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감성표현기술이 여는 가상공간의 세계
2021년 여름 도쿄올림픽이 한창이던 때 가족과 함께 떠난 휴가지에서 마침 중계 중이던 양궁 경기를 보게 됐다. 단체전과 개인전 모두 세계 최강 양궁팀답게 우리 대표선수들이 선전하는 모습에 응원하느라 여행은 뒷전이고 숙소에 틀어박혀 양궁 경기만 계속 봤던 기억이 있다. 압도적이었던 단체전뿐 아니라 마지막 슛오프까지 이어지는 접전 끝에 금메달을 거머쥔 안산 선수의 여자 개인전 결승 경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올림픽 양궁은 많은 메달이 기대되는 효자종목이기도 하지만 특히 지난 양궁 경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화면에 나타나는 선수들의 심박수가 주는 묘한 긴장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발 한발 신중하긴 하지만 내면의 동요를 크게 느낄 수 없는 표정으로 화살을 쏘는 선수들의 모습과 상반되게 요동치는 하트모양 심장 박동, 결정적인 순간 어김없이 치솟는 BPM, 그야말로 화면 속 선수들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여자 개인 결승전에서 보여준 심박수는 또 다른 의미로 경기의 재미를 더해줬다. 마지막 슛오프 순간 상대 선수의 심박수가 170BPM에 육박하던 것에 비해 놀랍게도 화면에 표시된 안산 선수의 심박수는 겨우 108BPM 정도였다. 내 심박수가 안산 선수보다 훨씬 더 빨랐을 것이다. 안산 선수의 강심장에 감탄하면서도 찰나의 순간 '이겼구나'하는 확신이 들었다. 단순히 심박수만 표시했을 뿐인데 경기에 더욱더 몰입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양궁 경기에서의 심박수 측정은 비전 센서 기술을 활용한다. 원거리 고배율 카메라를 이용해 선수들의 얼굴 영역을 추출하고 추출된 얼굴 영역에서 미세한 혈류 패턴이 반사된 빛의 강도를 통해 심박수를 측정할 수 있다. 심박수는 밴드 형태의 착용형 센서로 쉽게 측정할 수 있지만, 양궁처럼 민감한 경기에서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센서 착용은 여의찮았을 것이다.
선수들의 심박수가 주는 몰입감처럼 상대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가상환경에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이는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소통에서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나, 아직 상용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며 연구·개발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 초 미국 MIT 미디어랩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컴퓨터 기술을 연구하며 감성 컴퓨팅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감정과 컴퓨팅을 결합해 인공 시스템이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상호 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컴퓨터 비전, 음성 처리, 생체 신호 분석 등 다양한 기술 분야와 결합돼 지속 발전해 왔다. 인간-컴퓨터 상호 작용, 의료 진단, 교육,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로봇공학 등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또한 호주의 ECL(Empathic Computing Lab)도 공감 컴퓨팅, 증강 현실, 가상 현실을 연구 테마로 두고 사람들 사이의 이해와 공감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모색하고 있다. 마크 빌링허스트(Mark Billinghurst) 교수는 공감 컴퓨팅을 사람들 사이에 더 깊은 이해나 공감을 생성하는 컴퓨터 시스템으로 정의하고,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상현실(VR) 환경에서 사용자의 심박을 시각, 촉각, 청각적으로 표현해 피드백 효과와 표현 방법 선호도를 실험했고, 오디오-햅틱 피드백이 시각적 피드백보다 더 선호되는 결과를 얻었다. 또 VR 환경에서 공동 작업자들에게 심박수 피드백을 제공해 협력자의 존재를 더 많이 느끼고 감정 상태를 더 잘 이해한다는 점을 실험 연구로 밝혔다.
가상공간에서의 감성 표현 기술은 게임, 엔터테인먼트 분야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심리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가상환경을 이용한 교육과 치료, 상담 등의 응용 분야에서 감성 표현 기술의 활용이 두드러지며 사용자들의 감정과 성향에 따라 개인화된 서비스가 제공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가상공간에서의 감성 표현 기술은 미래의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을 더욱 사람 중심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길연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지능형실감콘텐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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