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 심다 허기…나주서 삭힌 아르헨티나산 홍어를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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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맹서'도 하릴없다.
배추 모종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가을 상추 모종과 무·총각무·돌산갓 씨앗도 샀다.
듬성듬성 열댓 개 모종을 한 줄로 넣었던 고랑마다 아예 작정하고 호미 하나 간격, 갈지자형으로 두 줄씩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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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맹서’도 하릴없다. 장마와 더위가 갔고, 풀로 덮인 텃밭에 어김없이 예초기를 들이댔다. 잘 썩은 계분(닭똥) 퇴비 넣고 땀 흘려 삽질했다. 가을밭을 만들었으니, 생각나는 건 오로지 ‘배추 배추’뿐이다. 연재 첫 회에서 감자와 배추에 감히 ‘이별’을 선언했다. 하지만 감자야 미안하다, 배추하곤 못 헤어지겠다.
2023년 8월20일 오전 가을농사를 위한 정비에 나섰다. 풀을 베어 길을 내고, 옥수수 등 수명을 다한 작물을 걷어냈다. 오랜만에 다섯 명이 모여 땀을 흘린 뒤 단골 식당에서 가을농사 출정식을 하기로 했다. 종자와 퇴비를 충당하기 위해 5만원씩 새로 추렴했으니 자금은 넉넉했다. “밭에 줄 거(퇴비 비용) 줄여서 우리가 먹세.” 밭장이 신을 냈다. 자전거를 타고 온 동무들이 먼저 출발했다. 차로 곁을 지나치며 밭장이 외친다. “오빠, 밟아~!”
일주일 뒤 경기도 양주화훼단지를 찾았다. 배추 모종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30주짜리 세 판을 샀다. 공동경작하는 6가구 가운데 김장하지 않을 2가구를 뺀 4가구가 20포기 정도씩 가져가는데 넉넉할 듯싶어서다. 가을 상추 모종과 무·총각무·돌산갓 씨앗도 샀다. 봄에 남겨놓은 모둠 상추 씨앗까지 뿌리기로 했다.
지난해 그나마 배춧속이 찼던 밭 세 고랑을 택했다. 듬성듬성 열댓 개 모종을 한 줄로 넣었던 고랑마다 아예 작정하고 호미 하나 간격, 갈지자형으로 두 줄씩 심었다. 제법 길쭉한 고랑에 차곡차곡 들어간 모종이 85주나 됐다. 남은 5주는 나중에 보식(제대로 자라지 못한 모종을 빼고 옮겨 심기)하기로 했다.
고작 20포기로 김장이 될까? 아무래도 부족하지 싶다. 그럼 어떡하지? 모종을 옮겨 심으며 동무들과 농을 쳤다. “아니, 그러니까, 무농약 배추 20포기씩은 확보되는 거잖아. 거기다 마트에서 약 친 배추 20포기를 사서 섞으면 이게 다 희석돼서 사실상 무농약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거거든.” 일본 후쿠시마에서 싹튼 기적의 논리가 텃밭에서 꽃을 피웠다.
햇살은 따가웠고, 땀은 쏟아졌다. 간만의 삽질에, 쪼그려 앉아 모종을 심다보니 이내 허기가 졌다. 전남 나주 영산포에서 전통 방식으로 삭힌 아르헨티나산 홍어 날갯살 포장을 뜯었다. 지난해 밭에서 키운 무로 담근 묵은 김치를 ‘실장님 회초장’과 곁들였다. 막걸릿잔이 바삐 돌아갔다.
배추 모종을 다 심은 뒤, 미리 퇴비를 넣어 만들어놓은 밭에 상추 모종을 심었다. 남은 공간엔 모둠 상추 씨앗을 줄뿌림했다. 올가을에도 상추는 충분하리라. 밭을 둘러봤다. 오이는 ‘끝’인 것 같다. 호박은 좀더 두고 보기로 했다. 종자를 얻어 뿌린 서리태는 풍성한 나무로 자랐다. 곧 콩이 여물까? 서리 내릴 무렵 동무들과 한 됫박씩 나눌 수 있기를 소망했다.
방울토마토는 여전히 기세등등한데, 열매 크기가 아이 엄지손톱만큼 작아졌다. 곧 무와 총각무에 자리를 양보해야 할 듯싶다.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도 1~2주면 끝이다 싶은데, 뒷심을 발휘하는 가지는 찬 바람 불 때까지 놔둘까 싶다. 작두날만큼 자란 작두콩과 여린 고구마순까지 거두고 나니 노곤노곤해졌다.
글·사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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