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경제에 '상저하고'는 없다

이대건 2023. 9. 12.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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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YTN

경제부총리도 한국은행 총재도 여전히 '상저하고'

상저하고(上低下高). 한 해 경기가 상반기에는 저조하지만, 하반기에는 고조되는 현상을 말한다. 하반기에 단순 회복한다는 의미도 아니고 '고조', 말 그대로 크게 반등해야 가능한 일이다. 경제·금융 수장들이 즐겨 쓰는 말로 올해 한국경제를 대변하는 표현이다.

이 표현을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은 바로 추경호 경제부총리이다. 상반기부터 경기 침체 가능성이 대두되자 하반기에는 크게 회복될 것이라는 입장을 여러 번 피력했다. 최근에는(3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늦어도 10월쯤부터 수출이 플러스로 돌아서기 시작하는 등 대외가 주력이 되는 경기회복세가 가시화될 것"이라며 상저하고 입장을 유지했다. 구체적인 수치도 언급했다. "상반기 0.9% 성장했는데 연간으로 아주 보수적으로 보는 곳이 1.3% 보는데 그 숫자가 나오려면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두 배 성장해야 한다"고 했다. 추 부총리 말대로라면 하반기에는 최소 1.7%, 나아가 2.0% 정도는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상반기부터 줄곧 '상저하고'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 5월 국회 현안질의에선 이런 얘기도 했다. '상저하고' 전망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자 "상저하고가 완전히 안 일어난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부정에 부정이니 긍정이긴 한데 이전과는 좀 다른 뉘앙스다. 한국은행이 8월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 전망치를 기존 1.4%로 유지했다. 이를 달성하려면 추 부총리 말대로 연말까지 반드시 '하고'(下高)를 해야 한다.

2023년 9월 4일, 비상 경제장관회의 (사진출처 = 연합뉴스)
결국 수출로…역대 정부도 썼던 '단골 메뉴'

추경호 부총리는 하반기 성장의 주력으로 역시 수출을 꼽았다. 예상했던 일이다. 수출은 한국 경제의 전통적인 성장 엔진이다. 지난 4일 정부는 '수출 활성화를 위한 추가 지원방안'을 내놨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자동차 등 기존 주력산업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디지털과 콘텐츠, 그리고 원전 등 유망 분야의 수출 동력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물론 수출 지역 다변화 계획도 포함됐다. 기존 미국과 중국, 아세안 중심의 주력 시장에 더해 중동·중남미·유럽연합 등 새로운 전략 시장에서도 현지 수주 활동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한 최대 181조 4천억 원. 정부는 올해 연말까지 무역·수출 금융 지원을 위해 이 재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경기가 안 좋을 때마다 역대 정부가 단골 메뉴로 내놓았던 지원책이다. 비슷하다고 잘못된 건 아니지만 새로운 돌파구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질 소득이 줄고 가계부채가 폭증해 내수를 늘리는 건 현재로선 어렵다. 수출에 목을 매는 이유이다.

사진출처 = YTN
수출보다 더 큰 수입 감소가 빚어낸 '불황형 흑자'

그런데 수출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이달 들어서도 많이 감소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9월 1~10일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은 148억 6,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7.9%나 감소했다. 결국 수출 감소세는 11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상저하고'보다 '불황형 흑자'라는 말이 더 자주 들린다. 7월 경상수지는 35억 8천만 달러, 우리 돈 4조 7천억 원 정도 흑자를 냈다. 경상수지가 석 달 연속 흑자를 기록했지만, 흑자 폭은 전달보다 20억 달러 넘게 감소했다.

문제는 수입이 더 많이 감소한 결과라는 데 있다. 7월 수입은 1년 전보다 22.7%나 감소했다. 수출이 줄었지만 수입이 더 크게 줄면서 빚어낸 '불황형 흑자'인 셈이다. 다만 이번 통계를 낸 한국은행은 "경기가 둔화하다가 회복하는 것"이라며 '불황형 흑자'는 아니라고 적극 반박했다. 여전히 한국은행은 '상저하고'에 대한 전망 또는 기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반기 두 배 성장하더라도 '상저하고'가 아닌 이유는?

추경호 부총리가 말한 대로 하반기에만 1.7% 이상 성장한다면 과연 이걸 '하고'(下高)로 볼 수 있을까? 하반기가 상반기보다 두 배 성장하더라도 결국 정부나 한국은행이 예상하는 전망치를 달성하는 수준이다. 이마저도 어디까지나 전망이다. 결국 저성장 기조가 유지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상저하고' 전망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관료들이 경제가 이렇게 나쁜데 이거 뭐 하는 거냐?라고 하면 상반기는 나쁘지만 나중에는 좋아진다라는 표현으로 (상저하고를) 쓴다"며 "(상저하고)는 관료의 책임 회피성 표현"이라고 꼬집었다. 하반기가 상반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아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고'(下高)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에 '상저하고'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힌다.

'상저하고'가 맞든 안 맞든 올해 한국경제를 대변하는 화두인 건 확실하다. 또 하나 분명한 건 정부는 하반기 성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L자' 형으로 대변되는 장기 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 자체가 아닌 그에 대한 우려가 '상저하고'이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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