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강진 현장] 무너지고 금가고…천년고도 '붉은 도시'에 남겨진 상흔(종합)
백종원 한식 팔던 광장, 낮에는 상인들 생업 터전-밤에는 노상 피난처 돼
구조작업 조금씩 활기, "갈길 멀다"…여진 우려 속 살아남은 자들에 엄습한 두려움
"골든타임 거의 소진"…간이병원엔 긴 줄, 마을 전체가 주저앉은 곳도
(마라케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규모 6.8의 강진이 할퀴고 간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천년고도 마라케시는 지진 발생으로부터 사흘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여전히 그 상흔을 노출하고 있었다
11세기 알모라비드 왕조에 의해 건설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마라케시의 메디나'에서는 기자가 방문한 이날 오전 지진으로 일부가 무너지거나 금이 간 건물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중세고도 마라케시는 '붉은 도시'로 불릴 정도로 구도심이 붉은 벽돌들로 점철돼 있었다.
숱한 할리우드 영화와 드라마 등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올드 메디나의 카스바 성벽, 쿠투비아 모스크, 바히아 궁전 등은 무너지진 않았지만, 이번 강진으로 인해 큰 내상을 입었을 것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마라케시의 지붕'으로 불리는 쿠투비아 모스크의 69m 높이 붉은 첨탑(미나렛)도 육안으로는 이렇다할 피해가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게 전날 현장실사를 진행한 유네스코 전문가의 진단이었다.
유네스코의 마그레브(북아프리카) 담당 국장인 에릭 팔트는 "훼손 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쿠투비아 모스크 첨탑에 큰 균열들이 생겼다"며 "거의 완전히 부서진 상태"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온 한 관광객은 "쿠투비아 모스크 첨탑은 돌과 흙으로 만들어 겉보기와 달리 약할 것 같다"며 "첨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당국이 노력을 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마라케시 시내 대부분 건물도 외관상 큰 피해를 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 카페 건물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흉물스럽게 무너져 내려 있었고, 그 앞에 지진 현장의 '배경 화면'을 원하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마라케시 주민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로 흥성이던 메디나 가장자리의 제마 엘프나 광장은 밤이면 여전히 강진 때 약해진 건물이 붕괴하거나 여진이 닥칠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노상 피난처가 된다.
제마 엘프나 광장의 시장은 예능 프로그램 '장사천재 백사장'에서 백종원이 한식을 판매했던 곳이라 한국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장소다.
반면 햇살이 따가운 낮시간의 광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광장 중앙에는 염색 문신 업자들의 천막이 간간이 눈에 띄었고 인근 도로에는 수백 대의 마차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진의 상흔 속에서도 생업을 멈출 수 없는 상인들의 사정이 엿보였다.
한 현지 상인은 "더운 낮시간 동안에는 사람들이 광장에 오지 않는다. 하지만 밤이 되면 여진이 두려운 사람들이 광장에 이불을 편다"고 말했다.
실제로 8일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한 지 이틀만인 10일 오전 규모 3.9의 여진이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 현재 모로코 내무부가 집계한 지진 사망자는 2천497명으로, 2천500명에 육박했다. 부상자는 2천476명으로 집계됐다.
진앙이 위치한 마라케시 남부의 알하우즈주(州)에 인명 피해가 집중됐고, 타루다트주, 치차우아주에서도 수백명의 사망자가 보고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실제 피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부상자 중 상태가 심각한 환자가 많고 피해 지역 산사태 등으로 적극적인 구조 활동을 위한 인력과 장비가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USGS도 인명피해 추정치 평가를 이날 지진 발생 직후 내린 기존의 '황색경보'에서 '적색경보'로 두 단계 상향했다.
더 우려되는 것은 8일 밤 11시를 조금 넘은 시각에 발생한 지진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행히 막혔던 길들이 뚫리면서 구조작업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지만, 갈길이 멀다는 게 현지 비정부기구(NGO)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하는 현지 교민 김동인씨는 "어제 진원과 가까운 아미즈미즈 지역에 다녀왔다. 모로코 정부가 4개국 구조대의 도움을 받기로 한 뒤 스페인 구급차도 보였다"며 "도로가 일부 복구되면서 구급차를 비롯한 차량 행렬도 늘어나고 도로변에 소규모 중장비도 눈에 띄었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어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 현장의 모습에 활기가 도는 모습이지만, 골든타임이 거의 소진돼 가고 간이 병원에 긴 줄이 늘어선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피해 지역 마을 깊숙이 들어가 보니 상황이 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흙벽돌 등으로 지은 집들은 거의 다 무너졌고 마을 전체가 주저앉은 곳도 있었다"며 "식당이 있던 자리에서는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을 꺼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였다"고 전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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