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반도체 소재 전쟁…中 무기화 맞서 공급망 연합작전을
갈륨·게르마늄 수출통제 이어
희토류까지 범위 확대 가능성
대책 없으면 더 큰 타격 불가피
"韓 반도체 후발서 세계최고로"
주목할 칩 기술로 HBM 꼽아
◆ 세계지식포럼 ◆
"반도체 경쟁이 반도체 소재 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대비해야 합니다."
베스트셀러 '칩 워(Chip War)'의 저자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사진)가 11일 매일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최근 중국은 반도체 핵심 광물 공급을 제한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며 "한국과 미국 등 각국이 협력해 새로운 소재 공급망을 구축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번 인터뷰는 1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제24회 세계지식포럼에서 강연을 앞두고 이뤄졌다. 밀러 교수가 저술한 '칩 워'는 반도체가 국가 간 패권 경쟁의 핵심 요소가 된 배경을 역사적·외교적 관점에서 조명한 책이다. 차별화된 시각으로 반도체 전쟁의 역사와 산업 전망을 제시하면서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한 '2022년 올해의 경영 서적'으로 뽑히기도 했다. 역사학자이지만 오는 10월 실리콘밸리에서 예정된 개발자 행사인 '삼성 메모리 테크데이'에서 연단에 서기로 할 만큼 산업계에서도 인정받는 인물이다.
밀러 교수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은 경쟁적인 도전자이지만 칩 제조에 필요한 첨단 기계를 이용할 수 없어 어려움에 직면했다"면서 "글로벌 연구 개발 파트너십에서 소외되고 있는 점도 한계"라고 짚었다. 하지만 중국이 최근 이를 극복하면서 반도체 격차 줄이기를 꾀하고 있는 만큼 미국과 규제 전쟁은 계속될 것으로 봤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우회 수입으로 대중 제재가 무력해질 위기에 처하자 제재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밀러 교수는 "중국의 폐쇄적 규제와 보조금 정책이 각국 보조금으로 대응 촉발됐다"면서 "전 세계 산업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궁지에 몰린 중국이 자원을 무기화할 수도 있을 것으로 봤다. 그동안 글로벌 패권 다툼이 '칩 워'였다면 이제부터는 '반도체 소재 전쟁'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실제로 중국은 '국가 안보 수호'를 이유로 지난달 1일부터 갈륨과 게르마늄 관련 품목을 허가 없이 수출하지 못하게 하는 수출 규제를 시행했다. 갈륨과 게르마늄을 넘어 희토류까지 통제에 들어서면 현재 반도체 소재 공급망은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다만 밀러 교수는 이 같은 중국의 자원 무기화가 극복할 수 없는 '비대칭적 전력'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밀러 교수는 "중국이 광물 공급에 우위를 점했던 건 독특한 지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면서 "중국 정부가 생산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엄격한 환경 규제를 시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반도체 공급망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특히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밀러 교수는 "1980년대 후반이 돼서야 제조 산업을 시작했을 만큼 한국은 반도체 산업의 후발주자였다"면서 "하지만 오늘날 한국은 세계 최고의 메모리 칩 생산국"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반도체 산업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저서 '칩 워'를 보면 한국이 키워드로 등장한 것은 전체 54장 중 절반이 넘어가는 22장부터다. 하지만 이후 후반부에서 한국은 사실상 책의 주인공 역할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비중을 차지한다. 밀러 교수가 한국 반도체 산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짚은 인물은 이병철 삼성전자 창업회장이다. 그는 저서에서 "이병철은 무슨 일을 해도 이익을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묘사했다.
밀러 교수가 꼽은 주목해야 할 반도체 기술은 고대역폭메모리(HBM)였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차세대 D램 제품이다. 이 때문에 대규모 데이터 학습에 필요한 인공지능(AI)에 필수로 꼽힌다. 밀러 교수는 "SK하이닉스는 HBM 분야에서 초기 선두주자였지만, 이제 경쟁사도 이 분야에 빠르게 투자하고 있다"면서 "글로벌 데이터센터 기업이 공급처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것이고 이를 위해 선두기업은 계속 혁신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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