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코비치가 걸어가는 길마다 테니스 역사가 바뀐다
전인미답 24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
남녀 선수 통틀어 女 전설 코트와 역대 1위
24번째 메이저 테니스 대회 우승을 확정지은 뒤 노바크 조코비치(36·세르비아)는 ‘24′란 숫자를 새긴 하늘색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앞면에는 2020년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난 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 및 자신의 얼굴과 ‘Mamba Forever(맘바 포레버)’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Mamba(독사)’는 브라이언트의 별명이고 24는 브라이언트의 선수 시절 등번호다. 깊은 우정을 나눴던 친구를 기리면서 자신의 업적을 자축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조코비치는 브라이언트보다 아홉 살 어리다.
남자 테니스 세계 1위 조코비치가 11일 미국 뉴욕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US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다닐 메드베데프(27·러시아·3위)를 3시간 17분 만에 세트스코어 3대0(6-3 7-6<7-5> 6-3)으로 완파했다. 2018년 이후 5년 만에 US오픈 정상 복귀다. 개인 통산으론 네 번째 대회 우승.
2년 전 이 대회 결승에서 조코비치를 제압한 메드베데프는 장신(198㎝)을 살린 타점 높은 강서브와 역동적인 파워 스트로크로 조코비치를 압박했다. 하지만 조코비치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탄성을 자아내는 창과 방패를 동시에 선보였다. 3세트에선 마치 메드베데프 운영 방식을 다 간파한 듯 쉽게 받아치는 장면을 자주 보여줬다. 마지막 챔피언십 포인트에서 메드베데프가 친 공이 네트에 걸리자 담담한 표정으로 메드베데프와 덕담을 주고받았다. 이후 그는 주저앉아 만감이 교차한 듯 흐느꼈다. 그러곤 코치진과 가족이 있는 관중석으로 달려가 이들과 부둥켜안았다.
이번 우승으로 그는 24번째 메이저 대회(호주·프랑스·US오픈과 윔블던) 패권을 거머쥐었다. 남자 선수론 최초이며, 남녀 통틀어도 여자 마거릿 코트(81·호주·은퇴) 24회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다만 코트는 우승 절반 이상을 메이저 대회에 프로 선수들 출전이 허용된 1968년 ‘오픈 시대(Open Era)’ 이전에 달성해 진정한 ‘GOAT(the 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는 조코비치란 분석이 많다. 이미 그는 역대 최장 누적 기간(390주) 세계 1위, 통산 상금 수입(1억7530만달러) 1위 등 누구보다 화려한 테니스 이력서를 갖고 있다.
“7~8살 때 세계 최고 테니스 선수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습니다. 이 꿈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 나갔어요. 조국이 전쟁을 겪고 테니스를 하기 위한 비용도 충당하기 쉽지 않았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참 끈질기게 했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한 부모님께 무엇보다 감사드립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제가 테니스 역사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졌어요. 그래도 24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에 대해 말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자주 말하지만, 저는 어릴 적 꿈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조코비치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출신이다. 유년 시절 전쟁(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수시로 이어져 연습장을 찾기 어려운 환경을 견뎌야 했다. 테니스 코트 대신 물을 뺀 수영장이나 방공호 벽에 대고 연습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부모가 사비를 털어 조코비치가 12살이던 1999년 그를 독일로 테니스 유학을 보내면서 재능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조코비치는 작년 US오픈엔 코로나 백신 접종 거부로 출전하지 못했다. 그는 코로나 백신 접종은 개인 자율에 따라야 한다는 신념을 따랐다. 그러나 미국 방역 당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미국 방역 당국이 지난 5월 방역 방침을 완화하면서 이번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는 남다른 각오로 미국에 입성해 재기를 준비했다. US오픈 전초전 대회에선 ‘신성’ 카를로스 알카라스(20·스페인·2위)를 꺾으며 정상에 올라 예열을 마치더니 이번 US오픈에선 3회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무실 세트로 이기며 막강한 실력을 또 보여줬다.
결승에서 무릎을 꿇은 메드베데프는 “노바크, 어떻게 아직도 (은퇴하지 않고) 이 자리에 있는 겁니까. 당신은 대체 언제쯤 속도를 늦출 생각인가요?”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테니스 선수로선 황혼기에 접어든 나이에 띠동갑 이상 아래 선수들을 연거푸 물리치는 전설에 대한 우회적인 찬사였다. 큰 부상이 없는 한 조코비치는 향후 2~3년은 더 건재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내년 열리는 시즌 첫 메이저 대회 호주오픈에서 그는 전인미답 25회 우승 기록을 겨냥하고 있다. 호주오픈은 그가 남자 단식 최다 우승 기록(10회)을 보유한 대회다.
그에게 남은 숙원은 이른바 1년 동안 4대 메이저 대회를 다 휩쓰는 ‘캘린더 그랜드슬램(Calendar Grand Slam).’ 4대 메이저 대회를 커리어 통틀어 한 번씩은 우승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이미 달성했다. 그러나 무적의 상징인 ‘캘린더 슬램’은 아직 기록하지 못했다. 올해를 비롯해 4차례나 1년 메이저 3승을 기록했지만 모두 석권한 적은 아직 없었다. 그 기회가 과연 내년 찾아올까. 지금까지 남자는 2번(돈 버지와 로드 레이버), 여자는 3번(모린 코널리, 마거릿 코트, 슈테피 그라프)만 나온 진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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