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만큼 안 바뀌는 라면값

연희진 기자 2023. 9. 12.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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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 - 환갑 맞은 K-라면] ②50년 새 자장면 50배·담배 83배 ↑… '40배 인상' 라면은 이례적으로 가격인하도

[편집자주]'서민 식품' 라면이 국내에 등장한 지 60년이 됐다.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수많은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해왔다. 현재 라면은 국내에서는 서민 식품이자 '가격 통제 품목'으로, 해외에서는 K-푸드 대표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라면 종주국인 일본은 물론 세계 1위 시장인 미국에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1963년 삼양라면 출시를 시작으로 쓰여진 라면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본다.

라면은 베스트셀러 순위가 굳건하고 가격 변동이 적은 품목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라면이 진열돼 있다. /사진=뉴스1
◆기사 게재 순서
①'맨발의 라면 소녀'… 배고픔 달래주던 라면의 60년사
②입맛만큼 안 바뀌는 라면값
③해외서 더 펄펄 끓은 K-라면

라면은 '먹던 것만 먹는' 대표적인 품목이다. 국내 첫 라면인 '삼양라면'이 나온 지 60년이 지났지만 정상을 밟아 본 라면은 단 3개뿐이다. 업계 취합 자료에 따르면 60년간 점유율 1위 제품은 삼양라면, 안성탕면, 신라면뿐이다.

국내 최초 출시 라면인 삼양라면은 1963년부터 1986년까지 점유율 1위를 유지해왔다. 무료 시식과 라면 먹는 방법 등을 보급하면서 대중에게 라면이라는 개념을 알렸다. 삼양라면의 주홍색 봉지는 당시 라면의 상징물이다시피 했다. 라면의 역사가 시작된 후 20여년 동안 왕좌를 지켰다.

삼양라면 초기 제품사진(왼쪽부터 1963년, 1964년,1965년). /사진=삼양식품
농심은 라면 시장 장악을 위해 1983년 '안성탕면'을 출시했다. 발매와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삼양라면의 점유율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안성탕면은 당시 탤런트 강부자를 '안성댁'으로 내세운 광고로 인지도를 높였다. 결국 출시 4년 만인 1987년 매출 442억원, 점유율 12.9%(AC닐슨 기준)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삼양라면을 제치고 시장 1위 브랜드로 올라섰다. 안성탕면의 시장 1위 등극은 농심의 라면 시장 주도의 시작으로 평가된다.

안성탕면의 왕좌를 이어받은 브랜드는 신라면이다. 1986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도 현재 하루 평균 300만개를 판매한다. '사나이 울리는 매운맛'이라는 카피를 앞세워 출시 5년 만인 1991년 시장 1위로 올라섰다. 지금까지 32년째 '라면 1등' 타이틀을 놓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닐슨IQ코리아 기준 전국 라면 브랜드 점유율은 ▲신라면 9.8% ▲짜파게티 6.5% ▲안성탕면 4.8% 순이다.



버스요금보다 비쌌던 라면값, 지금은 오히려 싸다



농심 안성탕면의 패키지 변화. /사진=농심
라면은 베스트셀러 순위도 굳건하지만 가격 변화도 적은 제품이다. 정확히 말하면 가격 인상이 어려운 품목이다. '서민 식품'이라는 인식이 강해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크기 때문이다.

1963년 국내 첫 출시된 삼양라면의 1봉지 가격은 10원이었다. 당시 서울 시내버스 기본구간 이용료인 5원보다 2배 높은 가격으로 출시됐다. 60년이 지난 지금 삼양라면 1봉지 가격은 910원이다. 2023년 9월 기준 서울 시내버스 기본구간 이용료는 교통카드 기준 1500원이다. 삼양라면의 가격이 590원 저렴하다. 버스요금보다 2배 비쌌던 가격 차이가 역전됐다.

가격조사기관인 한국물가정보가 2020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발행한 '종합물가총람'을 살펴보면 주요 '서민 식품'의 가격 변화를 알 수 있다. 집계를 시작한 1970년 자장면값은 100원에서 2020년 평균 5000원대로 올랐다. 50년간 약 50배 비싸졌다. 담배는 한 갑(신탄진) 60원에서 4500~5000원대로 약 83배 뛰었다.

반면 1970년 삼양라면의 가격은 20원, 2020년 가격은 810원으로 약 40배 올랐다. 그 밖에 소주가 1970년 65원, 2020년 1260원으로 20배 가까이 비싸졌다. 소주를 제외하면 라면처럼 인상률이 낮은 품목은 거의 없다.

누적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라면은 다른 품목만큼 가격을 올리지 못했다. 이례적으로 2010년과 올해 가격 인하가 이뤄지기도 했다. 2010년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식품업체에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주요 라면 업체는 이를 받아들여 2~7%가량 가격을 내렸다.

2023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18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라면 가격을 인하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압박이 시작됐다. 결국 7월1일부터 주요 라면 3사(농심·오뚜기·삼양식품)의 일부 제품 가격이 인하됐다. 개별 품목으로 볼 때 인하 폭은 40원에서 130원 정도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가격 통제 품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라면이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내부적으로 원가 절감과 경영 효율화를 추진하는 등 원가 인상 압박 요인을 감내하고 있다"며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해도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수준으로만 가격 인상률을 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00원도 안 되는 라면, 식당선 5000원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라면이 진열돼 있다. /사진=뉴스1
라면 가격은 더디게 올라 소비자 가격은 현재 1000원이 안 된다. 하지만 소비자가 라면 가격을 체감하는 건 음식점에서다. 분식점 및 음식점에서 라면 가격은 4000~5000원대로 형성됐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씨는 가스요금, 인건비, 월세(임차료) 등이 올라 메뉴 가격에 녹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식당 특성상 온종일 가스를 사용하는데 가스요금 인상 이후 한 달에 들어가는 비용이 2배가량 뛰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누적된 손실 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홍씨 역시 "가스요금 부담이 크다. 한 달에 100만원이 나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130만원까지 나온다"며 "지난달부터 주요 메뉴를 500원씩 올렸고 배달 최소금액도 높였다"고 토로했다.

연희진 기자 to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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