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뉴스에서 퇴출된 극우 언론인, 트럼프와 함께 돌아오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3. 9. 12.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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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소속 대선주자들의 첫 TV 토론회에 불참했다. 트럼프는 폭스뉴스에서 방송한 이 토론회 대신 이 방송사에서 해고된 한 극우 언론인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
한 시청자가 8월23일 폭스뉴스에서 중계하는 공화당 대선후보 토론회와 소셜미디어 X(엑스·옛 트위터)에 올라온 트럼프의 인터뷰 영상을 동시에 보고 있다. ⓒEPA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 공화당이 최근 당 소속 대선주자들 간 첫 TV 토론회를 개최했다가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기밀 유출과 2020년 대선 결과 조작 혐의 등으로 네 번이나 기소를 당하고도 공화당 대선주자 중 압도적 1위를 고수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78)이 불참했기 때문이다. 공화당만 망신을 당한 게 아니다. 공화당과 손잡고 토론회를 준비하며 방영한 대표적 보수 방송 폭스뉴스도 기대만큼 흥행을 거두지 못했다. 공화당도 폭스뉴스도 트럼프가 못마땅하지만, 이들을 더욱 화나게 한 사람은 따로 있다. 폭스뉴스의 대표적 우파 방송인으로 지난 4월 전격 해고된 터커 칼슨(54)이다.

폭스뉴스에서 축출된 뒤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새로 둥지를 튼 칼슨은 공화당 차기 대권 1순위 트럼프를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폭스뉴스가 공화당의 첫 대선 토론회를 개최하던 8월23일 저녁 9시. 그는 토론회에 불참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45분짜리 단독 인터뷰를 보란 듯이 내보냈다. 8월30일 현재,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2억6000만 회를 넘었다. 보수 우익의 대표 나팔수 노릇을 해온 칼슨의 영향력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방증한 수치였다.

반면 폭스뉴스 토론회를 지켜본 시청자는 1280만명에 불과했다. 폭스뉴스는 이 정도 시청률도 트럼프가 불참한 2016년 공화당 대선주자 토론회 때보다는 조금 더 높다며 자평했다. 하지만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다. 때마침 토론회 다음 날 트럼프가 조지아주의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돼 주 법원에 자진 출두할 예정이었다. 그가 토론회에 참석할 경우 어떤 ‘폭탄’ 선언을 할지 초미의 관심사였고, 당연히 시청률도 폭증할 게 분명했다. 그 때문에 폭스뉴스는 경영진까지 나서서 어떻게든 TV 토론회에 트럼프를 ‘모시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폭스뉴스가 자기보다는 경쟁 후보를 편애한다며 불만을 품어온 터였다. 그는 극우적 세계관이 비슷하고 자기에게 우호적인 칼슨을 선택했다.

칼슨은 인터뷰 도중 우익 시청자들을 자극할 만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던졌다. “정적들이 당신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두 번이나 던졌다. 이에 트럼프는 자신을 기소한 검사들을 겨냥해 “아주 병든 야만적 동물”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특히 2021년 1월6일 대선 결과에 불만을 품고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지지자 2000여 명을 두고는 “일찍이 그런 사랑과 단합을 본 적이 없다”라며 두둔했다. “이러다가 나라가 내전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라는 칼슨의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일찍이 그런 수준의 열정을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굳이 그런 질문을 왜 던진 것인지, 칼슨의 의도가 ‘불순’한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터커 칼슨은 대표적 우파 방송인을 자처해왔다. 1990년대 언론에 입문한 그는 CNN, MSNBC 등에서 활동하다 2009년 폭스뉴스의 정치 분석가로 영입되었다. 2016년 11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시사 프로그램 〈터커 칼슨 투나잇〉을 맡으면서부터 영향력 있는 우익 방송인으로 지명도가 높아졌다.

폭스뉴스에서 축출된 뒤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새로 둥지를 튼 터커 칼슨. ⓒ칼슨 X계정 갈무리

황당한 ‘백인 대체론’ 펼치기도

그는 매일 저녁 8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1·6 의사당 난입 사태’에 대한 그릇된 정보와 음모론을 펼쳤다. 반이민주의와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고, 소수인종과 여성에 대한 비하를 서슴지 않았다. 기후위기 문제에 부정적이었고, 코로나19 백신접종 의무화에 회의적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배타적인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등 극우적 시각을 확산하는 데 앞장서왔다. 심지어 그는 민주당 행정부가 이민자들을 포함한 비백인 유권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뒤 백인 유권자들을 없애려 한다는 황당한 ‘백인 대체론’을 주창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민간 언론감시기관 ‘미국언론문제(MMA)’는 2022년 ‘올해의 잘못된 정보 확산자’로 그를 꼽았다.

이처럼 부정확한 사실과 극단적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냈지만 칼슨의 시사 프로그램은 하루 평균 300만명 정도의 고정 시청자를 끌어들였다. 폭스뉴스의 광고 수입도 덩달아 늘어났다. 2022년엔 2021년보다 약 1000만 달러 더 많은 7750만 달러의 광고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선거 음모론’ 이후 기류가 바뀌었다. 2020년 대선 결과를 두고 ‘투표기 조작’을 주장한 트럼프의 음모론이 그의 방송을 타고 확산되었다. ‘도미니언 투표 시스템’ 회사가 폭스뉴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폭스뉴스가 이 회사에 배상금 7억8750만 달러(약 1조420억원)를 지급하게 되면서 칼슨에 대한 태도가 확 달라졌다. 소송건을 마무리한 지 일주일도 안 돼 폭스뉴스는 그를 전격 해고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칼슨의 ‘트럼프 단독 인터뷰’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이 폭스뉴스 시절만큼 크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다수다. MMA의 미디어 비평가 맷 거츠 선임연구원은 CBS 방송에 출연해 칼슨을 ‘악의적 선동가’로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과거 보수 선동가로 악명을 떨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러시 림보가 2021년 타계한 뒤 칼슨이 그의 공백을 채우며 승승장구했다. 맷 거츠는 폭스뉴스 시절 인기와 영향력을 거머쥐었다가 폭스뉴스에서 퇴출된 이후 재기에 실패한 메긴 켈리, 빌 오라일리, 글렌 벡 등을 예로 들었다. 맷 거츠 선임연구원은 “칼슨이 폭스뉴스와 결별한 만큼 분열적 메시지와 잘못된 정보를 확산할 수 있는 힘은 아무래도 줄어들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다른 견해도 있다. 칼슨이 소셜미디어 X에서 제약이 없는 개인 방송을 시작한 만큼 보수 우익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칼슨의 X 계정 팔로어 수는 1000만명을 앞두고 있다. 캐나다 소재 사이먼프레이저 대학의 아메드 알라위 언론학 교수는 CBS 방송에 출연해 “우익 방송인들이 칼슨을 흉내 내려 할 테지만 폭스뉴스가 제2의 칼슨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터커 칼슨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단골 고객’으로 확보한 것도 변수다.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트럼프만큼이나 미국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하는 데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미국의 한 극우 언론인이 다시 트럼프와 한배를 탔다. 그 배가 순항할 때마다 미국 사회가 다시 출렁거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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