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뇌사와 장기기증

나현욱 세종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2023. 9.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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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욱 세종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지난 명절 연휴 전날 뇌사 추정자가 있어 이틀에 걸쳐 뇌사조사와 뇌사판정을 진행했고 일부 뇌사 판정위원은 고향에 갔다가 다시 병원에 와서 고인과 유가족의 숭고한 뜻이 이어지도록 애썼다. 뇌사판정 이후 장기이식을 수행한 각 병원의 의료진들도 명절 연휴를 반납하고 이식수술과 수술 후 관리를 위해 힘썼을 것이다. 유가족은 생전 타인을 배려하던 고인의 착한 성격을 고려해 생명나눔을 결심했다고 한다. 심장, 간장, 좌우 신장이 기증돼 4명이 두 번째 삶을 살게 됐다.

뇌사는 뇌 기능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돼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일시적으로 심장과 폐기능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에서 뇌사판정은 장기기증을 전제로만 가능하며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그 절차가 규정돼 있다. 뇌사로 추정되는 사람이 있으면 전문의사 2명의 뇌사조사와 뇌파검사 등이 시행된 후 의료인이 아닌 위원이 포함된 뇌사판정위원회에서 출석위원 전원의 찬성으로 뇌사판정을 한다. 뇌사는 철저한 의학적 검증을 통해 확인된 새로운 형태의 죽음으로 간주되며, 뇌사판정에도 불구하고 의식이나 자가 호흡을 회복한 사례는 없다. 신경과 의사는 뇌사가 아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없는지 살피면서도 신속히 뇌사판정을 진행해 이식 가능한 장기의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장기이식은 현대의학의 꽃으로 불린다. 뇌사자의 장기를 장기부전 환자에게 이식해 생명을 지키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식의 대상이 되는 장기는 신장, 간장, 심장, 폐, 췌장, 소장 등이다. 그런데 작년 우리나라의 뇌사장기기증은 405건으로 2016년에 573건을 기록한 후 감소 추세다. 2018년에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으로 인해 장기기증을 하지 않더라도 뇌사에 준하는 경우 연명의료 중단이 법적으로 가능해진 영향이 크다. 반면 장기이식 대기자는 4만 명 이상, 평균 대기시간은 3.4년이며 하루에 6명이 이식을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스페인과 미국의 인구 백만 명당 뇌사 기증자 수는 우리나라의 5배다. 미국의 경우 전체 장기기증 중 80%가 뇌사자 기증인데 우리나라는 뇌사자 기증이 전체의 35%에 불과하다. 간이식수술 세계 최다 및 최고 성공률 기록을 가진 이승규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뇌사자 기증이 워낙 적기 때문에 생체 간이식 연구에 집중했고 독창적인 2대 1 간이식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뇌사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심장이 뛰고 있고 기계호흡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나 심장이 뛰기 위해서는 뇌의 조절도 필요하기 때문에 뇌사 추정자는 수 일 또는 수 주 내에 심장이 멈추고 사망하게 된다. 장기이식을 위해서는 그 전에 서둘러 장기기증에 대한 결정과 뇌사판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때 뇌사 추정자의 가족은 감정적으로 극도로 힘든 상태이며 평소 고인의 의사를 모르는 경우 장기기증 여부를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기증희망등록은 본인이 갑작스럽게 뇌사상태에 이르렀을 때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는 유가족이 정서적 스트레스 속에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기증자 본인의 의사를 참고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된다. 본인이 기증희망등록을 하더라도 실제 기증 상황이 되면 반드시 선순위 보호자의 동의를 받게 돼있다. 미국은 운전면허 취득이나 갱신과정에서 기증희망등록을 받으며 이스라엘의 경우 기증희망등록자에게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식 대기자 명단에서 우선권을 주고 기증자의 가까운 친척에게 대기자 명단에서 우선권을 보장한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잠재적 기증자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이름을 장기기증희망자 목록에 올리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뇌사 기증자의 뇌사판정을 하면서도 나는 기증희망등록을 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등록했다. 한 사람이 장기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될 가능성은 장기 기증자가 될 가능성의 약 3배라고 한다. 기증희망등록을 통해 생명나눔에 동참해 보자. 나현욱 세종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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