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라면 소녀'… 배고픔 달래주던 라면의 60년사

정원기 기자 2023. 9. 12. 06: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머니S리포트 - 환갑 맞은 K-라면] ①서민 음식에서 프리미엄까지 라면의 무한변신

[편집자주]'서민 식품' 라면이 국내에 등장한 지 60년이 됐다.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수많은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해왔다. 현재 라면은 국내에서는 서민 식품이자 '가격 통제 품목'으로, 해외에서는 K-푸드 대표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라면 종주국인 일본은 물론 세계 1위 시장인 미국에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1963년 삼양라면 출시를 시작으로 쓰여진 라면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본다.

국내 라면 시장은 지난 60년 동안 서민 음식에서 프리미엄 제품 등으로 무한 변신을 거듭했다. 사진 왼쪽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육상 사상 최초로 3관왕을 차지한 임춘애 선수. /사진=대한체육회, 이미지투데이
◆기사 게재 순서
①'맨발의 라면 소녀'… 배고픔 달래주던 라면의 60년사
②입맛만큼 안 바뀌는 라면값
③해외서 더 펄펄 끓은 K-라면

#. '맨발의 라면 소녀' 임춘애를 기억하는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육상 사상 최초로 3관왕을 차지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인물이다. 키 163㎝에 몸무게 43㎏의 비교적 왜소한 17세(당시) 소녀는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육상 신화를 썼다. 부친은 간경화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모친은 월급 15만원을 받으며 달동네에서 노모와 2남 2녀의 생계를 책임졌다. '라면 1개로 하루를 버텼다' '밥보다 라면을 더 많이 먹고 자랐다' 등의 가난과 라면을 잇댄 다소 과장된 내용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다.

라면은 국민의 삶과 깊숙하게 연결되며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특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어 대표적인 서민 음식으로 불린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라면 시장 규모는 약 2조6469억원으로 4년 전인 2018년(약 2조2829억원)과 비교해 3640억원(15.9%) 증가했다. 올해 환갑을 맞은 한국 라면은 무한 변신을 거듭했다.


국내 최초 라면은?… 봉지·용기·비비면 타임라인 한눈에


국내 라면의 시작은 삼양식품이 1963년 출시한 삼양라면이다. 사진은 시대별 삼양라면 제품사진 변천사. /그래피=강지호 기자
국내 라면의 시작은 196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약 10만8000원)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버려진 음식으로 만드는 '꿀꿀이죽'을 먹을 정도로 가난하던 시절 삼양식품은 1963년 개당 10원에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삼양식품은 국내 라면 시장의 선구자 역할을 자처했다. 1969년 국내 최초의 건면 '삼양칼국수'를 출시했고 3년 뒤에는 업계 최초로 컵라면(용기면)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다만 용기 제조원가가 비싸 봉지면(당시 22원)에 비해 4배 이상 높은 가격이 책정돼 초기 판매는 저조했다.

최근엔 매운맛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2012년 '불닭볶음면' 출시와 함께 중독성 강한 매운맛으로 소비자 공략에 성공했다. 지난해 삼양식품 매출은 9090억원으로 2020년 6485억원 대비 40.1% 증가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브랜드 가치를 증대해 주식 부문 글로벌 톱100 기업 진입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컵라면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시기는 1982년 농심이 '육개장사발면'을 출시하면서다. 간편하면서 맛있게 조리할 수 있어 산업화로 바쁜 현대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농심은 '신라면'이라는 스테디셀러 제품을 보유했다. 신라면은 1991년 단일 제품 판매 1위에 올랐고 지금까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점은 차별화한 수프다. 안성수프공장을 설립한 이래 '안성탕면' '짜파게티' 등 히트 제품을 연달아 출시했다. 농심 매출액은 ▲2020년 2조6397억원 ▲2021년 2조6629억원 ▲2022년 3조1290억원으로 증가했다.

농심 관계자는 "신라면의 가장 큰 인기 비결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맛을 구현한 점"이라며 "견고한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제품 마케팅 활동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라면 시장 후발주자 오뚜기는 농심과 함께 업계 양강구도를 형성했다. 1988년 출시한 '진라면'을 내세워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순한맛과 매운맛 2가지를 출시해 까다로운 소비자 입맛을 공략했다.

오뚜기는 주력 제품에 집중하며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다. 진라면 '작은 컵' '큰 컵'을 출시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 그 결과 개별 라면 순위 8위에 머무르던 오뚜기는 2012년 2위에 올랐다. 오뚜기 매출액은 ▲2020년 2조5958억원 ▲2021년 2조7390억원 ▲2022년 3조1833억원으로 증가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지난해 진라면이 전국 판매 2위를 차지하며 사랑받는 제품임을 다시 확인했다"며 "맛과 품질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팔도는 국내 비빔라면의 대명사 같은 존재다. 1984년 '팔도 비빔면'을 출시해 국내 최초로 차갑게 먹는 라면 카테고리를 개척했다. 팔도는 참신한 마케팅으로 시장 내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괄도 네넴띤' '팔도 비빔면 1.2' 등 한정판이나 변형된 제품을 출시한 게 대표적이다. 팔도 매출액은 ▲2020년 7367억원 ▲2021년 7678억원 ▲2022년 1조389억원으로 증가세에 있다.

팔도 관계자는 "그동안 소비자 지향형 마케팅을 통해 꾸준히 성장했다"며 "2024년은 팔도 비빔면 출시 4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한 끼 때운다는 생각 버려"


라면은 국민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프리미엄 음식으로 변모했다. 사진은 농심이 2011년 출시한 신라면 블랙. /사진=뉴스1
세월이 흘렀지만 라면은 여전히 주린 배를 채워주는 서민 식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한두 푼이 아쉬운 사람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고시원에 거주하며 라면을 먹기도 한다.

굶주림의 대명사였던 라면은 국민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프리미엄 음식으로 변모했다. 건강을 중요시하는 소비자가 늘자 고급 식재료를 사용한 프리미엄 라면 시장이 새롭게 등장했다.

신호탄은 농심이 쏘아 올렸다. 2011년 '신라면 블랙'을 출시하면서 프리미엄 라면 시장이 태동했다. 설렁탕 맛을 내기 위해 우골분말스프를 사용하고 건더기 양을 늘렸다. 당시 1600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출시 한달 만에 매출액 9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다만 허위·과장광고와 높은 가격 등 소비자 저항이 거세 신라면 블랙은 출시 반년 만에 단종됐다.

시장에서 사라지는 듯했던 프리미엄 라면 시장은 2015년 농심의 '짜왕'(1500원) 출시로 다시 불이 붙었다. 같은 해 오뚜기가 '진짬뽕'(1370원)을 출시하며 시장이 커졌다.

라면 업계는 프리미엄 라면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비교적 경쟁이 덜하고 라면값 인상 효과를 얻어 수익 개선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라면을 제조하지 않았던 식품업체도 프리미엄 라면을 내놓고 있다. 대상은 2020년 '감자라면 해물한끼·얼큰한끼'를 1800원에, 하림은 2021년 '더미식 장인라면'을 기존 프리미엄 라면보다 비싼 2200원에 시장에 선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프리미엄 라면을 구매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소비 트렌드가 빨리 바뀌어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있다"며 "후발주자들도 연달아 제품을 출시해 경쟁은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얀 vs 빨간' 이어지는 국물 전쟁


하얀 국물 라면은 짜장 라면과 비빔면처럼 라면 제품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팔도 꼬꼬면을 시식하는 개그맨 이경규. /사진=뉴스1
라면 국물은 빨갛다는 통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라면을 먹을 때도 하얀 국물 라면과 빨간 국물 라면을 두고 고심한다.

하얀 국물 라면은 2011년 시장에 등장했다. 삼양의 '나가사끼 짬뽕'과 팔도의 '꼬꼬면'이 대표적이다. 나가사끼 짬뽕은 최초의 하얀 국물 라면으로 돼지 뼈 육수를 사용했다. 꼬꼬면은 개그맨 이경규가 한 방송에서 만든 라면을 상품화한 것으로 2011년 8월 출시했다. 닭 육수 베이스에 청양고추를 넣어 칼칼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소비자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은 각각 출시 5개월, 6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1억개를 돌파했다. 매운 라면 신드롬을 일으켰던 불닭볶음면은 출시 2년이 지나서야 누적 판매량 1억개를 기록했다.

하얀 국물 라면의 시장 점유율은 2011년 12월 17%대로 정점을 찍으며 짜장 라면과 비빔면처럼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삼양식품은 2017년 '한국곰탕면'을 출시했다. 담백한 사골육수를 베이스로 국물을 냈다. 같은 해 팔도는 단종됐던 '진국설렁탕면'을 재출시했다.
최근에도 관련 신제품이 출시돼 하얀 국물 라면 라인업은 탄탄해지고 있다. 지난해 농심은 '사천백짬뽕사발'을 내놨다. 굴과 바지락, 미더덕 등의 시원한 해물 육수 베이스의 라면이다.

정원기 기자 wonkong96@mt.co.kr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S & money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