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그 집 앞

2023. 9. 11.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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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세상을 떠난 시인의 유고시집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에서 한 편을 가져왔다.

투병 중 쓰고 다듬은 시라는 것을 알고 읽어서인지, 죽음에 대한 시인의 사유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시인의 이야기는 지금 살아 있는 내게도 큰 위로가 된다.

우연한 인사 한 번 나눈 적 없는 시인에게 이토록 감사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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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설
그의 무덤은 털모자처럼 따뜻해 보여요
그는 옆으로 누워 책을 뒤적이겠죠
남모르는 창이 있어
그리로 내다보기도 하겠죠 가을 오는 숲이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는 걸
턱 괴고 바라보겠죠
냄비에 밥도 지어먹고 빨래도 하고 둥근 천장에 닿지 않도록
고개 숙이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담배도 피울 겁니다
하나도 변함이 없다고 편지도 쓸 겁니다
남모르는 창에도 어둠이 내리고 그는 창가에 앉아 생각하겠죠
이렇게 변함이 없는 걸 왜 항상 두려워했을까
털모자처럼 귀를 가리는
혼자만의 방을 갖는 것인 걸 왜 그렇게 두려워 울었을까
(하략)
2020년 세상을 떠난 시인의 유고시집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에서 한 편을 가져왔다. 투병 중 쓰고 다듬은 시라는 것을 알고 읽어서인지, 죽음에 대한 시인의 사유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선선한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해서인 것 같다. 떠난 이들을 불현듯 떠올리며 여느 때보다 오래 생각에 잠기곤 하는 것은.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시인의 이야기는 지금 살아 있는 내게도 큰 위로가 된다. “이렇게 변함이 없는 걸” 누구라도 말해주기를 기다려왔는지 모르겠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그 집 앞”을 서성이는 동안 내내. 우연한 인사 한 번 나눈 적 없는 시인에게 이토록 감사하게 될 줄이야.

나도 그도 9월에는 “가을 오는 숲이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는 걸” 볼 수 있기를. 따뜻한 밥을 지어먹고 보고 싶은 이에게 편지 한 통 띄울 수 있기를.

“털모자” 같은 안부를 전한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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