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공급망 위한 희토류 확보”… 미국-사우디, 아프리카 공동 진출 추진

사우디가 희토류 광산 인수하고
미국이 광물 구매권 확보하는 식
어색해진 양국 관계 회복 계기?

지난해 7월 15일 사우디아라비아 해변 도시 제다에서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주먹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제다=AFP 연합뉴스

미국이 아프리카에서 희토류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와 다시 손을 잡는다. 전기자동차나 스마트폰의 배터리 가공에 필수적인 코발트, 리튬 등을 의미하는 희토류는 중국이 70% 이상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차세대 핵심 광물이다. 희토류를 무기화하는 중국의 지배력을 낮추려는 행보인데, 최근 들어 다소 어색해진 미국과 사우디 간 관계를 진전시키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과 사우디가 핵심 광물 공급망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에 공동 진출하는 방안을 놓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국영 기업이 콩고민주공화국, 기니, 나미비아 등의 희토류 광산 지분을 인수한 뒤, 미국 기업에 광물 일부를 구매할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고 한다.

미국 기업 입장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한 아프리카 국가에 직접 진출하는 건 위험 부담이 크다. 사업 추진을 위해 자칫 현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간 미국에서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사우디는 통치 구조상 아프리카 국가 정부 측에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다. 사우디는 아프리카 광산 개발에 150억 달러(약 20조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사우디를 경유할 경우, 미국이 짊어져야 할 리스크도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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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어진 미국-사우디 관계 훈풍?

지난해 12월 9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중국·아랍국가 정상회의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악수하고 있다. 리야드=AFP 연합뉴스

WSJ는 “이번 협상이 성사된다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긴장 관계를 유지해 온 양국(미-사우디) 관계에 긍정적 신호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시점이 고무적이다. 앞서 미 백악관은 9일 인도·중동·유럽을 철도와 항만으로 연결하는 경제회랑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는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거대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에 맞서는 이 프로젝트에 사우디도 참여하기로 했다. 한동안 껄끄러웠던 양국 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는 신호가 잇따르는 셈이다.

전통적 우방 관계인 미국과 사우디는 2018년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계기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2021년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암살 배후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공개적으로 지목하며 사이는 더 멀어졌다. 지난해 7월 원유 증산 요구를 위해 사우디를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의 빈손 귀국은 악화된 양국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 줬다.

반면 사우디의 중국 밀착 행보는 가속화했다. 지난해 12월 시 주석이 사우디를 방문해 500억 달러(약 66조5,000억 원) 규모의 투자 협정에 서명하는가 하면, 사우디는 중국과의 무역 대금을 달러 대신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했다. 지난달엔 중국이 주도하는 신흥 경제국 협의체 브릭스(BRICS)의 신규 회원국 가입도 확정됐다.

다만 사우디의 ‘줄타기 외교’ 일환이라는 평가도 있다. 최근 사우디가 중국산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나온 사실에 비춰,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의 협상은 미중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얘기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