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도 칼럼] 백신 피해자 놔두고 추석 즐길 수 없다

정상도 기자 2023. 9. 12. 03: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황금연휴…일상의 중요성 확인 계기
사망·후유증 고통 속 그들…국가책임제 여전히 말뿐

‘불효자는 옵니다’. 코로나19사태가 빚은 ‘비대면 추석’을 상징하는 문구다. ‘불효자는 웁니다’란 대중가요 제목을 비틀어 절박한 분위기를 반영했다. 국무총리가 나서서 “총리를 파세요” 하며 이동 자제를 요청할 정도였다. ‘아범아! 추석에 코로나 몰고 오지 말고 용돈만 보내라’를 빼놓을 수 없다. 만남 대신 마음을 전하라는 취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첫 추석이 다가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10월 2일 임시공휴일 지정안’을 재가했다. 이에 따라 올 추석 연휴는 9월 28일부터 개천절인 10월 3일까지 6일로 확정됐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이래 크게 일곱 차례 대유행을 겪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11일 “3년4개월 만에 국민께서 일상을 되찾게 돼서 기쁘다”며 사실상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을 선언했다. 코로나19 위기 경보 수준이 6월 1일을 기점으로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되고 확진자 격리 의무가 해제됐다. 사실상의 일상회복이다. 그만큼 귀한 추석이고 황금 연휴다. 일상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계기인 까닭이다.

온 나라가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기까지 숨가쁜 고비와 모진 고통이 있었다. 최전선에서 헌신한 방역 및 의료계에 고강도 격리조치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묵묵히 따른 국민이 힘을 보탰다.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8월 31일 현재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3457만1873명이며 누적 사망자는 3만5934명이다. 특히 국민이 백신 접종에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4일 기준 5세 이상 백신 기초접종자는 4428만8342명으로 접종률 86.6%다. 우리나라가 코로나 위기에서 비교적 선방했다면 첫손에 꼽을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백신이 게임 체인저라지만 멀쩡했던 이가 겪는 그 후유증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마찬가지다.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한 2500여 명과 길랭-바레증후군, 밀러피셔증후군, 심부정맥혈전증을 비롯한 여러가지 이상반응에 시달리는 1만7000여 명에 대한 명쾌한 정부 해결책이 없는 한 추석을 온전히 즐길 수 없다.

2021년 4월 26일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집단면역 시기를 하루라도 더 앞당기겠다”며 백신 접종을 독려했다. 외교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국무조정실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뤄진 이 담화를 통해 “인과관계가 있는 피해 발생 시 국가보상제도에 따라 확실한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더 구체적인 언급은 같은 해 12월 7일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내놨다. 원희룡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정책총괄본부장은 코로나19 백신 부작용과 관련한 인과관계 증명 책임을 정부가 지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코로나 대재난에 맞서는 국민에게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겨 왔다. 윤석열 정부는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또 관련법과 제도 개선을 다짐했다. 사망자는 선 보상·후 정산, 중증 환자는 선 치료·후 보상 제도를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윤석열 후보 종합공약 1호로 불리는 백신 부작용 국가책임제다. 이는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로 수렴됐다. 첫번째 국정목표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 아래 상식과 공정의 원칙을 바로 세우겠습니다(약속1)의 세부 항목에 추진 현황을 담았다.

하지만 추석을 앞두고 당정 협의를 거쳐 공개된 백신 피해 보상안은 기대에 못 미쳐도 한참 못 미친다는 지적을 받는다.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난 6일 ‘코로나19 백신접종 부작용 피해보상’ 관련 협의회를 열고 코로나19 백신접종 사망위로금 지급 대상과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사인불명 위로금은 최대 3000만 원으로 상향된다. 이를 두고 백신 피해자들은 정부가 피해를 인정하고 보상하려는 게 아니라 위로금 증액만으로 생색내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백신 접종 본격화 이후 부작용이 불거졌다. 그럼에도 정부 대응은 거북이 걸음이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를 질타하며 대책에 속도가 붙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이 앞선다.


백신 피해자는 정부를 믿고 접종에 나선 선량한 국민이다. 이들과 정부 대책의 접점은 진정한 정부 사과로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백신으로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고, 심지어 목숨을 잃은 사례를 지켜보면서 인과관계를 우선하고 관계부처 협의와 예산 타령을 해온 게 정부다. 사과 다음 행보는 인과성 책임을 정부가 지고 피해자에게 포괄적 보상을 하려는 전향적 태도 변화다. 공약 그대로 실천하라는 이야기다. 코로나19사태는 더 강한 팬데믹 도래 가능성을 예고한다. 위기 상황에 협조한 국민을 외면한다면 또 다른 위기 때 누가 정부를 믿겠는가.

정상도 논설실장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