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마을 살림살이를 지켜온 잣나무

기자 2023. 9. 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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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군위 대율리 잣나무

밤나무가 많아 ‘한밤마을’로 불리는 전통 마을이 있다. 950년 무렵 홍란(洪鸞)이란 선비가 마을을 일으킨 대구 군위군 대율리다. 마을 어귀에는 소나무들이 무리지어 자라는 ‘한밤 솔밭’이 있는데, 그 안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했던 홍천뢰(洪天賚·1564~1615)와 홍경승(洪慶承·1567~?)의 공적을 기리는 기적비가 있다. 오랜 역사와 사람들의 기품이 담긴 마을이란 증거다.

전통 가옥들 사이로 정겹게 쌓은 돌담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돌아들면 길 끝에서 잣나무 한 쌍이 우뚝 서 있는 남천고택(南川古宅)에 닿게 된다. 남천고택을 상징하는 건 두 그루의 ‘군위 대율리 잣나무’다. 고택 담장에 서 있는 이 나무는 나무 나이 250년, 높이 10m, 줄기 둘레 2m에 이른다. 잣나무가 비교적 수명이 짧은 편임을 감안하면 매우 크고 오래된 나무다.

남천고택은 이 마을의 살림집 가운데 가장 큰 집이다. 부림홍씨 10세손인 홍우태(洪寓泰)가 250년 전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건축주 홍우태는 집을 다 지은 뒤에 한 쌍의 잣나무를 담장 곁에 심고 집의 이름을 쌍백당(雙柏堂)으로 정했다. ‘한 쌍의 잣나무가 자랑스러운 집’이라는 뜻이다.

쌍백당의 상징인 잣나무가 있는 담장 밖으로는 한밤마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군위 대율리 대청(軍威 大栗里 大廳)’이 있다. 이는 조선 후기에 중창된 맞배지붕 형태의 누정으로, 원래 절의 종각이 있었던 자리에 건립한 학사(學舍) 건물이다. 쌍백당과 함께 이 대청은 사람들이 살림살이를 의논하기 위해 모으는 자리로 쓰여왔다. 사람들은 대청마루에 앉아 늘 푸른 잣나무의 싱그러움을 바라보며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해 왔다.

‘군위 대율리 잣나무’는 선비의 살림집 당호가 됐을 뿐 아니라, 사람살이를 오랫동안 지켜온 상징이다. 먹을거리로 유용할 뿐 아니라,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온 공생 대상인 생명체임을 깨닫게 하는 특별한 나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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