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윤 정부 ‘역사 쿠데타’]
[왜냐면] 나임윤경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그대들이 훈련하고 공부하는 그곳에서 황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선배 군인이자 교수까지도 거침없이 그 일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숨죽이듯 침묵해야 하는 그대들의 심경을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비정상적 판단이라도 ‘상명하복’이 아니면 ‘항명수괴’라는 어불성설이 지배하는 군의 꽉 막힌 상황도 참담합니다. 위에서 하라는 것이면 무지와 거짓까지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이른바 ‘군인정신’은 아니길 바라봅니다. 명석하고 활기 넘칠 뿐 아니라 각별한 애국심으로 모인 그대들이 갈고 닦을 군인정신은 진실에 두 눈 끝까지 뜨고, 다만 당장의 자리와 출세가 아니라, 역사와 함께 담담히 흐를 시대정신을 이해하고, 그것과 호흡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몇 년 뒤면 지도자가 돼 수많은 사병 앞에 설 그대는 그 누구도 아닌 대한민국의 육군사관생도이기에 그렇습니다.
현대사 최대 비극 중 하나인 동족상잔의 전쟁 이후 남한 거주 한국인은 각자의 경제적 능력에 버거운 천문학적 수치의 국방비를 감당해 왔습니다. 또한 정치 엘리트 등 ‘신의 아들’이 갖가지 ‘기술’로 빠져나간 징집을 보통 시민의 아들은 예외 없이 감당하며 ‘피 같은’ 청춘의 시간을 썼습니다. 그러나 최근 해병대 상병의 죽음과 잊힐 만하면 불거져 나오는 군내 성·폭력 사건이 보여주듯, 군은 보통 시민의 딸과 아들을 귀히 여기지도, 최소한이나마 보살피지도 않았습니다. 국민이 더 나은 삶을 포기하며 지불한 국방비 위에 세워졌음에도, 대한민국 군은 쿠데타, 군사독재, 군납비리, 군 성·폭력 등의 단어가 익숙할 만큼 ‘국민 배신’의 역사를 지속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군 당국은 자신을 떠받치는 국민을 독재로, 학살로, 각종 비리로, 폭력으로 배신해 온 것으로도 모자라, 이번에는 ‘철 지난’ 이념으로, 구국 영웅에 대한 왜곡과 폄훼로 배신하려 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육군사관생도 여러분, 그대들 생도로서의 현재와 군 지도자로서의 미래는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들의 뜻을 계승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평화 통일에 대한 염원의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가슴에 큰 별 주렁주렁 매단 이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국민 향한 독재, 학살, 폭력, 그리고 심지어 ‘내 새끼’처럼 귀하다는 부하들을 가벼이 여긴 것에 대해 군 스스로가 치열하게 반성하고 성찰할 때만 가능해집니다. 안타깝게도 위계 상 그대들의 맨 위에 있는 이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그대들에게 군인으로서, 스승으로서 모범이 돼야 할 그 역시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에 대한 모욕적 이전 문제로 시끄러운 이때, 그 흉상을 보며 군인다운 처신에 대해,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몸 바치고도 이국땅에서 스러져 간 한 영웅의 운명에 대해 생각했을, 그리고 때론 두려워하고, 자주 결연해졌을 그대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려 봅니다. 상상 속 그 누구도 지금 그대들 향해 감히 호령하는 자들에겐 과분하기만 합니다.
경험한 적 없기에 한국 사회는 ‘군인정신’이란 걸 알지 못합니다. 다만 사랑하는 부하를 죽음으로 이끈 군의 무능과 무책임, 그리고 조직적이고 습관적인 은폐 시도에 저항하며 고군분투하는 해병대 전 수사단장의 소신 있는 발언과 의연함, 그리고 그의 ‘빨간 셔츠’ 입은 동료 군인들의 모습에서 미지의 군인정신을 상상할 뿐입니다. 그대들도 이 선배들로부터 군인정신의 어떤 면모를 배우고 다질 수 있으면 합니다. 이것이 큰 별 가슴에 달고 국민에게 총부리 겨눴던 것도 모자라 날조된 역사 앞에 무릎 꿇은 ‘군인 아닌 군인’을 넘어 그대 사관생도들이 참 군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입니다.
부디 흉상의 영웅들과 그분들의 뜻을 받든 국민의 자부심으로 성장해주길 바랍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군이 존재하는 이유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그대들이 매일 숨 쉬고, 공부하고, 훈련하는 거기 그곳에 처음 모셨던 그대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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