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90%가 산골 오지... 구조대는 나흘째 도착하지 않았다

타루단트·마라케시/정철환 특파원 2023. 9. 1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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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대지진 현장…정철환 특파원 르포
11일(현지 시각) 찾아간 모로코 산비탈의 타마룩트 마을에서 주민 복솔 후세인씨가 지난 8일 강진으로 인해 무너진 집들의 잔해에 서 있다. /정철환 특파원

지진이 할퀴고 간 상처는 국토를 가로지르는 아틀라스산맥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8일 밤(현지 시각) 규모 6.8 지진이 강타한 모로코의 고도(古都) 마라케시에서 출발해 16세기 수도였던 타루단트로 이어지는 ‘A3 고속도로’에서 내다본 산 중턱에는 거대한 계곡처럼 1㎞ 길이 균열이 파였다. 가드레일은 엿가락처럼 휘었고 도로 곳곳에 집채만 한 돌덩이가 나뒹굴었다. 11일 아침,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1시간가량 올라 도착한 타마룩트 마을은 초입부터 폭격을 맞은 듯했다. 좌우로 집들이 모두 무너져 내린 한 골목에서만 사상자가 30명 넘게 나왔다고 했다. 마을 촌장 복솔 후세인(71)씨는 “(흙 등으로 지은) 오래된 농가들뿐 아니라 콘크리트 건물들도 무너졌다”며 “주변의 다른 마을들은 산사태로 길이 막혀 접근조차 안 된다”고 했다. 흙벽돌 무더기에서 가재도구를 파내는 남자들 사이로 히잡을 쓴 여성이 넋 나간 듯 앉아 있었다.

오, 하늘이시여! - 10일(현지 시각) 지진이 덮치고 간 모로코 아다씰 인근의 한 산비탈 마을에서 주택과 건물들이 쓸려 내려가 잔해로 뒤덮여 있다. 지난 8일 발생한 모로코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2500명에 육박한 가운데 유엔은 지진 영향권에 있는 주민 30만명이 피해를 볼 것으로 추산했다. /AFP 연합뉴스

모로코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이번 지진 사상자의 최대 90%가 중부 아틀라스산맥 주변 산비탈의 오래된 흙벽돌이나 석재 집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진앙에서 동북쪽으로 50㎞가량 떨어진 산간 마을 타페가그테는 마을 주민 200명 중 무려 90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BBC가 전했다. 생존자들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병원에 있거나 죽었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진경

구조 작업은 더디고, 기다림은 힘겹다. 지진 발생 후 약 72시간으로 여겨지는 생존의 ‘골든 타임’이 지나갔다. 모로코 정부는 “산속 오지 마을로 이어진 도로 상당수가 무너지거나 낙석으로 막혀서 접근이 힘들다”고 해명하고 있다. 지진 나흘째까지 많은 곳에 정부 구조대가 도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주민들은 외국 취재진도 오는 와중에 정부 지원이 더딘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며 울분을 쏟아내고 있다. 타루단트에서 만난 이샤크(30)씨는 기자에게 “마을에서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데 구조대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뉴욕타임스(NYT)는 “주민들이 맨손으로 잔해를 파내며 생존자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10일(현지 시각) 모로코 치차우아주(州)의 한 마을이 강진으로 폐허가 된 모습. 모로코 언론에 따르면 지진으로 인한 사상자의 최대 90%는 산비탈의 벽돌과 석재 집들이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AFP 연합뉴스

지난 10일 오후 찾은 타루단트의 ‘모흐타르 수시’ 중앙 병원 앞은 부상자와 가족 수백명이 뒤엉켜 있었다. 중상을 입은 아들과 손녀의 생사를 애타게 기다리던 아브라힘(61)씨는 기자에게 “제발 희생이 여기서 멈추기를 바랄 뿐”이라고 울먹였다. 11일 오전 10시(현지 시각) 기준 사망자는 2497명, 부상은 2476명으로 늘었다. 부상자 중 1400여 명은 중태로 알려졌다.

모로코 타루단트 시내에서 노숙하는 지진 피해자들. 대부분 주변 산골 마을에서 살던 이들이다. /정철환 특파원

타루단트의 상징인 16세기에 지은 중세 고성(古城)도 성벽 곳곳이 무너지고 갈라졌다. 고성 앞 공원은 이재민들의 임시 천막으로 가득 찼다. 아내와 어머니, 아이 넷 등 여섯 식구를 데리고 노숙하던 후삼(40)씨는 “살림살이가 다 집 잔해에 묻혀 있다”며 “우리 가족 모두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했다. 일부는 지붕이 무너져 내릴까 무서워 노숙을 택했다. 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에 따르면, 이날까지 여진이 25차례 발생했다. 마라케시의 병원에 입원했던 한 산모는 지진 발생 직전 딸아이를 낳고 병원 측 지시로 퇴원했지만, 아틀라스산맥의 고향 마을인 타다르트로 가는 길이 막혀 중간의 아스니 마을 길가에 텐트를 마련하고 노숙 중이라고 BBC가 전했다.

10일 모로코 아미즈미즈 인근 마을에서 구조를 위한 작업이 이뤄지는 가운데 한 여성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고 있다. /AFP 연합뉴스

현재 구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도 상당수로 추정된다. 일부 주민은 외신에 “음식도 빵도 채소도 없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면서 “아무도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모로코인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구호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외국이 보내는 구호의 손길은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 등 때문에 지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타루단트 중앙 병원의 대기실은 임시 구호소로 바뀌어 난민들에게 빵과 생수·분유·기저귀 등 최소한의 필수품을 나눠주고 있었다. 자원봉사자 사미라(28)씨는 기자에게 “살 집이 없어져 무턱대고 이곳에 온 사람이 1000여 명 정도 된다”며 “(모하메드 6세) 국왕이 지원한 천막이 곧 도착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모로코 타루단트 시내의 구호소에서 피해자들을 위한 샌드위치를 만드는 자원봉사자들. /정철환 특파원

한편 지진 피해를 본 마라케시 일부에서는 외국인 가이드 관광이 재개됐다고 NYT가 전했다. 시내 카페와 레스토랑이 문을 열고 관광객들을 받았다. 전기·수도·가스 등 도시 필수 서비스가 유지되고 있는 덕분이지만, 모로코 GDP(국내총생산)의 7%를 차지하는 최대 산업 중 하나인 관광업을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모로코를 방문한 관광객은 1090만명에 달했다. 타루단트의 한 호텔 매니저는 “모로코는 관광 수입 없이는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 나라인데 지진 피해 보도가 많이 나가 타격을 입을까 봐 걱정”이라며 “어제까지만 해도 예약 취소 전화가 많이 왔고 지금도 간간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11일 모로코 국토를 가로지르는 아틀라스산맥 인근의 ‘A3 고속도로’에서 내다본 산 중턱에 거대한 계곡처럼 1km 길이의 균열이 파여 있다. /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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