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독립성·공정성’ 손 들어준 법원
남영진 청구 기각엔 “KBS 이사장으로 경영 개선 노력 안 해”
법원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권태선 이사장 해임처분 효력을 중단한 배경에는 방송 독립성과 공정성이라는 공익을 위해 법이 명시적으로 이사의 임기를 보장한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순열)는 11일 권 이사장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상대로 낸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 사건 결정문에서 “방문진 이사의 특정 행위를 해임 사유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이사 임기를 법률이 명시적으로 보장한 취지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했다. 방송문화진흥회법이 이사의 결격 사유와 임기만 규정하고 징계 절차나 해임 사유는 별도로 두지 않은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방송문화진흥회법 취지를 고려하면 권 이사장이 낸 해임처분 취소 소송은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임 사유 중 상당 부분은 이사회가 심의·의결을 거쳐 의사 결정을 한 사항이며, 방통위가 제출한 자료들만으로는 방문진 이사회의 의사 결정 절차가 현저히 불합리했다는 점도 소명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해임처분이 유지될 경우 권 이사장에겐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하는 반면 해임처분의 공익상 필요는 불투명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방송문화진흥회법에 따라 이사들은 이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며 “방문진 이사로서 직무 수행은 개인의 전문성, 사회 대표성 내지 가치관, 인격의 발현·신장과도 관련되어 있다고 봐야 하므로, 권 이사장이 직무를 수행하지 못해 입는 손해가 단순히 보수를 받지 못하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그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해임처분 효력 발생 시기, 권 이사장의 남은 임기, 본안 판단에 들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 등에 비춰보면 권 이사장의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도 있다고 봤다. 권 이사장의 임기는 2024년 8월12일까지다.
방통위 측은 해임처분 효력이 정지될 경우 방문진 이사회의 적절한 운영이 보장될 수 없고, 방문진의 공정성과 정당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심각하게 저해될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권 이사장이 입게 될 손해를 감수할 만큼 방통위 측이 주장하는 공익상 필요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원칙적으로 임기를 보장하되 이사로서 직무수행 능력에 대한 근본적 신뢰관계가 상실된 경우와 같이 ‘직무수행에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한해 해임을 허용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방송문화진흥회법이 추구하는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보장이라는 공익에 더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반면 같은 법원 행정2부(재판장 신명희)는 남영진 KBS 전 이사장이 제기한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남 전 이사장이 입게 될 손해를 희생하더라도 공익을 옹호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했다. 권 이사장의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보다 크다고 봤다면, 남 전 이사장에 대해선 정반대로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보다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남 전 이사장의 경우 본안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해임처분으로 인해 훼손된 명예와 사회적 신뢰는 상당 부분 회복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남 전 이사장이 잔여 기간 동안 직무를 수행할 경우 KBS 이사회 심의·의결 과정에 장애가 발생하거나, 심의·의결 결과에 대한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어 공익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속적인 방송 광고 수입 하락과 최근 시행된 수신료 분리징수라는 KBS의 상황이 이 같은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KBS 이사회는 최고의결기관으로서 KBS의 경영실적 악화를 개선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할 것이 요구된다”면서 “남 전 이사장은 2년간 이사로 재직하면서 경영실적 악화 개선을 위한 안건을 심의·의결했다는 자료가 없다”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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