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X배성우 캐스팅이 흠, ‘1947 보스톤’[한현정의 직구리뷰]

‘희생양’이 된 임시완

실존 인물(손기정 ·남승룡)은 안 보이고 배우(하정우·배성우)만 보인다. 외관부터 대사톤, 어투, 분위기 등 모든 면에서 싱크로율이 맞질 않으니, 몰입이 되질 않고 (그 시대에) 닿질 못한다. 퇴장까지도 그 거리감이 좁혀지질 않으니, 실화의 힘을 무력화시킨, 흠이 된 캐스팅, 홀로 빛난 임시완만 안타까운 ‘희생양’이 됐다.

‘왕년의 히트메이커’ 강제규 감독의 신작, 영화 ‘1947 보스톤’은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대표 마라토너들의 실화를 다룬 휴먼 드라마. 1947년 광복 후 처음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손기정·남승룡·서윤복)의 피땀눈물 섞인 도전과 가슴 벅찬 영광의 순간을 담아낸다.

민족의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된 ‘손기정’은 열정을 잃고 영혼없이 현실을 살아가던 중 ‘제2의 손기정’으로 촉망받는 ‘서윤복’을 보게 된다. 이 가운데 남승룡은 느닷없이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나가자고 제안한다. 출전 조건은 손기정이 감독이 돼야 하는 것.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 대던 손기정과 서윤복은 인간미 갑·의리 갑 남승룡의 도움을 받아, 서서히 진정한 사제지간이 되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보스톤으로 향한다. 일본에 귀속된 베를린 올림픽의 영광을 되찾고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기고 달리고자, 그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후세에게 뼈아픈 회한의 아픔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 승리한다.

국민 영웅의 눈물겨운 승리를 다룬 만큼 목적지는 명확하다. 메가폰은 그 여정조차 수없이 봐온 기존 스포츠 영화의 ‘기승전결’을 그대로 따른다. 갈등과 화해, 위기와 극복, 중간 중간 삽입된 티키타가, 웅장한 엔딩까지 예상대로다.

대신 시대적 올드함, 선입견을 극복하고자 경쾌한 시도를 했다. 국뽕 지수는 줄이고 신파 요소도 최소화했다. 늘어짐 방지를 위한 각종 노력들도 엿보인다. 다만, 여러 요소들이 맛스럽게, 또 조화롭게 맞물리진 못했다. 매력적인 앙상블을 이루지 못한 채 구간별 따로 노는 미스매치요, 들쑥날쑥 뚝뚝 끊기는 부분도 더러 보인다. 시대 표현의 디테일함도 떨어진다.

특히 하정우·배성우의 쓰임은 ‘캐릭터 장인’ ‘베테랑’이란 수식어에 어울리지 않는 무난함 그 이하다. 깊이와 진정성은 겉핥기요, 주특기인 티키타카도 그럭저럭이다. ‘자네’ ‘~구먼’ 등 옛스러운 대사와 배우들 특유의 현대적 말투, 톤, 분위기가 다소 이질적이다. 주변 인물들과 붙을 땐 그 어색함이 더 도드라진다.

그러니 슬픈 역사를 울부짓는 감동적인 대사들에도 큰 울림을 주지 못한다. 진한 전우애의 뜨거운 감흥도, 감동도 기대에 못 미친다. 그 시대 그 인물들의 감정을 대리 만족시키는 힘도 미약하다. 강력한 한 방도 없다.

특히 배성우는 실망스럽다. 그나마 싱크로율이라도 맞았다면, 대체불가 연기력이었다면, 불편한 개인사와 별개로 (극이 진행될수록) 자연스레 몰입이 됐겠지만, 모든 요소가 기대만 못하니 거부감이 생긴다. 부부 호흡을 맞춘 박효주와의 케미는 특히나 민망한 수준이다. (그나마 분량이 적어 다행이다.) 동시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따로 논다. 툭 툭 던지는 담백한 대사톤과 비주얼, 분위기 등 캐릭터의 색깔과 썩 어울리지 않는다. 목소리를 높여 ‘애국’ 대사를 읊을 땐 오글거림이 치솟기도.

먼지를 가득 묻히고, 숨을 헐떡이며, 앙상한 비주얼로 내내 고군분투하는 임시완만이 홀로 빛난다. 역할을 위해 혹독한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며 체지방 6%대까지 감량했다는 그의 노력이, 진심이, 초단시간이지만 스크린을 홀로 꽉 채우는 순간 활짝 꽃을 피운다. 그 자체로 뭉클함을 자아낸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대부분의 러닝타임은 하정우 배성우가 붙잡고 가기 때문. 그나마 임시완이 책임지는 후반부 레이스가 클라이맥스다운 아우라를 만들어 내지만, 이조차도 시도때도 없이 끼어드는 방해 공작에 마음껏 누릴 수가 없다.

실화의 힘을 내세운 만큼, 실존 인물과의 싱크로율이 가장 중요한 미덕이지만, 이 부분에서 만족감이 떨어지니 그 외 요소들로 무엇을 채우려한들 기대만 못하다. 특별 출연한 박은빈·김상호의 존재감도 미미하다. 확실한 재미나 개성, 특별한 감동을 찾기 어려운 밋밋함이다. 되게 촌스럽지도, 그렇다고 세련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휴먼드라마.

영화는 여름대전 피날레를 장식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이하 ‘콘유’) 의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작품이다. 추석 개봉작(‘천박사’, ‘거미집’) 중 가장 많은 제작비(210억)를 들여 손익분기점은 약 450만이다. 9월 27일 개봉. 12세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