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대령 같은 분을 우리 아이들이 만났다면”...‘김용원 사퇴’ 외친 군사망 유가족들
사퇴 요구하다 전원위 방청석에서 퇴장당해
군 사망사고 피해 유가족들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긴급구제 결정을 기각한 김용원 인권위 상임위원의 사퇴를 요구하다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제13차 전원위원회 방청석에서 11일 퇴장당했다.
2014년 선임병의 가혹행위로 사망한 고 윤승주 일병과 고 이예람 중사 등의 유가족 5명은 이날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4층에서 열린 2023년 제13차 전원위원회를 방청했다. 전원위 안건은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 조사규제규칙 제32조(합의)의 종결방식 처리 방안 보고의 건’ 등 보고 안건 2건과 의결 안건 2건이었다.
유가족들은 전원위 중간중간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상임위원), 원민경·한석훈 군인권보호위원의 사퇴를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었다. A4용지에 프린트된 손팻말에는 “군인권 외면하며 박정훈 대령 긴급구제 기각시킨 김용원 군인권보호관, 원민경, 한석훈 군인권보호위원 사퇴하라!”고 적혔다.
유가족들은 구호를 외치지 않고 회의 도중 일어나서 손팻말을 들어올리는 식으로 의사를 표했다. 회의 초반 피케팅이 5분 넘게 지속되자 송두환 인권위원장이 제지에 나서기도 했다. 송 위원장은 “방청인들께서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진 않으나 일종의 손팻말을 들고 계시다. 회의 진행을 노골적, 적극적 방해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위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로의 의견을 기탄없이 밝히는 데는 부정적인 영향 끼칠 수 있으니 중지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손팻말을 내리고 자리에 착석했다. 이들은 김 상임위원과 이충상 인권위 상임위원 등이 발언·질의를 할 때마다 손팻말을 조용히 들어올렸다.
그러다 김 상임위원이 의사진행발언의 안건 관련성을 두고 송 위원장과 설전을 벌이자 오후 4시28분쯤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씨가 “군인권보호관 역할이나 똑바로 하라”고 외쳤다. 다른 유가족들도 “박정훈 대령 긴급구제를 왜 기각했냐” “군 보호하기 위한 보호관이 밥그릇 관리만 하고 있다”고 동조했다. 일부 위원들은 “퇴장시키세요!”라며 맞받아쳤다. 1분쯤 되는 소란은 송 위원장이 유가족들에게 퇴장을 명하며 마무리됐다.
유가족들은 퇴장한 뒤 기자들과 만나 “채 상병과 박정훈 대령 사건을 바라보며 유족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도 인권위 전원위를 계속 방청하겠다고 했다.
고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 박미숙씨는 “박정훈 대령 같은 수사관을 우리 아이들이 만났다면, 군에서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그랬다면 우리 정기도 아침에 직장 간다며 집을 나설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이어 “이번 사건을 통해 생중계하듯 국방부의 진실을 지켜본 이상 우리는 물러날 수가 없다.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고 이예람 중사의 어머니 박순정씨는 “군인권을 보호해야 할 곳에서 정작 구제신청을 기각시켰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본다”며 “박 대령 복직을 위해 탄원서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관심가져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군인권보호위는 군인권센터 등이 항명 혐의 수사 및 징계를 중지해달라며 낸 긴급구제 진정을 지난달 29일 기각했다. 박 대령이 견책 징계처분을 받은 터라 긴급구제의 실익이 없다는 이유였다. 긴급구제 신청 접수부터 군인권보호위의 기각 결정까지 15일의 시간이 걸리는 동안 심의는 한 차례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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