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의 놀라운 적응력” “키아프의 불황 속 선전”···아시아 최대 아트페어가 남긴 것
미술시장 저변 확대…한국미술의 국제 진출 과제도 확인
미술계 안팎을 달궜던 ‘프리즈(FRIEZE) 서울’과 ‘키아프(Kiaf) 서울’이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가 막을 내렸다.
키아프와 동시에 지난 6일 개막한 프리즈 서울은 9일까지 입장객 7만여 명이, 10일까지 하루 더 문을 연 키아프 서울에는 8만 여명이 찾은 것으로 11일 집계됐다.
전반적인 경기불황과 미술시장 침체에 따른 흥행 우려도 제기됐으나 입장객을 보면 지난해보다 조금 더 많았다. 미술시장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양 아트페어 모두 행사 기간 동안 판매한 미술품 거래액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실적은 알 수 없다. 다만 미술계에서 여러 추정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을 것이란 평가가 많다. 지난해 프리즈 매출액은 6000억~8000억원 대, 키아프는 이의 10분의 1 정도로 추산됐다.
아트페어들과 함께 해외 각국의 미술계 인사와 컬렉터들이 서울을 찾았다. 서울 시내 미술관·갤러리같은 주요 전시공간에서는 특별전·기획전 등 다양한 행사들이 풍성하게 열리기도 했다. 한국 작가와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 긍정적 효과를 낳은 것이다. 하지만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는 프리즈와 비교해 아직 개선할 점이 많다는 평가다. 또 한국 미술의 보다 활발한 세계 진출을 위한 국내 미술계 주체들의 각성과 노력도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리즈, 역시 주목 받다
“세계 3대 아트페어 답게 역시 영리하다. 행사장내 입장객 동선 구조, 갤러리 부스들 배치, 조명 등에 있어 지난해 지적된 문제점을 올해는 개선했다.” “놀라운 것은 참여 갤러리들이 서울에서의 발빠른 적응력을 보여줬다. 지난해 초고가 작품으로 관심을 모았다면 올해는 수십억원 대의 작품들로 구성해 실속을 차린 것으로 본다. 국내외 미술시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것을 바탕으로 지난해 학습한 프리즈 서울의 특성까지도 출품작 구성에 적용한 셈이다.”
“한마디로 예술품 장사를 할 줄 안다. 컬렉터들의 심리, 트렌드까지 파악한 것이다.” 11일 만난 중진의 전시기획자와 갤러리 임원, 평론가 3인의 올해 프리즈에 대한 요약 평가다. 프리즈에 따르면, 참여 갤러리들은 지난해보다 전반적으로 낮은 가격대인 10억~50억원대 작품을 많이 판매했다.
데이비드 즈워너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580만 달러(약 77억원)에 팔았고, 타데우스 로팍은 게오르그 바젤리츠 작품을 120만 달러에, 하우저앤워스는 니콜라스 파티의 작품을 125만 달러에 새 주인을 찾았다. 하우스앤워스는 또 라시드 존슨·폴 매카시·조지 콘도 등의 작품을 45만~90만 달러 가격대에 팔아 상당한 판매고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이트 큐브도 트레이시 에민·박서보·미노루 노무타 등의 작품을 49만~5만 파운드 대에 팔았다.
국내 갤러리로는 국제갤러리가 박서보 작품을 49만~59만 달러에 판매한 것을 포함해 하종현·함경아·이광호의 작품을,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서 갤러리현대는 이성자 작품을 40만~ 45만 달러 대에, 학고재갤러리는 변월룡·하인두 등 여러 작가의 작품으로 상당한 판매실적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프리즈측은 “행사 기간동안 주요 기관과 컬렉터 등 세계 36개국의 참가자들이 발걸음을 했다”며 “이런 큰 관심으로 성공적인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 국내 갤러리 대표는 “참여 갤러리들을 프리즈가 엄선하고, 또 갤러리들도 저마다 시장을 읽는 능력을 기반으로 뛰어난 아트 마케팅 저력을 보여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프리즈가 입장객 동선이나 조명 등 세심한 개선으로 한층 쾌적하고 품위있는 행사장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다.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 패트릭 리는 “서울과 세계의 관심들이 참여 갤러리들의 성공으로 이어져 주요 해외 갤러리는 물론 새롭게 참여한 갤러리들의 매출 달성을 이뤘다”며 “키아프 서울과의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서울에서 영향력을 넓히고, 내년의 ‘프리즈 서울 2024’가 벌써 기대된다”고 밝혔다. 실제 프리즈는 서울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프리즈 런던’에서 열고 있는 별도의 조각품 섹션 ‘프리즈 조각’(Frieze Sculpture)을 ‘프리즈 서울’에서도 운영을 추진 중이다.
선전 속에 기대 품은 키아프
국내 대표 아트페어이자 올해로 22회째인 키아프 서울에는 총 20개국 210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5일간의 행사기간 동안 8만여 명이 방문했다. 키아프 측은 “지난해 대비 약 15% 늘어난 수치”라며 “행사 중에 90여개 국내외 기관과 미술관 관계자들이 찾았다”고 밝혔다.
국내 미술시장 불황에도 불구하고 참여한 갤러리들의 판매 실적도 “예상보다는 낫다. 무난하다”는 게 키아프 측과 국내 갤러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판매 실적보다 해외의 유력한 미술계 관계자들이 행사장과 국내 미술관, 작가 작업실 등을 많이 찾아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렸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무적이란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북적대던 프리즈와 달리 상대적으로 한산해 세계의 벽을 실감한 키아프는 올해 많은 입장객들이 찾았다. 평일 오후 늦은 시간이면 프리즈 방문객들이 키아프를 찾았고, 특히 프리즈가 문 닫은 10일에는 입장을 위한 대기줄들이 만들어질 정도로 활기를 띠었다. 참여 갤러리들의 수천만~수억원 대의 국내외 작가의 다양한 작품 판매도 이어졌다. 특히 대형 갤러리들의 유명 작가 작품 거래가 활발했다.
반면 중소형 갤러리의 신진 작가 작품은 관심은 받으면서 일부는 성과를 거뒀지만 상당수 갤러리들의 실적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키아프 참여 갤러리들 사이에 규모나 작가의 유명도 등에 따라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됐다는 우려 섞인 하소연도 있다.
지난해 별도 행사장에서 열렸던 젊은 갤러리들의 신진작가 소개 섹션이라 할 ‘키아프 플러스’를 본행사장으로 합친 것도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다만 미디어 아트 특별전, 박생광·박래현의 채색화 특별전이 제대로 된 관람객들의 동선 상 공간·규모를 확보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는 평가다. 여기에 프리즈와 비교해 행사장 전체의 동선과 배치, 참여 갤러리들의 출품작 수준에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화랑협회 황달성 회장은 “국내 컬렉터들과 문화재단·미술관 관계자들은 물론 해외 주요 미술관 관계자·컬렉터들이 키아프 행사장을 많이 찾았다”며 “흥행 실적도 중요하지만 한국 미술을 보다 널리 세계에 알릴 수있었다는 긍정적 효과에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프리즈와 키아프에 함께 참여한 국내 갤러리 대표도 “해외 주요 미술계 인사들을 서울에서 만난 것 자체가 한국 미술의 국제화를 한 걸음 더 확장하는 것으로 본다”며 “그런 만남을 앞으로 어떻게 든든한 자산으로 만드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와 미술관과 갤러리·컬렉터·정부 등 국내 미술계 주체들이 프리즈·키아프가 남긴 부정적 요인들은 개선하고 긍정적 요인들은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치밀한 노력이 절실함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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