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칼럼] 두 번의 실패와 때아닌 ‘극우 늦바람’
카오스 이론·복잡성 이론·나비효과·만유인력 법칙 등처럼 자연현상이 규칙성에 의해 움직인다는 근대과학관과 달리, 이 첨단 이론들은 법칙으로 예측할 수 없는 우연한 요인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역사와 사회현상도 마찬가지다. 최근 이론들은 구조적 요인보다는 우발적 요인과 행위자의 선택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한국정치가 발전할 수 있는 두 번의 중요한 기회, 구체적으로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보수 내지 ‘수구 세력’이 ‘글로벌 스탠더드’의 ‘합리적 보수’로 진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 실패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때아닌, ‘무서운 극우 늦바람’이다.
첫 기회는 촛불항쟁과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다. 박근혜 탄핵은 정의당, 더불어민주당, 안철수의 국민의당뿐만 아니라 유승민의 바른정당, 새누리당 의원 등 일부 보수세력이 지지해 가능했다. 민주당이 촛불연정을 통해 유승민 등 ‘합리적 보수’ 세력에 힘을 실어줬다면 보수가 재편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무능하면서도 탐욕에 빠져 ‘승자 독식주의’를 선택했고,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두 번째 기회는 윤석열이다. 윤 대통령은 정치에 나선 2년 전만 해도 지금 같은 ‘강경 보수’가 아니라 ‘진보적 자유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는 정치에 나서며 “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 기회가 없다면 자유는 공허한 것”이고 “승자 독식은 절대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며 새 정권이 보수를 넘어 중도와 ‘이탈한 진보’까지 아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보수세력은 탄핵으로 지리멸렬해 있었던 만큼 이 프로젝트가 성공했다면 보수의 재편이 가능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가 윤 대통령은 이 노선을 상징하는 김종인과 결별했다. 이후 그가 의존한 것은 과거 인연에 의한 ‘윤핵관’이란 낡은 보수세력이었고, 정치초년생인 그를 둘러싸고 의식화시킨 것이 ‘뉴라이트’라는 강경 보수세력이었다. 특히 강한 성격, 오랜 검사생활에서 익힌 유무죄의 이분법적 사고, ‘늦바람이 더 무섭다’는 특징 등이 겹쳐져 그의 극우적 언술은 보수세력, 보수언론까지도 지나치다고 비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 대통령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리영희 선생의 말을 인용하며 “날아가는 방향이 같아야 날 수 있는 것이지 오른쪽 날개는 앞으로 가려고 그러고 왼쪽 날개는 뒤로 가려고 그런다면 그 새는 날 수 없고 떨어지게 돼 있”고 “시대착오적 투쟁과 혁명과 사기적 이념에 휩쓸리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며 우리 한쪽 날개가 될 수 없다”고 일갈했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을 ‘왼쪽 날개’라고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잘못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보다는 왼쪽에 있기는 하지만 또 다른 ‘오른쪽 날개’에 불과하다.
리영희 선생이 통탄했듯이, 한국정치는 아직 제대로 된 왼쪽 날개를 갖지 못했다.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미국식 리버럴, 즉 ‘자유민주주의’ 세력인 민주당을 사실상 공산전체주의, 그 맹종, 추종세력, 반국가세력인 것처럼 비판하는 것은 매카시즘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비판할 수 있는 주된 근거는 대북정책인데, 햇볕정책 때문에 민주당이 이 같은 세력이라면 소련에 대해 유화정책을 폈던 처칠과 루스벨트, 케네디, 나아가 북한에 유화책을 폈던 트럼프도 공산주의 추종세력이란 말에 다름 아니다. 히틀러의 눈에는 처칠과 루스벨트가 공산주의자로 보였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공산주의자로 보인다면 이는 그의 관점이 히틀러를 닮아가고 있다는 방증일 뿐이다.
진짜 문제는 윤 대통령이 날아가려는 방향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보다 더 많은 국민들이 다른 방향으로 날아야 한다고 주장한 민주당과 정의당 후보를 찍었다. 정부가 날아가는 방향은 국민에 의해 검증받아야 하며, “내가 날아가는 방향이 무조건 옳다”는 독선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하는 위험이다. 히틀러도, 스탈린도 자신이 나는 방향이 옳다는 확신에 빠져 국민들과 세계를 비극으로 몰고 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극우 행보를 통해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 이에 따른 레임덕을 자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그가 ‘민주당 비밀당원’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든다. 윤 대통령의 말을 이용하자면, “시대착오적 매카시즘 투쟁과 극우 궁정 쿠데타, 사기적 극우 이념에 휩쓸리는 것은 제대로 된 보수,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며 우리의 한쪽 날개가 될 수 없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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