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國 7만명 찾았다… 아시아 미술 허브로 떠오른 서울
“서울이 ‘아시아 미술 허브’로 한발짝 더 다가섰다. 컬렉터와 미술계 종사자뿐 아니라 일반 애호가들까지 폭넓게 미술을 즐기고 향유하는 장(場)으로 도시 전체가 확대된 느낌이다.”
화려한 잔치가 끝난 뒤 한 미술 관계자가 이런 평을 내놨다. 지난 한 주 국내외 미술 시장을 뜨겁게 달군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가 9~10일 하루 간격으로 폐막했다. 양쪽 주최 측에 따르면, 프리즈는 나흘간 36국에서 7만여 명이 다녀갔고, 키아프는 5일간 관람객 8만여 명을 기록했다. 프리즈와 키아프의 두 번째 만남은 국내 미술 시장에 어떤 성과와 숙제를 남겼을까.
◇전세기 타고 온 중국 큰손들
프리즈 열기는 뜨거웠다. 6일 문을 열자마자 데이비드 즈워너가 구사마 야요이의 ‘붉은 신의 호박’ 그림을 580만달러(약 77억2000만원)에, 하우저앤드워스가 니컬러스 파티의 그림을 125만달러(16억6400만원)에 팔았다. 두 화랑을 포함해 리만머핀, 화이트 큐브, 페이스 등 해외 유명 화랑들은 지난해에 이어 100억대 이상 매출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 명문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의 설립자 타데우스 로팍은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컬렉터가 발걸음했고, 한국 관람객도 늘었다”며 “한국 미술계가 대단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지난 2월에 프리즈 LA에도 다녀왔는데 작품 규모와 동선, 공간 활용 모두 프리즈 서울 수준이 더 높았다”고 했다.
프리즈 전시장에서 만난 30대 컬렉터 정모씨는 “미국 가고시안 갤러리가 주최한 프라이빗 파티에 갔더니 한국인은 소수이고, 중국인이 대다수였다. 전세기를 타고 온 이들도 있었다”며 “중국 ‘큰손’들이 한국에서 작품만 사들이는 게 아니라 그림을 보관할 창고까지 사들이는 추세다. 앞으로 이들의 미술품 창고를 관리하는 ‘창고지기’가 새 직업으로 뜬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했다.
아트페어는 미술품을 파는 상업적 공간이지만, 쉽게 접하지 못하는 명작을 감상하는 기회도 제공했다. 피카소, 에곤 실레, 마티스, 세잔의 소품을 들고 온 갤러리 스테판 옹핀 파인아트는 줄이 길어서 40분 이상 기다려야 했고, 제프 쿤스의 ‘게이징 볼’을 입구에 설치한 로빌란트 보에나 부스도 인기를 끌었다. 런던과 뉴욕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 김승민씨는 “실험적인 작품도 많이 나오는 프리즈 런던과 비교해서 대중적이고 팔기 쉬운 작품이 많이 나왔다”며 “현대 미술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든 측면에서 좋았다”고 했다.
◇서울 전체가 ‘미술 축제’
특히 장터가 열린 코엑스뿐 아니라 서울 전역에서 ‘미술 축제’가 계속돼 한국 문화를 전파했다. 개막 전부터 갤러리들은 물론 샤넬, 프라다, 보테가 베네타 등 명품 브랜드들도 프리즈 기념 파티를 열었다. 한 미술 관계자는 “삼청 나이트에 갔더니 미술인보다 작품을 보고 즐기러 온 국내외 MZ들이 더 많더라”며 “여기가 서울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정도였다”고 했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이렇게 크고 작은 네트워크가 생겨나는 것이 거시적 안목에서 중요하다”며 “결국 문화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산업도 커지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미술과 작가를 세계 미술계에 알리는 효과도 누렸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LA카운티미술관(LACMA), 휘트니 미술관, 일본 모리미술관, 홍콩 엠플러스(M+) 미술관,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후원회 등 수많은 해외 인사들이 리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아모레퍼시픽 등 서울의 주요 미술관을 찾았다. 국내 젊은 작가의 스튜디오에 해외 관계자를 초청하는 행사도 잇따랐다. 서 소장은 “아트페어와 미술관이 협력 체계가 잘 이뤄지면서 단순히 그림을 사고 파는 시장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움직였다”며 “이런 게 진짜 아트 위크”라고 했다.
◇키아프는 절반의 성공
지난해 프리즈에 비해 한산했던 ‘토종 장터’ 키아프도 올해는 흥행에 성공했다. 국내 신진 작가를 조명했고, 일부 국내 갤러리는 차별화 전략으로 돋보였다. 특히 프리즈와 키아프에 모두 참여한 갤러리현대는 프리즈 마스터스에서 이성자 작가의 솔로 부스를 꾸며 호평 받았고, 키아프에선 영국의 개념 미술 작가 라이언 갠더의 단독 부스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프리즈와의 ‘체급 차’는 여전히 컸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우리나라 미술 시장이 아시아 허브가 되려면 한국 화랑과 아트 페어가 몸집을 더 키워야 한다”며 “키아프가 프리즈와 함께 열리면서 부스 비용이 많이 올라 영세한 화랑들은 그림 몇 개 팔아서 부스비 내기도 어려워졌다. 지금 같이 운영하면 작은 화랑들만 죽어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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