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은의멜랑콜리아] 우울증 때문이 아니다
개인의 심리적 문제로 프레임화
교육시스템의 문제를 은폐하면
교육의 미래는 더 위태로워진다
자본주의는 우울증을 만든다. 그리고 개인 및 사회 문제의 원인을 우울증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자본주의는 영속된다. 우울증을 부각하면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은 감춰진다. 환원주의적인 접근 방식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학교는 자본주의 욕망이 응집된 곳이다. 학생은 경제자본과 상징자본을 획득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준비하는 역할자가 된다. 개별 학생의 고유성은 무시된다. 측정 가능한 능력만 평가되고 성적으로 산출된다. 평가의 내용이 얼마나 ‘교육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 자체가 서열 가르기에 있다. 불공정하고 부조리한 경쟁이 과열된다. 계급에 따라 평가에 유불리가 결정된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평가라는 명목으로 그 과정은 정당화된다. 계급은 세습되고 구별짓기는 영속된다.
정부는 정량화된 평가만 지시하진 않았다. 더 객관적이고 더 신뢰도 높는 평가로 생활기록부에 각 학생의 세부 능력과 특이사항을 기록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것은 학생의 스펙이 된다. 학생은 ‘잠재적 인적 자본’으로 관리된다. 인적 자본이 되지 못하는 학생은 무능력하거나 불성실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 모든 것이 교사의 업무량으로 수렴된다. 교사는 교육적 가치를 실천하는 교육자가 아니라 학생의 스펙을 관리하는 기술자가 된다. 교사에게 학부모의 불평이 투사된다.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도 가세된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 학생의 과격한 행동은 이런 상황에서 파생된 증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학부모 악성 민원에 초점을 맞추고, 학생 행동에 대한 제지를 어떤 수준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교사에게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은 교육계에 내재된 진짜 문제에 대한 가림막이 된다.
교사가 거리로 나온 것은 ‘교육’을 위해서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교육’이다. 교육 의무를 행할 수 있게 시스템을 재정비하라는 요구다. 집회 방식은 그들의 간절함을 증명한다. 다른 정치적 맥락이 개입할 수 없게 교사들은 집회의 방식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대처한다. 정치인을 연단에 세우지 않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기존 교원 단체의 개입 또한 제지한다. 집회는 인터넷 교사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자발적으로 시작된다. 집회가 끝나면 집행부도 사라진다. 그리고 또 다른 교사가 바통을 잇는다. 교육에 대한 염원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교권에 대한 염원은 민주주의를 향하고 있다. 집회의 내용도, 집회의 형식도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여기에 학부모의 마음이 연결된다. 적지 않은 학부모가 교사를 지지한다. 9월4일 ‘공교육 멈춤의 날’, 해밀초등학교 학부모들은 학생 돌봄 활동을 지원했다. 한 학부모의 말이 마음을 울린다. “돌발은 언제든 생길 수 있고, 실수와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그때 서로 있는 그대로를 얘기하면서 그 간격을 줄이게 되면, 그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교를 다니니까 그게 고마워서….” 이 응원은 뭉클하다. 이런 응원이야말로 그 어떤 구호보다 강한 연대를 만들 것이다.
교사의 집회는 학생에게 갈등에 대한 태도를 가르친다. 집회에 나온 교사와 학교에 남아서 학생을 돌보는 교사는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다. 어느 한쪽이 없어서는 둘 다 불가능하다. 학생들은 그런 교사들을 보면서 연대와 우정을 내면화하게 된다. 이 모든 갈등을 모른 척하고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반교육적이다. 이 관점은 학생에게서 학습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학생에게서 갈등으로 드러나는 부조리와 진실을 학습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교사들의 죽음은 분명 학생에게 상처가 된다. 그 상처가 가장 안타깝다. 그러나 상처를 부정하고 억압하면 학생에겐 왜곡된 자아상과 사회상이 뿌리내릴 것이다. 이제 학생의 상처 또한 토론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교사들이 이 상처를 돌봐야 한다. 그래야 ‘교육’이 시작될 수 있다.
한귀은 경상국립대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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