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만난 위화 “中서 좌·우란 다 가짜일 수도”
주최측이 “우파라 안 된다”해 불발
본지 기사서 소식 접한 李 “만나자”
“선생님, 한국에서 만나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지난 10일 저녁 서울 마포구의 한 중식당. 중국 소설가 위화(余華·63)가 소설가 이문열(75)을 보며 말했다. “예전엔 얼굴이 고왔는데, 참 세월이 지났네요. 허허.”(이문열) “머리숱이 아직도 많으시네요. 한국에서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위화)
한중을 대표하는 두 소설가의 이날 만남 계기는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위화는 “2000년 처음 방한했을 때, 행사를 주최한 민족문학작가회의(한국작가회의의 전신) 측에 이문열을 초청해달라고 했는데, 단체 측이 이문열은 우파라 만날 수 없다고 했다”고 지난 8일 서울국제작가축제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본지 기사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이문열이 만남을 제안했다. 그간 위화는 방한 때 종종 “처음으로 알게 된 한국 작가인 이문열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지만, 경기도 이천에서 거주하는 이문열과 거리 문제 등으로 만나지 못했다. 위화는 “23년 전 거절당했던 모임을 오늘 갖게 될 줄은 몰랐다”며 지나간 시간을 회상했다.
두 소설가는 다른 국가와 시대를 살아왔지만, 각자 경험한 역사의 질곡을 작품에 녹여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문열은 분단의 현실을 다룬 ‘영웅시대’를 비롯해 광복 이후 한국 사회의 병폐를 지적해 왔고, 문화혁명(1966~1976) 시기 학교를 다닌 위화는 현대 중국 사회의 병폐를 ‘인생’ ‘허삼관 매혈기’ 등에 그렸다. 문학 수업을 따로 받지 않고 기자(이문열), 발치사(위화) 등 다른 직업을 거쳤다는 점도 공통점. 이문열은 “작가 지망생이 아닌 사람이 뒤늦게 (문단에) 나왔으니까 동질감을 느꼈고 반가웠다. 나도 툭 튀어나온 사람이니까”라고 했다. 1998년 이탈리아, 1999년 호주에서 열린 작가 행사에서 만나며 인연을 쌓았지만, 서로를 먼저 알게 된 것은 작품이었다. 위화는 ‘사람의 아들’을, 이문열은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감명받았다고 했다.
이날이 세 번째 만남이지만, 통역사를 대동한 대화는 사실상 처음. 이문열은 위화를 만나자마자 “Long time no see”(오랜만이다)라고 인사를 건넸으나, 위화는 그저 웃었다. 그는 문화혁명기 중국에서 학교를 다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둘은 해외 행사에서 아시아인으로서 느꼈던 동질감과 추억에 대해 기억했다. 자연스레 대화는 언어와 이념을 넘어선, 문학의 역할로 이어졌다. 위화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에서 좌·우파는 오늘은 싸우지만 내일은 술을 마신다. 그러나 한국은 그러지 않고, 너무 열성적이다”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 이날 “정치와 문화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좌파와 우파 작가는 회의 때 삿대질하지만, 좋은 술 하나면 다 같이 마신다. 다만 중국에서 ‘좌파다, 우파다’라는 것은 사실 다 가짜일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이문열도 공감하며 끄덕였다.
위화는 최근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며, 한국과 중국의 사이가 멀어지는 것과 관련해선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의 생각과는 달리, 정부가 바뀌면서 정책이 바뀌다 보면 어떤 한 나라와 좋은 관계가 유지되다가도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그 변화기다. 정부 주도보다는,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를 통해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문열은 “우리가 말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저 알아서 될 거다”라며 “해외에서 중국 작가를 만나면 굉장히 자유롭다. 중국도 (자유로워지는) 흐름이 있다. 아무래도 어쩔 수 없겠지만…”이라고 답했다.
이날 정치적 현안에 대한 토론은 삼가고, 농담에 가까운 대화가 2시간 30분 가량 오갔다. 현재 베이징에서 지내는 위화는 고향인 하이옌(海鹽)에 코로나 이후 가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엔 벌써 두 번을 왔다. 작년 12월, 그리고 이달. 레드 와인에 농담을 곁들인 대화는 위화의 약속으로 끝났다. “제가 다음엔 이천에 꼭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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