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현대 과학기술이 위험한 근본적 이유
약 20만 년 전에 나타나 현재 유일한 인류로 남아있는 호모 사피엔스는 대부분의 시간을 구석기인으로 살다가 1만 년 전 농업과 목축업을 시작했다. 이는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자원에만 의존하는 삶으로부터 땅을 개간하여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하는 등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여 자연을 변형시키는 삶으로의 전환이라 볼 수 있다. 이후 자원을 얻기 위한 기술은 끊임없이 만들어졌으며 특히 과학혁명을 계기로 더욱 효율적이고 강력한 기술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전 세계가 대량생산을 위해 대규모 공장을 돌리기 이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기술은 안정적인 지구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무한한 자원의 보고라 생각했던 지구는 폭력적 기술력 앞에서 그 기능을 점점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1만 년 전 빙하기가 종료되며 시작된 지질학적으로 신생대 제4기 ‘홀로세’가 끝나고, 대략 100여 년 전부터 지구는 크게 변형되기 시작했으며 그 요인이 인간에게 있음을 말하는 ‘인류세’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간만으로 인해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는 다급한 상황에서 늦은 감은 있지만 모두 함께 우리의 삶과 사고 전반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때다. 특히 뉴턴역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과 같은 주류 물리학이 강력한 현대기술의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물리학과 기술이 갖는 관계성에 대해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우리는 물리학을 통해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었으며 이로부터 사고의 범위와 깊이를 크게 확대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물리학이 존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물리학은 물리적 대상의 변화를 예측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는 여러 제한이 따르게 된다. 일단 대상의 수가 매우 작고, 대상이 주위로부터 받는 영향도 최대한 단순화시킴으로써만 정확한 예측을 내놓을 수 있다. 이 조건이 만족되려면 대상을 많은 환경요인으로부터 분리되도록 설정해야 한다. 이렇게 이상화되고 단순화된 물리법칙으로부터 천체의 운동을 비롯한 자연의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이 지식을 대부분의 기술에 적용했다.
그러나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존재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수많은 구성원들이 얽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세계다. 이처럼 결코 몇 개의 요인들로 단순화할 수 없는 체계를 ‘복잡계’라 부르는데 기존 단순성을 전제로 하는 물리학으로는 예측이 매우 어려운 대상이다.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우리의 신체,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생태계, 복잡한 경제 및 문화적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 단 며칠 후의 상황도 정확히 알 수 없는 기후 등 우리는 온통 복잡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핵분열 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끓이고 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은 그 자체만 생각하면 정확히 예측가능하고 실제로 정밀하게 작동한다. 그런데 이 정확한 기술을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핵발전소는 결코 주변과 분리된 공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모든 핵발전소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 속에 함께 존재한다. 단순하고 정확한 기술이 예측이 어려운 복잡계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했던 발전소는 강력한 지진과 쓰나미로 암흑천지가 되었으며 모든 과학적 예측 능력은 사라졌다. 결국 폭발로 이어짐으로써 엄청난 방사능물질이 유출되어 넓은 면적의 국토와 바다 생태계를 파괴시켰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었는지, 이후로도 언제까지 모든 상황을 끝낼 수 있을지 전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그 영향이 어떠할지 알 수 없는 오염수를 방류하고 있다. 사고 이후 모든 것이 불확실성 속에서 진행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의 기술 개발이 지금까지처럼 기술 자체만의 부분적인 지식만을 바탕으로 해서는 우리의 생존을 더욱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 기술이 우리의 터전인 전체 생태계에 어떻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적정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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