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키아프 함께 다채로운 전시…서울미술판 저력 보여주다
한국 미술판은 지난 1주일, 뜨겁고 떠들썩한 축제의 시간을 누렸다.
스위스의 아트바젤과 더불어 세계 미술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영국 프리즈의 서울 아트페어와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국내 최대규모의 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가 함께 열린 지난 6~10일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기억할 만한 기간이었다.
한국 문화판에 역대급 현대미술 전시의 열풍이 불었다. 두 페어가 열린 코엑스뿐만 아니라 삼청동, 청담동, 신사동, 한남동 등 서울의 주요 화랑, 미술관 거리와 인천공항 일대에서는 50건을 훌쩍 넘는 대형 전시와 프로젝트들이 쏟아졌다. 거장들의 전시와 청년 소장작가들의 기획전, 퍼포먼스와 집단 창작 등 각종 프로젝트, 관객 참여 행사 등이 숨쉴 틈 없이 이어졌다. 두 행사가 끝난 뒤 명확해진 사실은 서울 미술판의 만만치 않은 저력과 에너지였다. 아시아 도시들 가운데 도드라진 역동성과 풍성한 콘텐츠 기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단적으로 지난 7일 프리즈 키아프 개최를 맞아 서울 북촌 일대의 화랑과 전시기관들이 심야까지 전시장을 개방하며 벌인 ‘삼청나이트’는 감각적이고 현장성이 강한 한국 현대미술의 특장을 유감없이 뽐냈다. 북촌 아트선재센터 3층에서 펼쳐진 작가 듀오 봅 킬&니나 바이어의 ‘필드 트립’ 전시장에선 100여명의 관객들이 모여든 가운데 수백여개의 인조화분 사이로 배우들이 살아있는 조각이 되어 걸음을 옮기는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전시장 바깥 뜨락에선 국내외 아티스트들과 컬렉터들이 사찰음식 전문가 정관스님을 따라 다도회에 참여해 차를 마시고 명상하고 걷는 만행을 펼쳤다.
거장 아니쉬 카푸어의 근작전과 양혜규의 신작 설치전을 마련한 국제갤러리 부근 거리에는 푸드 트럭이 와인과 주스 등의 음료와 안주를 무료 제공했다.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을 명작과 미식이 무료 제공되는 난장에 엠제트(MZ) 세대 관객들은 열광하면서 몰려들었고 거리로는 대형 화면에 미디어아트를 상영하는 특설 트럭이 내달렸다.
삼청동 골목길 위쪽의 구릉언덕길로는 국내 패션업체, 리슨갤러리 등이 마련한 세계 미술 거장들과 국내 소장작가들의 문제작들이 내걸린 팝업 전시장들이 굽이굽이 이어졌다. 곳곳에서 살아있는 미술행위와 흥겨운 담소가 터져 나왔고, 이런 진풍경은 북촌뿐 아니라 한남동 등 서울 전역의 예술생산 현장 등에서 펼쳐졌다.
올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은 각각 7만명, 8만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대중의 미술 열기를 끌어담는 데는 성공했다. 같은 시기 프리즈가 개최한 뉴욕 아모리 쇼 출품의 영향으로 대작이나 명작의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프리즈에 출품한 데이비드즈위너나 하우저앤워스, 거고시언 등의 주요 유명 갤러리들은 출품작 대부분을 판매했고, 국내 메이저 중견 화랑들과 군소화랑도 국내 단색조회화 대가들과 젊은 신진작가들의 작품들을 거래하면서 어느 정도 수지를 맞췄다는 자평이 나왔다.
하지만 아시아포커스 섹션을 통해 젊은 작가와 화랑들을 전시장 중간에 배치하며 소개 기회를 준 프리즈와 달리 키아프는 신예 소장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소장 화랑 부스를 키아프플러스(+)란 이름 아래 그랜드볼룸을 개조해 만든 임시 전시공간에 몰아놓아 대조를 이루었다. 전시공간이 임시 시설물인데 층고가 낮고 가장 안쪽 외진 공간에 있어 주요 고객들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한 것이다. 페어의 비전을 가늠하는 젊은 작가 마케팅에서 키아프는 협회 주최라는 한계 때문에 경직된 운영을 피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트신의 역동성, 즉 창작현장의 생동성과 작가들의 활동상은 페어의 장기 지속성을 가늠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이런 요인들이 지금 한국 미술판에는 무궁무진할 정도로 넘쳐나지만, 경쟁도시 홍콩에는 별로 없다는 점에서 서울에 대한 서구 미술자본의 관심은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3월 열린 아트바젤 홍콩에는 거의 보이지 않던 서구 미술관 관계자와 유한층 컬렉터들이 수백명씩 몰려온 것도 이를 방증한다.
실제로 프리즈 쪽은 행사기간 중 한국화랑협회에 앞으로 3년 남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5월로 시점을 바꿔 협업하자는 제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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