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노인 정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년(老年)은 하루가 저물수록 불타고 고함을 질러야 한다.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
영국의 유명 시인 딜런 토머스의 시다. 죽음의 문턱에 다가선 아버지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주기 위해 이 시를 바쳤다. 그의 아버지뿐만이 아니다. 사경을 헤매는 모든 이들, 꺼져가는 가능성에 저항하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이 시구의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원의 20선 도전이 화제다. 83세의 고령. 생의 황혼을 앞둔 시점에도 그녀는 현역 은퇴를 거부하고 있다. 토머스의 시처럼, 그녀야말로 '순순히 저 어두운 밤'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100세 인생이 입버릇처럼 된 시대다. 50세가 돼서도 인생의 절반이나 남았다며 '행복한 고민'을 한다. 하물며 고령 정치인이라고 하지 말란 법이 있을까. 정치란 젊은 혈기보다 노인의 지혜가 힘을 발휘하는 격투장이다.
다만 고령 정치인들의 분투가 언제나 감동적이진 않는 법. 최근 81세 미치 매코널 미국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30초 얼음' 사건이 도마에 올랐다. 이들에 대한 의구심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치매설은 이미 뉴스거리를 넘어 '밈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할 지경이다. 예측 불가능한 행보에 그들의 진정성은 퇴색할 수밖에 없다. 권력에 취해 정치판의 세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는 오명도 계속될 것이다.
75세 이상 정치인에 대한 정신감정 의무화 논의가 뜨겁다. 미국 국민은 무려 76%가 찬성하고 있다. 고령 정치인들의 분투에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하다는 의미다. 다만 언젠간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에 미국 정부·여당은 그 누구도 총대를 메지 못하고 있다.
조 바이든과 펠로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고령 정치인 둘이 나서서 좋은 선례를 만들어보는 건 어떤가.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이상 정치를 할 수 있는 연령 제한이란 없다. '노인 정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말도 편견에 불과하다. 다만 그것을 증명할 이들 역시 그들 자신이 돼야 한다.
[한재범 글로벌경제부 jbha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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