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사진 속 이슈人] 칠레 시민들 쿠데타 50주년 맞아 대대적 진상규명 시위

이규화 2023. 9. 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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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수도 산티아고 시민들이 10일(현지시간) 군부 쿠데타 발발 50주년을 앞두고 군부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EPA 연합뉴스

1973년 9월 11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군부 실력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이끄는 쿠데타 세력이 대통령궁을 공격했습니다. 전조는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 3년 전 대통령에 당선된 사회주의 계열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쿠데타 세력에 대항해 권총을 들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대세가 기울자 당일 AK47 총으로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후 1990년까지 17년간 칠레는 군부독재정권의 압제 아래 놓였습니다. 피노체트 정권에서 정치적 이유로 국가폭력에 의해 살해된 인원만 공식적으로 3197명에 이릅니다. 그러나 칠레 언론은 국내서만 4만 명 이상이 살인 또는 실종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희생자 대부분이 어디서 어떻게 누구의 의해 살인, 실종됐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1990년 민주화 이후 칠레에서도 과거사 진상규명이 시작됐으나 2023년 현재까지 미궁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쿠데타 발발 50주년을 앞두고 10일(현지시간) 산티아고에서는 과거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칠레 일간지 엘메르쿠리오와 라테르세라에 따르면 산티아고에서는 이날 군부 정권 희생자를 추모하며 레콜레타 묘지를 돌아보는 탐방 순례가 진행됐습니다. 묘지에는 살바도르 아옌데(1908∼1973) 전 대통령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날 오전 10시께부터 시작된 순례는 경찰의 보호 아래 대체로 평화롭게 이뤄졌으나, 일부 구간에서는 폭력 시위대의 공격이 있었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습니다.

소셜미디어에는 두건을 쓴 이들이 경찰을 향해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바리케이드를 파손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공유됐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인 라모네다 주변에서도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이 보고됐습니다. 유리 구조물을 부수는 시위대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경찰관 3명이 부상하고 경찰견 1마리도 다쳤습니다. 레콜레타수르 지역 경찰서 앞에는 인화성 물질이 투척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앞서 이날 자정께에는 알베르토 반클라베렌 외교부 장관을 향한 테러 시도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50주년 기념식 참석차 칠레를 찾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을 위해 공항에서 의전 행사를 주관한 뒤 귀가하던 중 2명으로부터 총격을 받을 뻔했다는 겁니다.

카롤리나 토하 칠레 내무·공공안전부 장관은 "11일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산발적인 시위가 예상된다"며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쿠데타를 기억하고 '유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취지의 가브리엘 보리치 정부 공식 50주년 행사는 11일 오전 라모네다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는 아옌데 전 대통령 가족 망명지인 멕시코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을 비롯해 구스타보 페트로(콜롬비아)·알베르토 페르난데스(아르헨티나)·루이스 라카예 포우(우루과이) 등 중남미 국가 정상들도 참석한다고 합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시민들이 이렇게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것은 일차적으로 아직도 억울하게 죽은 가족이나 친척들이 모두 신원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작년에 집권한 좌파의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에 대한 불만의 토로로 볼 수 있습니다. 보리치 대통령은 쿠데타 50주년을 앞두고 "칠레 국민에 남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실종자 찾기에 국가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는 또 "인권은 무제한적으로 존중해야 하고 민주주의는 보호해야 한다"며 "진상을 밝히는 데 시간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50년 전 칠레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쿠데타의 배후가 되었던 미국은 미주기구(OAS) 파견 프란시스코 O. 모라 대사를 통해 간단한 성명서를 냈습니다. 그는 성명서에서 "아옌데는 단순한 정치적 인물 그 이상이었다"며 "소득 불평등, 교육 접근성, 의료, 농지 개혁과 같은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고 치켜세웠습니다. 그러나 뜻은 숭고했으나 정책은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졌습니다. 그게 그의 패인이자 사인입니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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