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11] 가을이면 내가 후회하는 것
1996년과 이듬해 작가 장정일이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필화(筆禍)를 겪을 때 나는 당시 언론에서 ‘신세대 작가들’이라고 부르던 동료 소설가들과 함께 해당 작품의 금서(禁書) 지정과 폐기, 작가 사법 처리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여론 시위 등을 했다. 결국 장정일은 10개월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고, 그 책은 소멸됐다. 내 나이 스물여섯, 일곱의 일이다.
1992년 마광수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 파동으로 사회가 발칵 뒤집혔을 때 나는 시인으로 등단한 지 두 해밖에 안 된 스물두 살이었다. 아직 소설가도 아닌 데다가 내가 아는 사람도, 나를 아는 사람도 없는 처지라 감히 무슨 일을 하고 말고가 없었다. 이문열같이 힘센 문인이 마광수의 문학은 싫어할지언정 그가 당하는 문학 외적 환란(患亂)에는 항의를 해줬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해 10월 작가 마광수는 강의실에서 수업 중 영장도 없이 긴급 체포 구속됐다. 이후 온갖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2017년 9월 5일 이른 오후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 방범창에 스카프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뉴스를 접하며 나는, 장정일을 옹호하기 위해 나간 무슨 방송 토론 중 거기에 ‘잠깐’ 끼워 넣어 마광수를 변호했던 기억을 억지로 떠올리며 죄책감을 삼켰다.
나는 문제의 두 소설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장정일 문학은 초기의 것들에 한하여 매료됐고, 마광수 문학은 안중에 없었다. 그러나 현대 문학과 자유 사회를 저버리지 않으려면 두 작가에 대한 저런 탄압은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2001년 11월 3일 정의감에 가득 찬 사람들이 소설가 이문열의 집 앞에서 그의 책 수백 권을 관 형태로 묶어서 운구했다. 맨 앞에는 ‘10세 소녀’가 이문열의 책 표지 사진들을 모아 만든 영정(影幀)을 들고 있었다. 정의로운 사람이 외쳤다. “우리는 세계 문화사에 유례없는 일을 하고 있다. 이문열 그가 유례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유례가 많다. 아이를 앞세우고, 책을 불태우는 것은 좌익 우익 파시스트들이 공히 하던 짓이다. 나치, 스탈린, 홍위병, 무솔리니, 피노체트, 크메르루주, 김일성 등등이 그랬고 박정희 유신 시절의 문화 검열도 만만치 않았다.
1933년 독일에서 맨 먼저 책을 불태운 건 ‘깨어 있는 시민’ 같은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이 나중에 학살한 유대인의 피부를 벗겨 자기들이 원하는 책의 장정을 만들었다. 비유가 아니다. 진짜로 그랬다. 나는 이문열의 정치 의식에는 몰입돼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가 ‘책 장례식’을 당할 때 그를 위해 싸워야 했는데, 침묵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안 싸운 걸 ‘후회한다’는 뜻이다. 그때 그 수모를 겪던 선생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다. 얼마 전 ‘어린이 활동가’를 앞세우며 정치 선동을 하는 부모와 국회의원들을 보니, 더 그런 생각에 잠긴다. 차라리 악몽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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