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격이 있는 한 남자가 허세 가득한 포즈로 여자 친구에게 외제 차 키를 선물한다. "너 가져!"라고 소리를 지른다든지, "빼이-"라는 의미 없는 의성어를 던지는 모습은 허세 그 자체다. 차를 어디서 샀냐는 여자 친구의 질문에 그는 팔을 공중으로 휘저으며 대답한다. "아는 형님의 아는 사람의 아는 누나의 아는 친척의 아는 형님이요~" 최근 틱톡 챌린지에서 유행하는 대사다. 다섯 번을 거친 인맥은 아예 모르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말이라는 것. 영상 속 주인공은 1999년생 일진을 콘셉트로 연기하는 '99대장 나선욱’이다. 유튜브 채널 '별놈들’의 크리에이터로 '문돼의 온도’ 등 다양한 콘텐츠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를 통해 공중파 방송에서도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그의 인기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99대장 나선욱은 2020년 8월 '동네양아치 문신돼지국밥충들은 어떻게 여자친구를 만들까?’라는 영상에서 처음 등장한 캐릭터다. 3년이 지난 뒤에야 숏폼에서 화제가 되더니 현재는 조회수 270만에 달할 만큼 핫한 콘텐츠로 떠올랐다. 나선욱은 문신돼지국밥충이라는 한때 인터넷에서 조롱거리가 된 부류를 캐리커처 그리듯이 모사한다. 문신돼지국밥충은 언제나 금목걸이를 하고 명품 클러치백을 들고 있으며, 온몸을 문신으로 도배했다. 몸에 꽉 끼는 언더아머 차림으로 골목을 가로지른다. 또 전국 곳곳 인맥을 자랑하고 정체 모를 사업을 한다. 허세가 깃든 반말은 덤이다.
남성성을 부각하는 부캐의 활약
문신돼지국밥충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에 목격담이 자주 올라올 정도로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여러 유튜버의 인터뷰에만 기록되어 있는 상황. 이 영상은 메소드에 가까운 나선욱의 관찰력과 연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더니 결국 시리즈물로 확장되며 대박이 터졌다. 캐릭터를 한층 더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나선욱의 뻔뻔스러운 연기가 인기 요인인 듯.
최근에는 배우 이경영이 연기한 부패 고위층 남성 캐릭터를 어설프게 따라한 '경영자들’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건 '마초적인 남성’이라는 면에서 99대장 나선욱이 연기하는 인물과도 묘하게 닮았다. 이 부캐는 전혀 마초적이지 않은 남성이 마초를 가장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일으켰다. 임재범의 노래 '고해’를 떠올려보자. 임재범은 시원시원한 외모에 어울리는 거친 목소리와 가창력으로 시대를 초월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보통 남성이 '고해’를 부르면 비호감을 사기도 한다. 오죽하면 여성이 노래방에서 듣기 꺼리는 남자 노래 1위가 임재범의 '고해’라는 소리가 10년 가까이 나오고 있을까.
99대장 나선욱과 경영자들 등의 부캐는 마초를 과장해 연기하며 마초라는 캐릭터 자체를 유머로 승화시켰다. 마초적인 것이 과잉되다가 어느 순간 허세로 보이기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만화적인 색채를 덧입어 아예 다른 캐릭터로 보이기도 한다. 어린 남자아이가 공룡을 가지고 노는 이유는, 그 공룡이 이미 멸종했고 더는 위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초 개그도 마찬가지. 거부감이 느껴져도 곧장 해소된다. 시청자도 어느 순간부터는 이를 유머로 소비하는 것이다.
마초뿐만이 아니다. 과할 정도로 느끼하거나 젠틀한 남성을 패러디해 인기를 누린 캐릭터도 수두룩하다. 그중 SBS 예능프로그램 '웃찾사’에서 한때 폭발적인 인기를 끈 리마리오(이상훈)를 빼놓을 수 없다. 마가린 버터 3세라는 치렁치렁한 이름을 단 이 캐릭터는 느끼한 말을 던진 뒤 과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어 관객을 경악하게 한다. 이윽고 더듬이 댄스로 관객에게 숨 돌릴 틈을 준다. 리마리오의 후계자로는 최준(김해준)과 다나카(김경욱)가 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콘텐츠 'B대면데이트’에서 최준은 SNS에서 유행하는 오글거리는 단어 선택, 부담스러운 플러팅 등을 막 던지되 그에 어울리지 않는 코맹맹이 소리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긴다. 다나카도 일본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남성이라는 설정을 지녔지만 어설픈 한국어로 우스꽝스러운 순간을 만든다.
과장된 남성성을 풍자하는 부캐가 계속 나오고 있다. 유행이 제아무리 변한들 거기에 깃든 남성성만큼은 그대로라는 듯이. 앞으로 어떤 캐릭터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