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서평연대 열여덟 번째[출판 숏평]

기자 2023. 9. 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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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성별이 잘못되었다!(코니시 마후유 지음 / 김정규 옮

김 / 길찾기)

타고난 성별이 잘못되었다



미디어가 비추는 ‘트랜스젠더’ 이야기들은 미친 듯이 뜨겁거나 한없이 차갑다. 가십이 돼 오르내리거나 혐오의 한복판에서 손가락질을 받으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갑론을박의 열띤 토론장에서 시끌벅적하거나 값싼 동정과 억지 감동으로 쥐어짜인다. 그러는 가운데 당사자들의 진짜 이야기는 조금씩 잊힌다.

저자인 코니시 마후유 또한 22세가 돼서야 처음으로, 그것도 하던 게임에서 우연히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처음 만났다. 그전까지는 자신이 경험한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거나 배우지 못했다. 성전환 수술을 결심하는 것으로 정체성 고민은 끝나는 줄 알았는데, 낯선 타국에서 목숨을 건 수술대에 올라서야 이런 고민을 하게 됐다. “아무리 노력해도 ‘여자’가 되는 게 아니라 ‘여자 같은 무언가’가 되는 데 불과한 것이 아닐까?” 수술 부작용이나 앞으로의 사회활동 등 수술대를 벗어나서도 무섭도록 현실적인 고민들이 한가득 쏟아지며,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만화를 만들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트랜스젠더 작가의 논픽션 에세이 만화 ‘타고난 성별이 잘못되었다!’이다.

만화적 매력을 따지기 어려울 만큼 재미요소는 덜한 논픽션 만화다. 자극적인 콘텐츠들 가운데 몇 안 되는, 미적지근하고 평범한 이야기. 그러나 이러한 미적지근함이 아쉬움보다는 반가움으로, 기쁨으로 다가온다. 미적지근한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더욱더 많아지기를 바라본다. (박소진 / 문화평론가, 웹소설작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박소진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김청연 지음 / 김가지(김예지) 그림 / 동녘)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틀딱, 가사를 절다, 명품 몸매, 흑형, 다문화, 지잡대, 사내놈, 주인아줌마, 벙어리장갑….”

이 중 자주 했던 말, 종종 듣는 말이 적지 않을 듯하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미묘한 차별을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라고 부른다. 미세하지만 공격성을 띠고 있는 차별 언어나 행동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말로는 ‘먼지 차별’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먼지 차별’ 표현들을 나이, 장애·인종, 경제 조건·지역, 학력·학벌·직업, 성별 등을 기준 삼아 분야별로 구분해 그중 열아홉 개 말을 골라 담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무심코 한 말이 다른 이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세상엔 편견과 차별을 담은 말들이 우리 생각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쓰는 말이 곧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준다는 것이다. 혐오의 언어를 지양하는 건 결국 상대를 배려하는 일이다. 자, 이제, 책을 펴고, 언어 감수성을 키워 보기를…. (김미향 / 출판평론가, 콘텐츠 미디어 랩 에디튜드 대표)

김미향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이충녕 지음 / 도마뱀출판사)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철학이라는 학문이 접근하기가 꽤 어려운 학문이긴 하지만, ‘교양인으로서 갖춰야 할 정도의, 혹은 자신의 삶을 조금 더 풍성하게 하는 정도의 철학적 지식은 누구나 습득할 수 있다’면서, 저자는 용기를 줍니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기는 어렵지만, 식당에서 주문할 정도로는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지 않냐는 거예요. 이처럼 교양 차원의 철학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며,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줘요. 수학이라는 학문은 어렵지만, 수학적 사고는 논리적인 판단을 하는 데 기초가 되는 것처럼,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교양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거예요.

‘하이든과 굴 중에 어떤 삶이 더 행복할까?’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환경보호 활동가가 매연을 배출하면 비난받아야 할까?’….

저자가 던지는 이 흥미진진한 질문들을 만나게 되면 책장을 쉽게 덮을 수가 없어요. 대답이 너무나 궁금해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자의 이야기를 정신없이 쫓아가다 보면, 정답이나 해답이 아니라, 또 다른 질문들만 잔뜩 안게 됩니다. 이것은 철학적 사유에 빠져든 자신이 만든 질문이에요. 그러니까 이 책은 대답보다는 질문을 만드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김성신 / 출판평론가)

김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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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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