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주역 영입하는 한화에어로… 2조 입찰 앞두고 물밑작업?
항우연 핵심 연구자 대거 영입
K-스페이스산업 선점 논란에
한화 "특정사업 염두 채용 아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발사체 핵심 인력 대거 영입 추진을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민간 주도의 뉴 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우주분야 인력 선순환구조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의견과, 차세대발사체사업 체계종합기업 선정 입찰을 앞둔 시점에서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항우연의 발사체 인력이 대거 한화로 옮겨갈 것이라는 소문이 퍼진 가운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8일 발사체 전문가인 조광래 전 항우연 원장을 영입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조 원장은 항우연의 발사체 역사와 실무를 꿰고 있는 인물로, 항우연 내에 '조광래 사단'이 있다고 할 정도로 아직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주발사체 사업을 본격적으로 키우려면 전문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한화가 조 원장 영입을 결정한 데도 그를 따르는 발사체 인력이 두텁다는 점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우주발사체는 국가간 인력이 극히 힘든 분야로, 각 국가가 자체적으로 키우지 않으면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내외에서 항우연 외에는 인력을 확보할 곳이 없다는 의미다. 업계에 따르면 한화는 지난해부터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항우연 연구원들과 접촉해 '기존 연봉의 두배 더하기 알파'를 처우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는 2025년 예정된 누리호 4차 발사부터 사업을 주도해야 하는 만큼 내부 조직과 인력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은 지난 7월부터 본격적인 우주사업을 위해 10개 분야 인력을 상시 채용하고 있다. 신입은 채용을 마쳤고 경력 채용은 현재 진행 중이다.
국가 주도로 하던 우주발사체 개발·발사를 민간 주도로 바꾼 미국도 NASA(미 항공우주국)의 발사체 인력이 민간기업인 스페이스X로 대거 이직한 사례가 있다. NASA는 기술이전, 연구개발 지원 등을 통해 스페이스X가 우주발사체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집중 지원했다. 올 5월에도 NASA 출신 인력이 스페이스X로 이직한 바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우주사업을 하기 위해 우주 인재를 적극 채용하고 있다. 특정 집단을 염두에 두고 채용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조광래 원장 영입도 특정 사업을 염두에 둔 영입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우주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화의 채용 움직임이 이르면 이달 시작되는 총 2조원 규모의 차세대발사체사업 체계종합기업 선정 입찰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과기정통부와 항우연은 입찰 사전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다음달 중 대상 기업을 선정할 예정이다. 체계종합기업 선정 입찰은 항우연의 입김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누리호 체계종합기업 선정은 항우연이 맡아서 진행했다. 한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12월 한국형발사체(누리호) 체계종합기업에 선정된 후 지난 5월 누리호 3차 발사에 참여해 발사체 실전 발사 경험을 쌓았다. 또 누리호 고도화 사업을 통해 발사체 설계·제작·발사 기술을 항우연으로부터 이전받아 발사체 개발 역량을 높이고 있다.
올해부터 2032년까지 10년 간 총 2조원의 원의 국비가 투입되는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은 항우연 주도로 개발해 민간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누리호와 달리, 사업 착수 때부터 체계종합기업을 선정해 공동 설계를 한다. 선정된 체계종합기업은 차세대발사체 설계·제작·조립·시험·발사 등 발사체 개발·운용 전 단계에 참여해 독자적인 발사체 개발 능력을 확보할 기회를 갖게 된다.
우주발사체를 미래 먹거리로 정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선 놓칠 수 없는 사업이다. 한국형발사체에 이어 차세대발사체 체계종합기업까지 거머쥐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국판 스페이스X'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항우연 발사체 연구자 대거 영입 시도가 이 입찰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계산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화는 이번 입찰에서 한국형발사체 체계종합기업 선정을 두고 경합을 벌였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또 한번 경쟁을 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와 관련, 입찰의 공정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항우연이 아닌 조달청에 입찰을 맡기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6000억원 규모에 달했던 누리호 체계종합기업 선정 입찰에 비해 차세대발사체 체계종합기업 선정 입찰 규모는 2조원 정도로 훨씬 크다. 그런 만큼 항우연이 단독으로 입찰을 진행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항우연 관계자는 "기관 자체적으로 차세대발사체 체계종합기업 입찰을 진행할 지, 제3자인 조달청에 맡길 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며 "공정한 심사를 위해 어떤 방식이 적절한 지 여부를 계속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김기석 과기정통부 우주기술과장은 "항우연 인력의 민간 기업 이직은 공직자윤리법 등 법령과 항우연 자체 규정, 절차 등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과기정통부가 뭐라고 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은 올해부터 2032년까지 10년간 총 2조132억원을 투입해 누리호보다 발사 성능이 대폭 향상된 발사체를 개발하는 것으로, 2032년 달 착륙선도 여기에 실릴 예정이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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