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영아시신' 30대 친모…또 임신 '15주차'
자녀 살해 직전 남편과 성관계 암시하는 대화 이어가기도
(수원=뉴스1) 배수아 기자 =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2구'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30대 친모 고모씨가 임신 15주차인 사실이 법정에서 드러났다.
수원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황인성)는 11일 살인 및 시체은닉 혐의 등으로 기소된 고씨의 두 번째 재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고씨의 남편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앞서 검찰측과 변호인 모두 고씨의 범행 목적과 동기 등을 살피기 위해 고씨의 남편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고씨의 남편은 영아살해방조 혐의가 적용돼 피의자로 전환됐지만 '무혐의' 처분으로 불송치됐다.
고씨는 재판 내내 고개를 푹 떨구다가 남아있는 세 자녀 이야기가 나올 땐 눈물을 많이 흘리기도 했다. 남편 또한 진술 중 때때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고씨는 이미 남편 사이에 12살 딸, 10살 아들, 8살 딸 등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이후 2017년경 남편과 합의 하에 한 명의 아이를 낙태했다. 2018년 11월에는 군포의 한 병원에서, 2019년 11월에는 수원의 한 병원에서 각각 여아와 남아를 출산한 후 목졸라 살해해 수원 소재 자신의 아파트 냉장고에 시신일 보관해 온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재판에서 남편은 2018년 첫 번째 살해한 아이에 대해서는 임신과 출산을 몰랐다는 입장이다. 이어 2019년 두 번째 살해한 아이에 대해서는 임신한 건 알았지만 아내가 출산하러 간 것을 '낙태'하러 간 것으로 알았다고 주장했다.
남편은 증언하는 동안 '제가 무능해서'라는 말을 몇 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검찰측은 남편에게 "증인은 수사기관에 2017년쯤 피고인이 아이들을 양육하는 걸 힘들어해 낙태를 결정했다고 말했는데 맞냐"고 물었고 남편은 "제가 무능한데 아내 혼자 양육하다시피 하니까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검찰은 "피고인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살인했다고 진술했는데, 아내가 임신 후 신체적 심리적으로 불안해보였거나 달랐던 모습이 있냐"고 물었다. 이에 남편은 "경찰 조사 받으면서 느낀 거지만 제가 겪어서 기억이 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할만큼 이기적인 사람이라 배우자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고씨가 살해한 영아들의 출산 직후와 범행 직후 남편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검찰이 공개한 카카오톡에 따르면 2018년 11월3일, 고씨는 첫 번째 살해한 아이를 출산한 지 4시간 후 남편과 "저녁을 먹었냐"는 등 평상시처럼 대화를 나눴다. 이어 같은해 11월4일 범행 직전 남편과 성관계를 암시하는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살해하기 6분 전에는 남편에게 "과자 먹으면서 보스베이비 시즌 보고 있어 쉬는 날 놀아줘"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검찰측은 남편에게 "비교적 일상적인 대화로 보이는데 불안해 보이거나 말투가 달랐다고 느낀 적 있냐"고 물었고 남편은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검찰은 남편에게 아내가 살해한 두번째 아이를 출산하러 간 날 카카오톡 대화 내용도 제시하며 "'아내가 둘째 때도 못한 자연분만을 했네'라고 말했는데 상식적으로 낙태한 것을 자연분만이라는 말을 쓰지 않지 않냐"고 지적했다. 그러자 남편은 "죄송한데 상식적인 것에 대해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몰랐다"고 말했다.
검찰이 남편에게 "증인이 생각하는 낙태가 뭐냐"고 추궁하자 남편은 "아이를 죽인 뒤 아이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서 고씨 측 변호인은 고씨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살해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고씨측 변호인이 남편에게 "어떤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고 하자 남편은 "가스공급이 끊어진 적도 있고 단전 안내도 수차례 받았고 카드빚 때문에 압류될 거라는 독촉장도 받았다"고 했다.
이어 변호인이 "피고인이 지금 임신 15주 상태라는 거 아냐"고 하자 "접견해서 들었다"고 답했다.
변호인은 또 "아내가 냉동칸에 수년간 시신을 보관해 이슈가 됐다"고 하자 남편은 "기본적으로 (스스로) 밥을 차려먹을 생각을 안 하는데 (제가) 주방 들어가서 냉장고 문을 열거나 찬장을 열면 배우자가 나와서 항상 해줘서 냉동실 안까지 살펴볼 이유가 없었다"고 답했다.
지금 심정이 어떻냐는 질문에는 "배우자에게 보이지 않는 가해를 지속적으로 해와 배우자가 아이를 살해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보낸 아이들에게는 목숨으로라도 사죄하고 싶지만 당장 엄마없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그럴수는 없는 상황이라 자책할 수밖에 없다"며 울먹였다.
고씨의 변호인은 증인석에 선 고씨의 남편을 질책하기도 했다. 고씨측 변호인은 "세 번이나 제왕절개한 피고인에게 '브이백'은 위험하다고 산부인과에서도 말리는데도 피고인이 남편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돈이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브이백을 했다는 게 변호인으로서 가슴이 아팠다"며 "이렇게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데 어떻게 남편되는 사람이 무책임하게 피임도 신경쓰지 않았나 싶어 변호인으로서 화가 났다. 책임감은 느끼냐"고 질타했다. 그러자 남편은 "배우자는 제가 똑바로 행동했다면 (아이들을 살해하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다음 기일은 오는 10월12일 열린다.
검찰측은 다음 기일에 정신과 전문의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고씨의 범행 당시 카카오톡 대화 내용 등을 토대로 정신과 전문의에게 고씨의 정신 감정 상태에 대한 신문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고씨의 해당 범행은 감사원이 보건복지부를 감사하면서 드러났다.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사례에서 적발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수원시에 이를 통보했고 수원시가 먼저 조사에 나섰으나 고씨가 조사에 응하지 않아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하게 됐다.
sualuv@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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