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금융 시장 경쟁 달아오른다…‘주채권은행’ 쟁탈전 벌어지나[머니뭐니]
“결국 금리·한도 경쟁 이어질 것…우량 대출일지 판단해야”
[헤럴드경제=문혜현·홍승희 기자] 우리은행이 새 비전으로 기업금융 시장 확대를 선언하고 나서면서,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다. 현재 11개 기업의 주채권은행으로 가장 많은 기업의 ‘큰 손’인 우리은행이 2027년까지 기업대출을 237조원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거래 기업 쟁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금융권에선 ‘기업금융 경쟁전(戰)’의 승자 타이틀을 우리은행이 쉽게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이가 적다. 우리은행의 경우 시중은행 중 주채권은행 1위라고는 하지만, 기업대출 잔액이 가장 적기 때문이다.
특히 올 상반기 우리은행은 4대 은행 중 유일하게 중소기업 대출이 감소했는데, 대기업 대출의 경우 직원들의 급여나 퇴직금 등 소매금융과 밀접해 경쟁 은행으로부터 유치가 쉽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또 코로나19 대출 연장·이자상환 유예 조치 종료를 앞두고 있어 기업 중심의 여신자산 증대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다. 우리은행이 기업금융의 판을 뒤집기엔 여건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얘기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우리은행의 기업대출(대기업·중소기업·SOHO) 잔액은 135조6935억원으로 지난 1월(130조6500억원) 대비 5조435억원 증가했다. 우리은행 기업대출 잔액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중 가장 작은 규모로, 같은 기간 가장 많은 기업대출을 기록한 국민은행(170조8012억원)은 1월 말(163조1412억원) 대비 7조6600억원 늘었다.
성장세로만 따지면 하나은행이 두드러진다. 1월 말 139조355억원이었던 하나은행 기업대출은 8월 말 154조6352억원으로 11%(15조5997억원) 껑충 뛰었다. 하나은행은 ‘선성장 후수익’ 기조로 공격적인 영업기조를 보이고 있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잔액이 약 4% 늘었으며 우리은행은 유일하게 3%대 성장세를 보였다.
이에 우리은행은 과거 ‘기업금융 명가’ 지위를 되찾기 위해 11개 기업의 주채권은행인 점을 활용해 데이터를 확보하고 미래 성장 산업을 선별해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삼성·LG·한화·포스코·CJ·DL·두산·코오롱·효성·LX 등 11개 기업에 빌려준 대출금이 2조717억원이 넘는 주채권은행이다.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은 기업과 거래를 하고 있다. 주채권은행은 해당 기업에 돈을 많이 빌려준 만큼 투자·배당 등 다양한 기업의 의사결정에 주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관련 정보 접근성도 뛰어난 ‘큰 손’을 의미한다.
우리은행의 뒤를 이어서는 산업은행이 10개, 하나은행(8개), 신한은행(6개), 국민은행(2개), SC제일은행(1개) 순이다. 정부 차원에서의 기업 자금 조달을 책임지고 있는 산업은행을 제외하면 과거 기업 금융으로 두각을 나타낸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대표적인 라이벌인 셈이다. 두 은행은 각각 지난해보다 1개, 2개 주채무 담당 계열 기업을 늘리면서 영업력을 넓히고 있다.
금융권에선 우리은행의 전신이었던 한일·상업은행이 기업 금융으로 이름을 떨친 만큼 주채권은행으로서 유리한 위치라는 점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나은행 또한 과거 외환은행의 적극적인 기업금융 유치 이력을 이어받아 다수 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채권은행 1위로 대기업 대출에 유리한 입장이긴 하나, 금융권에선 대기업 특성상 기업대출이 대기업 중심으로 급성장하긴 어렵다고 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기업은 대출 규모도 크지만 급여·퇴직금 등 묶여있는 소매 금융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은행을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대기업 영업은 거의 비슷한 형태로 유지된다. 결국 얼마나 좋은 관계를 쌓는지, 금리나 최대 한도 면에서 좋은 점이 있는 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대기업 대출 비중을 살펴보면 우리은행은 13.9% 수준으로 9~10%인 국민·신한·하나은행보다는 많지만 액수는 22조원 정도로 가장 적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민영화 전 정부 지분이 많아 대기업 대출 상품 경쟁력이 우수했을 것”이라며 “규모가 큰 기업을 오랜 기간 관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역량이 늘어난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주채무계열 기업 대부분이 최근 수익성이 악화된 제조·건설업에 치우친 점도 거론된다. 신성장 산업 지원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IT·반도체 관련 대기업은 삼성이 유일하다.
게다가 우리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에 있어선 대기업 만큼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우리은행은 4대 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중소기업 대출 감소세를 나타냈다. 우리은행의 지난 6월 말 기준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119조7230억원으로 전년 말(121조380억원) 대비 1.1% 줄었다.
이에 우리은행도 대기업 영업 확대보다는 주채무계열 기업과 연계된 중소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영업을 확대겠다는 전략이다. 우리은행 중소기업담당 관계자는 “기업도 결국 1차 벤더, 2차 벤더와 연결돼 있는 구조지 않나”라며 “기업본부와 협업해 (중소기업 대출) 테마를 발굴하고 관련 여수신 담당 직원을 지도하는 등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최근 간담회에서도 ▷미래 성장 산업 지원 확대 ▷차별적 미래경쟁력 확보 ▷최적 인프라 구축 등을 전략으로 내놨다. 특히 현장 중심의 인사체계를 강화하한다는 명목으로 기본급여의 최대 300%까지 인센티브를 파격 확대하고 기업여신에서 두각을 나타낼 경우 관련 임원을 달게 해주는 제도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우량 대출을 선별할 역량을 키우겠다는 내용이 골자지만, 일각에선 타 은행과의 차별화가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장에선 결국 금리와 한도로 밀고 당기기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내밀한 영업 전략을 공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장 상황상 기업의 성장을 기대하기 쉽지 않음에도 은행들이 대출을 늘리고 있는데, 나중에 우량자산으로 계속 남아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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