고, 부지런한 사람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먹기 좋은 감을 찾아낸다. 장기적으로 시장의 흐름을 알려면 통계를 살펴봐야 한다. 2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들의 가격이 먼저 빠지고 먼저 오른다. 그다음엔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실거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고 규모가 큰 아파트 50개를 통계화한 'KB선도아파트50’ 지수를 참고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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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영철 기자
김명희 기자 may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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