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지옥… 일상 덮친 ‘갑질’ [무너지는 사회, 공동체 회복]
식당·학교·직장서 갑질 ‘만연’...망가진 삶, 극단 선택까지 불러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신분, 지위, 직급, 위치 등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제멋대로 구는 행동, ‘갑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특정할 수 없는 이 갑질이 우리 사회를 점령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빈번한 갑질 속에 삶을 마감하는 이들이 생기는가 하면 누군가의 갑질을 참던 이들은 또 누군가의 갑이 돼 갑질을 일삼기도 한다. 갑질의 시대, 우리 사회를 병들게하는 만연한 갑질의 실체를 확인하고, 고리를 끊을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1. 수원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이학수씨(42·가명)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손님들의 갑질이다. 메뉴를 서비스로 달라고 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음식 가격을 막무가내로 깎아달라고 하는 손님들도 있다.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술에 취한 손님들에게서 돌아온 것은 난동과 폭언이었다. “동네 장사 그렇게 하면 안된다. 가게 망하고 싶냐”, “손님이 해달라는데 안되는 게 어딨냐”, “돈 벌기 싫으냐”는 협박성 말까지 들어야 했다는 이씨는 그럴 때마다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몇만원 벌자고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는지 착잡할 때가 많다”며 “언제까지 손님들의 갑질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걱정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2. 인천에서 3년째 유치원 교사로 근무했던 김소진씨(29·가명·여)는 최근 학부모의 갑질에 시달려 며칠 밤을 꼬박 뜬 눈으로 지새웠다. 의자와 물건 등을 마구잡이로 집어던지는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자 “당신이 뭔데 아이를 혼내냐, 아동학대다”라며 김씨에게 화를 내며 폭언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학부모에게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해 설명했지만 오히려 “우리 애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거냐. 원장에게 말하겠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결국 김씨는 학부모를 진정시키기 위해 사과를 해야 했고, 더 이상의 민원을 참기 어려워 휴직을 한 상태다.
직장 내 괴롭힘,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악성 민원, 손님의 무리한 요구, 무분별한 민원인의 폭언까지 사회 곳곳에서 갑질로 인한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이 같은 갑질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유발해 안타까운 상황까지 불러온다. 최근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견디다 못한 서울 서이초 교사에 이어 용인의 한 고등학교 교사까지 상대적 우위에 있는 학부모의 갑질에 못이겨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동화성세무서 민원팀장은 민원인의 갑질에 쓰러졌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갑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곳곳에서 대응책을 내놓곤 있지만, 여전히 갑질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갑질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권위주의적 문화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나이나 계급, 직위 등에 따른 서열·수진 문화가 강한 탓에 갑질 행위가 동반된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상명하복식 문화, 서열문화가 강한 탓에 나이, 지위, 계층 등으로 상대방을 얕잡아보면서 갑질 행위가 일어나는 것”이라며 “상대방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적 주체로 여기는 의식 개선이 뒷받침돼야 갑질을 근절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김은진 기자 kimej@kyeonggi.com
홍승주 기자 winstat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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