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재력’ 확보와 韓美 원자력협정 개정[동아시론/전진호]
핵잠재력 확보 위한 협정의 조기 개정 논의 필요
핵 비확산의 틀 안에서 설득과 협력 강화해야
한편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 핵잠재력 확보가 아니라 핵개발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한미 원자력협정의 제한을 받지 않고 핵개발이 가능하다거나 혹은 협정 개정을 통해 핵개발을 하자는 것으로 현실적이지 않다. 먼저 자체 핵개발은 NPT 탈퇴를 의미하며 국내 원자력발전 전반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또한 미국이 현재의 핵 비확산 정책을 유지하는 한 핵개발을 위한 협정 개정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과 국제사회의 승인 없는 핵개발이 야기하는 국제 제재 등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핵 비확산 체제 내에서 핵잠재력을 확보하기 위한 원자력협정 개정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에 반대해 온 미국이 한국의 핵잠재력 확보를 승인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지만, 현행 협정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2035년까지 기다리지 말고 협정을 조기에 개정해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는 현행 협정이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을 실질적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협정 개정 협상으로 미국이 나올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한미 협정 개정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정책 결정이 우선 돼야 한다. 협정 개정은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데,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다시 연료로 사용하는 ‘핵연료주기’ 정책을 확립할 것인지, 아니면 사용후핵연료를 폐기하는 현행 정책을 유지할 것인지의 결정이 필요하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지 않고 폐기하는 방향으로 정책 결정이 이뤄지면 협정 개정의 동력은 상실될 것이다.
만약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정책을 확립하면 원자력 발전 용량 기준 세계 6위의 원자력 선진국으로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을 주장할 수 있으며, 동시에 협정 개정 필요성을 미국에 납득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체 핵무장은 물론이고 핵추진 잠수함 건조 등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이용이 혼용돼 주장돼서는 안 될 것이다. 2015년의 협정 체결 과정과 이후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 과정에서 미국은 일관되게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한반도에서의 핵확산에 연결되는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이용을 미국이 엄격히 제한할 것은 명백하다.
한미 협정의 개정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안정적인 원자력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5년 협정으로 한미는 원자력 고위급위원회를 가동하고 있으며 고위급위원회를 통해 한국의 원자력 프로그램을 미국에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협력만으로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확보,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원자력공급국그룹(NSG) 등 원자력 관련 국제기관과의 협력도 중요하다. 과거 극소량의 플루토늄 추출 및 우라늄 농축 실험으로 한국 원자력 활동의 투명성에 상처를 남긴 것은 사실이다. 핵 비확산 및 핵무기 관련 기술통제 기관인 IAEA나 원자력 관련 수출 통제를 통해 핵무기 비확산에 기여하려는 NSG도 한국이 핵잠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협력을 얻어야 하는 주요한 기관이다.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한을 확보하는 한미 협정의 개정은 치밀한 준비 작업이 필요한 어려운 과제다. 국제적 핵 비확산의 틀 안에서 핵잠재력을 확보해 나가야 하며,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과 연결돼서도 안 된다. 또한 한미 협정의 개정만으로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원자력 관련 기술과 수출 등에 규제 권한을 가진 IAEA, NSG 등의 국제기관은 물론이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핵잠재력 확보를 희망하고 있는 일본과의 협력도 필수불가결하다. 핵잠재력 확보와 한미 협정 개정은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정책 과제다.
전진호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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