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공포가 된 갑질, 근절 대책은 미비 [무너지는 사회, 공동체 회복]
10명 중 6명 “직장 내 갑질 경험”
인천도 해마다 폭증… 폭언 최다
갑질은 육체적·언어 폭력은 물론 괴롭히는 환경을 조장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행위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갑질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했는지는 여러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1일 경기도와 인천시 등에 따르면 최근 4년(2019~2022년)간 경기도청과 각 시·군청 민원실에 접수된 악성 민원은 총 2만3천376건으로 연평균 5천844건의 악성민원이 접수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갑질과 악성민원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며 각종 대책이 등장한 올해에도 6월까지 벌써 1천757건의 악성민원이 접수된 것으로 파악됐다. 유형별로는 폭언이 1천211건(68.9%)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협박 474건, 소란 21건, 성희롱 12건, 폭행 10건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 경기도가 지난해 도청 직원 3천52명을 대상으로 '경기도청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6명이 직장 내 갑질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중 25.8%가 언어적 괴롭힘을 경험했으며 업무적 괴롭힘(21.9%)과 업무 외 괴롭힘(14%)이 뒤를 이었다.
인천의 경우 악성민원은 해마다 폭증하고 있다. 2020년 97건에 불과했던 악성민원 건수는 2021년 333건, 2022년 1천277건으로 12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악성민원의 대부분은 폭언으로 1천241건을 차지했으며 협박 13건, 폭행 2건, 성희롱 1건 등으로 나타났다.
교사들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서울 서이초 신규 교사 사망 사건 이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2일까지 전국 교사를 대상으로 교권침해 실태 조사를 한 결과 각종 갑질 관련 사례가 1만1천628건이나 접수됐다. 응답자의 70% 이상(8천344건)은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또한 아동학대로 신고 협박이나 악성 민원을 받은 경우가 6천720건(57.8%)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어 학부모와 학생으로부터 폭언 및 욕설이 2천304건(19.8%), 업무·수업방해가 1천731건(14.9%), 폭행 733건(6.2%), 성희롱·성추행 140건(1.2%) 순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계속되는 갑질에 행정안전부는 지난 4월 민원처리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악성 민원인의 증거 수집을 위한 휴대용 영상 음성 기록 장비를 운영할 수 있게 했으며 퇴거 및 분리조치를 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전화 등 비대면 민원인 갑질은 더욱 관리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다.
경기도 또한 올해 갑질 근절을 위한 사전 예방 교육 강화, 갑질 근절 캠페인 추진, 신고 및 제보 민원창구 일원화, 피해자 보호 강화 등의 대책을 마련했지만, 관련 대책이 시민이 아닌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악성 민원 관련 홍보나 캠페인은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매뉴얼 마련 등 갑질에 대한 대책을 보안 중”이라고 전했다.
전문가 제언 "갑질은 낮은 자존감, 잘못된 분노 표출 방식"
전문가들은 갑질의 원인이 낮은 자존감, 잘못된 분노 표출 방식이라고 지적하면서 사회 전반적인 변화만이 갑질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갑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규정하고, 이러한 행위가 잘못됐다는 점을 알리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갑질은 또 다른 갑질을 불러올 수 있다”며 “누군가의 갑질 행위에 직접적으로 항의하지 못할 경우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에게 또 갑질을 하게 되는 대물림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 교수는 갑질 행위에 대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갑질에 대한 법적인 처벌은 개인의 행동을 제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처벌은 불가능하다”며 “분노가 악성 민원과 같이 왜곡된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 잘못된 행위라는 인식을 할 수 있도록 해 줄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극단적으로 치닫는 분위기, 악성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것처럼 갑질 행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함께 이 같은 행동이 잘못됐다고 알려주는 팻말을 설치하는 등 잘못됐다는 인식을 꾸준히 심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도한 경쟁에서 갑질이 시작된다고 분석했다. 구 교수는 “갑질은 과도한 경쟁에서 비롯된다. 경쟁이 과열돼 다들 치열한 것을 넘어 화가 나 있는 ‘앵그리 사회’가 됐다”며 “성공에 대한 집착과 욕구가 강해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마음이 갑질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 교수는 “갑질 행위를 하면서 흔히 ‘고소하겠다’ 등의 말을 쉽게 한다. 이는 갑질이 문제인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사회 전반적으로 갑질 행위가 잘못됐다는 인식이 필요하며 이에 따른 제도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렇기 위해선 갑질의 정의를 정확하게 세운 뒤 갑질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며 “또 갑질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에겐 행위자로부터 즉각적인 분리와 트라우마 치료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은진 기자 kimej@kyeonggi.com
홍승주 기자 winstat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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