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역사논쟁에 끼어든 軍의 빈약한 역사의식

구현모 2023. 9. 1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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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에서는 때 아닌 역사 논쟁이 한창이다.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의 외부 이전 시도가 계기가 됐다.

당초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의 흉상도 옮기려 했지만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자 홍 장군 흉상만 쏙 빼서 이전하겠다고 한다.

육사의 홍 장군 흉상 이전 논란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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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에서는 때 아닌 역사 논쟁이 한창이다.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의 외부 이전 시도가 계기가 됐다. 당초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의 흉상도 옮기려 했지만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자 홍 장군 흉상만 쏙 빼서 이전하겠다고 한다. 문재인정부 시절 “독립군·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고 했는데 이제 와서 “육사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고 하려니 논리가 궁색해진 걸까. 다급하게 “우리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라고 외치는 듯 하다.

공론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여당 내에서도 “홍 장군 흉상을 육사에서 빼야 한다는 국민이 1%나 될까”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많은 국민이 지켜본 8월 29일 국방부 정례 브리핑 그리고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국방부의 빈약한 역사의식이 드러났다. 이날 국방부는 홍 장군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빨치산’이라는 용어를 썼다. 하지만 빨치산은 러시아어 ‘파르티잔’에서 온 외래어다. 굳이 해석하자면 ‘비정규군’이라는 의미다. 6·25전쟁 당시 남한에서 암약한 빨치산처럼 ‘공산주의 무장 부대’라는 뜻으로 쓰인 것은 해방 이후부터다.
구현모 외교안보부 기자
홍 장군의 자유시 참변(1921) 개입 의혹도 제기했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역사적 사료를 내놓지는 못했다. 자유시 참변은 독립군 통합을 둘러싸고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고려혁명군정회의와 대한의용군이 주도권 싸움을 벌이다가 벌어진 사건이다. 기존 연구들을 살펴보면 북간도에서 넘어온 홍 장군 측은 중심 세력이 아니었다고 한다. 고려혁명군정회의가 중심이 된 통합을 지지한 것은 맞으나 대한의용군을 무장해제시키는 데 가담했다고 단정하기엔 증거가 불충분하다. 오히려 무장해제에 강하게 반대했다는 견해가 많다.

내용도 문제이지만 최소한의 형식도 갖추지 못했다. 군에도 전문가와 연구기관이 있다며 “역사학계와 협의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세계일보 취재 결과 연구기관인 군사편찬연구소에 독립운동사 전문가는 없었다. 심지어 군 내부에서도 엇박자가 발생했다. 흉상 이전 논리대로라면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함명도 변경해야 한다는 지적에 국방부는 “필요하면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해군은 같은 자리에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국방부가 홍 장군 의혹과 관련해 참고했다는 문헌들을 기자도 찬찬히 읽어봤다. 선행 연구를 부정하고 자신들 주장과 맞는 부분만 취사선택한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 만했다. 홍 장군이 봉오동 전투를 치를 당시 벌써 52세였다는 점은 외면한 채 왜 그보다 21살 어린 김좌진 장군처럼 만주로 돌아가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공산주의자였다고 하지만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소련(현 러시아) 지원을 받아 일제에 맞서려 했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해선 안 된다.

권력이 역사를 독점하려는 시도는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다. 국정교과서 논란이 단적인 사례다. 당시 보수 진영은 학계에서 정면승부를 벌이는 대신 교과서를 바꿔 자신들의 역사관을 관철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육사의 홍 장군 흉상 이전 논란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아니, 어쩌면 육사가 가장 피하고 싶은 캠퍼스 이전 문제가 재점화할 수도 있겠다.

구현모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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