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만원 ‘포니2′보다 비쌌던 1980년대 차량용 무선전화 ‘카폰’

채민기 기자 2023. 9. 1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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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대사 보물]
‘달리는 전화’로 불렸던 카폰. 1984년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돼 휴대전화에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대표적인 이동통신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윤호기씨 제공

대구 독자 윤호기(87)씨가 1980년대 운영했던 공장은 경북 칠곡군에 있었다. 대구에서 팔달교만 건너면 금방이었지만 행정구역상 시외로 분류돼 전화를 하려면 교환원을 거쳐야 했다.

시외전화는 요금이 비싸고 연결되는 데 약간씩 시간도 걸렸다. 윤호기씨가 생각한 해법은 차량용 무선전화 ‘카폰’이었다. 당시 사용했던 모토롤라 카폰 2대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경북체신청장이 1989년 8월 11일 자로 발행한 무선국 허가 증표도 있다. 무선국(전파를 송수신하는 무선설비와 사용자를 이르는 말) 운용 자격을 명시한 증명서가 필요할 만큼 카폰은 흔치 않았다.

카폰은 1960년대 초 국내에 관용(官用)으로 도입됐다. 1962년 4월 조선일보는 “체신부는 남산 팔각정 밑에 세운 초단파 무선전화 시설로 작년 8월 15일부터 이동 무선전화의 통화 업무를 개시했는데 현재 가입 대수는 관수용 20대뿐”이라며 “달리는 전화”의 도입 현황을 소개했다.

카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4년 한국이동통신서비스(현 SK텔레콤)가 설립돼 청약·설치 업무를 전담하면서부터다. 한국이동통신은 기지국을 확대해 동시에 통화 가능한 회선 수를 늘리고 통화 품질을 높였다.

높은 가격 때문에 보급에는 한계가 있었다. 1984년에 카폰을 쓰려면 단말기 가격에 설치비, 전신 전화 채권 구입비 등까지 초기 비용이 400만원쯤 들었다. 자동차 값보다도 비쌌다. 1980년대 현대 ‘포니2′가격이 약 350만원이었다.

카폰 자체가 비쌌고 사용하려면 자동차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카폰은 부와 지위의 상징처럼 통하기도 했다. 별로 통화할 일이 없는데도 과시용으로 카폰을 설치하거나 카폰이 없는데도 차량 외부에 안테나만 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카폰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맞아 서비스를 시작한 휴대전화에 점차 자리를 내줬다. 일반 전화에 비하면 획기적이었지만 차량에 설치한다는 제약이 없는 휴대전화와 비교하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1999년 카폰 서비스가 종료된 이후 휴대전화 가입자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2022년 3월 기준 휴대전화 회선 수는 총 5548만개로 지난해 대한민국 총인구 5162만명보다 많다. 전 국민이 휴대전화를 하나 이상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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