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은 세금을 어떻게 썼나
국회에서 이뤄지는 결산심사는 각 정부 부처가 지난 1년간 국민이 낸 세금을 어떻게 썼는지 평가하는 자리다. 한 해 살림살이를 위해 부처들이 편성받은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낭비와 부정·남용·오용은 없는지 검증한다. 검증 과정에서 확인된 지적 사항들은 다음 해 예산 책정에 반영된다.
결산심사에서는 예산을 받아놓고 다 쓰지 못해 ‘불용’하고, 남는 예산을 목적대로 쓰지 않고 다른 사업을 위해 ‘전용’하거나 다음 해로 ‘이월’하는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 예산을 남겼다고 해서 단순히 알뜰히 아껴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 해당 부처가 지나치게 많은 예산을 필요 이상으로 받아놨다거나, 세금을 예산집행 계획에 따라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서다.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쓰였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재원이 낭비됐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시사IN〉은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결산심사에 앞서 작성된 ‘2022 회계연도(1~12월)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 소관 결산 검토 보고서’와 ‘2022 회계연도 대통령경호처 소관 결산 및 예비비지출 승인의 건 검토 보고서’를 입수했다. 국회 운영위 소속 수석 전문위원이 작성했다. 검토 보고서에는 지난해 새 정부 출범과 대통령실 용산 이전 등 큰 변화가 있었던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경호처가 한 해 동안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담겨 있다. 보고서는 8월30일부터 9월4일까지 국회에서 진행된 ‘2022년 회계연도 정부 부처’ 결산안 심사에도 활용됐다.
대통령실 인건비가 남은 이유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의 2022년 예산은 931억3200만원이었다(〈그림 1 참조〉). 기존 본예산에 윤석열 정부 출범과 더불어 편성된 추가경정예산이 반영돼 있다.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은 전체 예산 가운데 842억5100만원(예산액의 90.5%)을 집행했다. 인건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355억1500만원으로 총집행액의 42.1%였다. 대통령실 업무 및 국정운영 관리, 시설 개선 등으로 쓰이는 주요 사업비는 297억2500만원(총집행액의 35.3%), 출장비와 각종 행사 및 건물 임차료 등에 쓰는 기본경비는 190억1200만원(총집행액의 22.6%)을 썼다.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이 받아두고 쓰지 않은 예산(불용)은 88억8100만원이었다. 인건비 불용액이 65억5300만원으로 가장 컸다. 나머지는 국내 여비 집행 부진 등에 따른 기본경비 불용액 13억5200만원, 일반연구비 집행 부진 등에 따른 국정운영관리 불용액 5억900만원이었다.
집행, 불용 내역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인건비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과 함께 대통령실 축소 개편을 추진했다. 제왕적 통치의 구태를 벗겠다며 내건 ‘대통령실 슬림화’ 공약 이행을 위해서였다. 전임 정부의 청와대 3실·8수석 체제를 2실·5수석 체제로 축소 개편했고, 직원 수도 100여 명 감축했다. 지난해 5월 장제원 당시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국민의힘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며 “작지만 강하고 민첩한 대통령실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검토 보고서를 보면, 2022년 확정된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 인건비는 총 420억6800만원이었다. 이 가운데 355억1500만원을 집행(집행률 84.4%)하고, 65억5300만원을 쓰지 않았다. 인건비 항목 중 보수가 412억8100만원이었고, 350억3900만원이 집행됐다.
검토 보고서는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인건비 집행률이 부진하다고 지적했다. 인건비는 직제상 정원을 기준으로 편성되는데, 새 정부 출범에 따른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 인원이 줄어 집행률이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정원을 조정하지 않고 예산을 편성했지만, 직원이 줄어든 까닭에 인건비로 책정된 예산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지난 5월24일 대통령비서실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를 보면, 대통령비서실 정원은 443명, 실제 근무 인력은 384명이었다. 국가안보실은 정원 47명, 현원은 29명이었다.
대통령실은 국회에 결산 자료를 제출하면서 “대통령실 특성상 조직·인력 조정이 빈번할 수 있어 탄력적인 운영을 위해 현 직제(정원)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검토 보고서는 “현원이 정원 대비 10% 이상 감축된 상황에서 이러한 운영 기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정원 조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불투명하게 집행된 예산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은 2022년 정책연구용역을 총 6건 수행하며 총 4억6800만원을 집행했다. ‘국정운영관리’ 항목에서 5건, ‘국가안보 및 위기관리’ 항목에서 1건이었다.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은 수행이 완료된 정책연구용역 목록, 계약 관련 사항 등을 국회 결산 자료에 첨부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기관 특수성으로 인해 계약명 등 세부 사항이 외부에 공개되면 검토 중인 현안 사항에 대한 노출, 청사 보안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검토 보고서는 “사후적으로 수행이 완료된 정책연구용역의 목록 등을 제출해도 현안 사항에 대한 노출 우려는 크지 않아 보인다. 과거 국회 결산심사에서 청와대 비서실 및 국가안보실이 정책연구용역 과제명·금액 등을 제출하거나, 정책연구 관리시스템에도 공개한 사례가 있다. 정책연구용역 공개는 국민의 알권리를 확대하고 유관 부처에서도 정책연구용역 결과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라고 지적했다.
관련 없는 사업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한 사례도 있다.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의 각종 정보시스템 및 정보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보화 추진’ 항목으로 예산 75억5300만원을 받았다. 73억6600만원이 집행됐고, 1억8700만원을 쓰지 않았다.
정보화 추진 항목의 세부 내용을 보면 2억6900만원이 집행된 ‘신문기사 스크랩 서비스’ 예산이 확인된다. 검토 보고서는 신문 기사 스크랩 서비스가 정보화 사업과 관련 없다고 지적했다. 뉴스 스크랩 대행 용역을 위해 쓴 예산이라, 정보화 추진 항목이 아닌 기관의 ‘기본경비’에서 집행되어야 하는 사업으로 보인다고 했다. ‘2022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세부지침’에 따르면 정보화 사업은 ①기관의 정보시스템을 기획·구축·운영·유지 관리하기 위한 사업 ②공공·민간 정보화 지원 및 정보화 역기능 방지 사업 ③기타 정보화 관련 법령에 따른 기본계획 및 시행계획 등에 포함된 사업이다.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 운용에 필요한 기본운영경비를 지원하는 ‘기본경비’ 예산에서는 운영되지도 않는 청와대 관람객 수송차량 임차료가 포함돼 있었다. 역대 정부는 청와대 관람 신청을 받아 경복궁 동문 주차장 등에서 춘추관까지 수송하기 위해 매년 버스 3∼4대를 빌려 예산을 집행해왔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청와대를 개방했다.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은 지난해 청와대 관람 업무를 문화재청에 위탁했는데, 계약이 1년 단위로 체결돼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에서 계속 부담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이 3800만원을, 윤석열 정부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이 1억9800만원을 집행했다.
예산 바꿔 쓰고 당겨쓴 경호처
대통령경호처의 2022년 회계연도 결산의 핵심은 예비비다(〈그림 2 참조〉). 지난해 5월 대통령실은 용산 이전을 위해 예비비 496억원을 지출한다고 밝혔다. 경호처에 편성된 99억9800만원이 여기에 포함됐다. 검토 보고서를 보면 경호처는 예비비 99억3900만원을 집행했고(집행률 99.4%), 5900만원을 쓰지 않았다. 예비비 세부 내역은 ①일반 물품 및 장비 이동, 경호시설 임차, 주요 장비 이전 및 시설 조성을 위한 운영비 20억1900만원 ②경호시설 설계 및 공사를 위한 건설비 36억9200만원 ③경호경비 장비 도입을 위한 유형자산 취득 42억8700만원이다.
경호처는 예산집행 과정에서 예비비와 예산 세목 등을 여러 차례 변경한 것으로 확인됐다. 계획이 정확히 세워지지 않아 다른 곳에서 돈을 끌어와 쓰기도 했다. 대통령실 이전이 사전 준비 없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예비비와 추경 등이 편성됐고, 이 때문에 혼선이 있었으리라 보인다.
경호처는 물품 및 장비 이동 비용(집무실 이전) 명목으로 예비비 9억원을 신청했지만 4억9400만원만 집행했다. 나머지 4억600만원은 임차료 및 시설장비 유지비로 세목을 바꿔 집행했다. 실시설계비 1억6000만원은 공사비에 썼다. 이에 따라 총공사비는 36억5200만원으로 늘었다. 경호처는 실시설계비, 공사비와 함께 편성된 감리비, 시설부대비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실시설계는 기본설계를 토대로 현장에서 시설물 규모, 배치, 공사 방법과 기간 등 세부 분석을 통해 구체적인 설계도를 작성하는 작업이다. 대통령경호처는 국회에 결산 자료를 제출하면서 실시설계비에 대해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신규 공사가 증가함에 따라 공사기간이 부족했다. 실시설계를 담당 직원이 자체 설계했고 공사비로 세목 조정했다”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검토 보고서는 ‘하자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대통령경호처가 수행한 공사명은 ‘통합○○센터 개선공사, 방탄창호 설치공사, ICT ○○센터 조성공사, 경비시설 및 초소 조성공사’ 등이다. 대통령 경호 및 경비 측면에서 중요성이 높고 복잡한 공사도 있을 수 있다. 실시설계비를 집행하지 않고 자체 설계를 통해 관련 공사를 진행한 만큼 보안이나 안전문제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경호처는 서울 강서구 경호안전교육원 훈련동 외벽 공사와 냉난방 기기 교체를 위해 편성된 예산도 용산 경호시설 설치에 썼다. 경호안전교육원 관련 예산은 시설 노후화와 불량에 따른 기기 교체를 위해 전년과 비교해 2억2900만원 증액된 5억2800만원이 편성됐다. 경호처는 이 가운데 4억5700만원을 용산 경호시설에 투입했다. 이에 대해 경호처는 “집무실 이전에 따른 주요 경호·경비시설을 신규 설치함에 있어 가용예산이 부족했다. 해당 예산 등을 활용해 경호·경비시설 공사(AI 과학경호시스템 구축)를 진행했다. 경호안전교육원 훈련동 공사는 2023년에 실시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검토 보고서는 “공사 계획과 집행 간의 괴리가 발생하고 이에 시설물 노후도 개선 등 본래 사업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게 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경호처는 대통령 관저 입주 시기가 지연되면서 계획보다 더 많은 비용을 쓰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 공사 지연으로 취임 후 6개월 동안 서초동 사저에서 출퇴근했다. 경호처는 당초 예비비로 신청한 ‘일반수용비’ 일부를 ‘임차료’로 바꿔 2200만원을 외부 경호시설 및 대기 공간 사용비로 썼다.
예산을 계획과 달리 연말에 몰아서 쓰기도 했다. 경호처는 84억3600만원을 자산취득비로 편성했다. 요인 및 국빈 경호활동으로 경호 차량 구매, 경호장비 시설 개선을 위한 화학탐지기 등 56건 구매, 경호업무 전산화를 위해 클라우드 시스템 등 16건 설치, 경호안전교육원 운영에 쓸 교육용 물품 9건을 구매하는 계획이었다.
경호처의 2022년 자산취득비 집행계획을 보면, 1분기와 2분기에 전체 자산취득비의 75.3%인 63억4800만원을 쓰고 4분기에 15.7%를 사용하려 했다. 그런데 집행계획과 달리 실제로는 12월에 35억7300만원(42%)이 집중됐다. 대통령경호처는 “사업비 비중이 큰 ‘경호 특수통신차량 등 경호물품 제작, 네트워크 구축, 클라우드 PC 구축’ 등 상당수 사업이 업무가 안정화된 하반기부터 시작돼 보강작업 등을 거쳐 최종 연말에야 집행 완료됐다”라고 밝혔다.
검토 보고서는 “2022년에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라 자산취득비가 당초 수립한 계획대로 집행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보이나, 일부 사업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관계없이 조기 집행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출범에 따라 상반기 자산취득비 집행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자산취득비 집행계획상 분기별 집행액을 균등하게 수립했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실은 여러 반대 의견을 묵살한 채 국방부까지 무리하게 이전을 강행했다. 대통령실 이전 예산을 보면, 국민 혈세는 혈세대로 쓰고 당초 하고자 했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비효율적인 예산 집행이자 남용이라 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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